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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이 아니라 수학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어느 한쪽이 이 나라를 통일할 확률보다 분단이 지속될 확률이 90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런 것이 수학으로 계산된다는 말입니까?"

"미국에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확률 계산의 천재가 있습니다. 그는 경로합접근법으로 양자적 사건의 확률 계산을 해냈습니다. 그는 이 방에 있는 우리 두 사람이 갑자기 순식간에 사라져 밭 너머 너럭바위에 가 앉아 있을 확률도 계산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확률이 낮을 뿐 절대적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 양자역학입니다. 금지되어 있지 않은 것은 모두 가능하므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물리학의 기조입니다. 다만 사람 몸체만한 물질이 순식간에 100여m 이상의 거리를 공간 이동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고물상에 태풍이 몰아닥쳐 단 몇 초 만에 대형 여객기가 조립될 확률 정도나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의 확률은 영(零)이 아닙니다. 사람뿐 아니라 집채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달에 나타날 확률도 영은 아닙니다. 향후 물리학은 양자역학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렵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될 가능성도 있겠군요?"
"하하. 어쩌면 그렇게도 김성식 선생과 똑같은 질문을 합니까? 당연히 가능하지요."

"분단 고착의 확률이 가장 높으면서도 강대국이 될 확률이 따로 존재한다?"
"바로 그것이 양자역학입니다."

"두오씨가 우주 끝에 있는 별을 찾으려고 하는 일도 양자역학과 관련이 있나요?"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그 별을 찾으면 우주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건가요?"
"네 그것을 증명까지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계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관측을 해야 하는데..."

"망원경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초대형이라야 합니다. 아니면 최소한도 태양계 너머에 가서 관측을 하든지..."

"두오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들어요."
"다른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우주의 일부입니다."

"우주의 나이를 앎으로써 우주의 출생을 알고 죽음을 예언할 수 있다고 했지요?"
"그렇지요.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알게 됩니다."

"우주에도 종말이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군요."

"지난 번 우리는 뉴턴 시대의 우주론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명체가 태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절묘하게 동원되었는지를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현 씨가 불안한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해서 뉴턴 시대로 한정하여 말한 것뿐입니다.

현대의 물리학은 인간이란 전혀 신비하지도 않고 오묘하지도 않다고 봅니다. 우주에도 아무 의미가 없듯이, 그 안에 우연히 생겨나 살다가 우연히 죽어가는 인간에게도 특정한 의미가 부여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물리적인 힘은 아무런 의도가 없이 자연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거지요.

이 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다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가족과 이별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새로운 사랑을 만나 가족을 만들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규칙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사건의 인과적 당위성을 논할 수도 없는 겁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우주는 어떠한 계획도 없고 목적도 없습니다. 쉽게 말해 이 우주에 전지전능자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인간들의 삶에 전혀 무관심합니다. 우주는 모든 것에 무관심한 채 주어진 자연 법칙에 따라 운영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습니다.

우주는 지난 수십억 년 동안 맹렬하게 팽창되어 왔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별들이 수도 없이 태어났다가 사라져 갔다고 합니다. 하나의 은하에는 이런 별들이 수천 억 개나 존재합니다. 이런 은하만도 수천여 개씩 관측이 가능한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방대하고 복잡다단한 우주의 변화가, 한쪽 구석에 있는 어느 조그만 별, 즉 태양의 행성에 지나지 않은 지구의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나는 지구도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지구는 자연적인 과정에서 물리적인 법칙에 따라 탄생한 행성이며, 이 과정에서 생명체가 태어났고, 그 속에 우리 인간이 속하게 된 것뿐입니다. 우주는 이렇게 자연적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때인가는 종말을 맞을 겁니다. 그것이 거대한 붕괴가 될지 아니면 거대한 동결이 될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뿐, 우주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종말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참 여러 가지인 것 같아요."

"과학에서는 종말을 내다볼 줄 하는 학자가 성공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보어나 하이젠베르크에 패배한 이유도 종말을 신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변이나 동란 또는 투쟁이나 해방이 아닙니다. 이미 중국과 미국이 작전 지휘권을 쥐고 있습니다. 외세끼리의 전쟁에 우리는 무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정황에 이 전쟁으로 우리가 통일을 이룰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인민공화국도 이 전쟁의 종말을 예상했다면 이런 무익하고 무모한 짓은 아예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치고 올라오는 미군

이두오와 조수현이 다시 만나 움막에서 별과 우주를 이야기하며 사랑을 나눈 지도 두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국군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서울에 그다지 큰 집착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선은 37도 선에서 고착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군이 다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중국과 미국이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기로 무언의 약속을 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한편 조수현은 박광태를 체포하기로 뜻을 굳혔다. 조수현의 부하가 박광태에게 협박받고 잠자리를 같이 한 두 여자로부터 진술을 받아왔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새벽 인민군 감찰대에 의해 체포된 박광태는 조수현에게 신문을 받게 되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는 거요?"
"처음에는 인민공화국 일에 적극 협조해 주셨는데,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을 방치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공화국의 법을 어긴 일이 없소."
"두 여자의 진술이 확보되어 있어요."

"국군 프락치를 잡으려고 한 일이었소."
"그렇다고 여염집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나요?"

"....그런 일이라면 장교 동무도 떳떳하지는 않을 거요."
"뭐라고?"

"움막에 있는 남자는 누구지? 나는 여태껏 모르는 체하며 참아 왔소. 그 놈은 내 딸 미애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민군 장교와 놀아났단 말이오."
"신문을 하는 사람은 나야, 이 바보야."

"그는 천재적인 과학자라지요? 그렇다면 공화국에 필요한 인재가 아니겠소?"
"이 자가 반성은커녕?"

"움막에 있는 과학자를 숨겨준 동무는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거요?"
"미친 놈, 감옥에 가서 너 혼자 실컷 주절거려라."

조수현은 신문을 마치자마자 박광태를 서울 사령부 관할 임시 수용소로 송치해 버렸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우리 민족의 식민지와 분단과 통일, 3단계를 예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작업의 중간 단계입니다. 조만간 이 소설이 종료되면 3단계, 즉 '통일'을 말하는 작업이 추리소설 형식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태그:#아인슈타인, #중국?군, #37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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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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