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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좀 괜찮니?"

"네…."

"그런 목소리로 네 하면 참 믿겠다."

"안 괜찮죠, 그럼… 어떻게 괜찮겠어요…."

 

언니가 전화했던 그날 기억나요? 할아버지 빈소를 지키는 마지막 날 새벽이었을 거예요, 아마. 지금 생각해봐도 언니 멘트는 정말이지… 어떻게 괜찮겠어요, 언니. 집 앞 벤치 하나가 없어졌을 때도 맘이 적적하고 허전해서 그 빈자리를 한참 서성이다 들어가곤 했던 나예요. 벌써 돌아가신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이따금씩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하염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강단지지 못한 손녀라구요.

 

할아버지의 꿈뻑이던 눈, 가래 낀 기침 소리, 일요일에 오겠다며 내게 걸었던 새끼손가락, 뜬눈으로 보낸 이틀 밤, 그 밤 사이 수없는 눈맞춤과 내 손을 꼭 쥐시던 거칠고 큰 손의 온기, 이젠 그런 모든 것과 더는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었어요. 어떻게 괜찮을 수 있었겠어요. 언니를 붙잡고도 울었잖아요. 할아버지가 곧 떠나실 거 같다구요. 난 할아버지를 보내드릴 자신이 없다구요. 어쩌면 좋냐면서 하염없이 울었던 그날, 언니도 생각나잖아요.

 

할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명절이 된 설날,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는 자기 연민으로 할아버지 부름에 한 발씩 게으름을 피웠어요. 할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밤도 한숨도 못 주무시는 할아버지 옆에서 그냥 책만 읽었던 무심한 손녀라구요. 후회가 없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뭐 하나 후회되지 않는 게 없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구요.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지 9년, 그 긴 세월 큰손녀라고 있는 것이 발음이 불편한 할아버지 말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늘. 많이 답답하셨을 건데도 크게 웃어주시던 할아버지였어요. 반찬 하나 놓아 드리면 마지못한 듯 드시면서도 맛있냐는 애교에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고개 끄덕여주던 할아버지였어요.

 

할아버지는 고깃집에만 가면 늘 바쁜 젓가락질로 내 앞 접시에 고기를 수북이 쌓아두셨어요. 그 고기들을 끝끝내 뱃속으로 밀어 넣고 체하기 일쑤였던 난 이제야 그것이 무뚝뚝했던 할아버지의 벅찬 사랑임을 느껴요. 다신 체할 일도, 배 터질 일도 없을 거라며 그의 빈자리를 헤아리고 있어요.

 

가시는 길까지 걱정 끼친 강단지지 못한 나

 

"아, 참… 할아버지께서 너한테 유품 남기셨는데…."

 

할아버지 보내드리고 집에 돌아와서 할아버지 물건을 정리하려다 도저히 그가 없는 그 방을 볼 수 없어서 방문 밖에서만 서성이고 있었거든요.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고모가 내게 할아버지의 낡은 지갑을 유품이라고 안겨주었어요. 유일하게 누군가에게 전해달라 하신, 할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었어요. 그 낡은 지갑을 가슴에 품으며 가죽냄새보다 더 깊게 밴 할아버지 냄새에, 아직 그의 체취가 이렇게 느껴지는 것에 감사하며, 한가득 밀려오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서 또 그렇게 못나게 울어 버렸어요.

 

지갑 사이로 챙겨두신 빳빳한 지폐 몇 장과 할아버지 명함 사진은 거동이 불편해 거의 외출을 안 하셨던 할아버지가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이었을 테죠. 다 큰 손녀인데도 용돈을 이렇게 주고 싶으셨나 봐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혹여나 잊을까 봐서 사진도 그리 꽂아두셨더라구요. 그의 사랑 앞에서 언제 한 번 용돈을 드려본 적도, 두고 보시라고 사진 하나 가져다 드린 적도 없었다는 게 그리도 사무쳤어요. 벌써 그의 사랑에 목말라요. 다시는 그런 사랑 못 받을 것 같아요.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던 마지막 날 밤, 난 그날이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사실 꼭 뽀뽀해 드리면서 사랑한다 말하고 싶었어요.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싶어 매일 사진기를 들고 갔지만 아픈 할아버지께 마지막인 양 사진기를 들이밀 수 없었어요.

 

근데 좋아지시더라구요. 좋아지시기에 벌떡 일어나실 거 같았어요. 그래서 마지막 날 밤, 나갈 채비를 하는 나를 할아버지가 뻔히 쳐다보고 계시는 걸 왜 그러시나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그의 눈빛이 맑아 우리의 헤어짐이 한참 뒤로 밀리는구나 안심했어요. 일요일에 올 테니 건강하셔야 한다고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까지 찍고도 한참 내 손을 놓아주지 않는 할아버지가 그저 따뜻할 뿐이었어요. 정말이지 그뿐이었어요. 언니, 난 정말이지, 그날이 마지막일 줄을 꿈에도 몰랐어요.

 

화장터에서 몇 년간 쏟을 눈물을 한 번에 쏟아내며 할아버지 보내드린 날, 할아버지가 꿈으로 찾아왔어요. 할아버지는 지팡이 없이 서 계셨어요. 말도 어찌나 쩌렁쩌렁하게 하시던지요. 손녀 혼자 아쉬움으로, 후회로 오래 간직할까봐 찾아오셨나 봐요. 같이 사진도 찍구요. 뽀뽀해 드리면서 사랑한다고 외치는 내게 '그래그래'하면서 껄껄 웃어주셨어요. 오랜만에 보는 할아버지의 시원한 웃음소리였어요.

 

꿈까지 찾아와 내 소원 다 받아주던 할아버지예요. 가시는 길까지도 그렇게 걱정 끼치는 못난 큰손녀를 위해서 말예요. 그럼에도 꿈에서 깨고 보니, 할아버지가 손에 잡히질 않고 눈에 보이질 않고 귀에 들리질 않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하니 나 정말 괜찮지가 않았어요. 할아버지가 있었던 세상과 없는 세상의 그 틈이 벌어질수록 나와 할아버지도 딱 그만큼은 그렇게 멀어지는 것 같아 1분 1초가 무섭게 흐르더라구요. 초침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었어요.

 

벌써 1년, 날 위로해준 건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언니, 이젠 울지 않고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구요. 이제 할아버지 체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할아버지 지갑에 괜한 원망을 쏟아놓지도 않아요.

 

그냥 고마워요, 할아버지한테. 살뜰하고 살갑지 못했던 손녀, 너무 사랑해줘서. 마지막 눈맞춤, 새끼손가락 건 약속, 편히 눈감으신 모습, 꿈, 그리고 차마 쓰지 못한 빳빳한 지폐와 아픈 모습으로 찍은 증명사진 6장, 할아버지 체취가 남아있는 낡은 지갑.

 

다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어요. 그 기억이 오래 내게 남을 거란 걸 알았어요. 이 모든 게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란 것두요. 전해져오는 할아버지 사랑의 유통기한이 내 평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괜찮아지는 것조차 할아버지의 사랑에서 시작되고 있었어요.

 

이제 곧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1년을 채우는 날이 돌아와요. 그날을 벌써부터 이렇게 걱정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던 1년 전 그날로 돌아갈 것만 같아요. 키워주셔서 고맙다구, 무뚝뚝한 할아버지여도 늘 할아버지 사랑 느끼며 살았다구,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옆에 붙어 있었던 거 아니라구, 나도 할아버지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었다구, 아픈 당신 외로움 늘 채워 드리고 싶었다구… 못한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아플 거 같아요.

 

할아버지 지갑을 꼭 손에 쥐고 있으려구요. 니 맘 다 안다. 지갑에 남았던 마지막 할아버지 체취가 그렇게 날 위로하고 사라질 거 같아요. 그럼 그 체취편에 보낼까 해요.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내가 세상에서 받은 선물 중 제일 값진 거였다구요.

 

그럼에도, 정작 당신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얘기는, 울 할아버지 맘 아플 테니 전하지 않으려구요. 그러려구요.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응모글


태그:#할아버지, #선물, #마지막선물, #할아버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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