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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엄마가 된 지 얼추 10년 정도가 되는 시기 동안 끊임없이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배우 김해숙. 그녀는 젊은 시절 조연으로 보내던 것과 달리 중년이 되어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김혜자, 고두심 등을 이어 국민 엄마로 등극하였다.

 

지금껏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대부분 중년배우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김창숙, 김자옥, 한혜숙 등 젊은 시절부터 스타였던 그녀들과 김해숙, 김혜옥 등 젊은 시절에는 각광을 받지 못했지만 세월이 흘러 인정받은 그녀들. 사실 모두가 대단하다. 방송 생활이란 게 녹록치 않는다는 걸 얼추 시청자들도 아는데, 지금껏 버티는 그녀들이니, 무어라 말을 할까.

 

그 속에서 빛나는 그녀가 바로 김해숙이다. 더욱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요즘 들어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김해숙이란 연기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스크린에까지 영역을 넓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젊은 배우 못지않은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소름끼치는 연기력 하나로 승부한 김해숙

 

정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녀가 뿜어내는 연기력. 그것도 역마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며 팔색조 연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자상한 엄마였던 그녀가 어느새 악녀로 둔갑하고, 또 어느새 푼수끼 많은 아줌마로, 늦은 나이에 사랑을 찾아 떠나는 한 여인으로 등등. 그녀가 연기해낸 숱한 캐릭터 속에 늘 김해숙은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연기력이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작품은 <가을동화>이다.

 

<가을동화>에서 억척스러운 엄마로 등장하며 자식이 바뀌어 버린 상황이 벌어지면서 쏟아내던 모성애. 지금도 그녀의 연기를 잊을 수 없다. 그 이후 정말 그녀의 독무대가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하얀거짓말>에서 시청률 견인차 역할을 하는 당당한 히로인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그녀가 뿜어내는 악녀의 연기는 비행기 이륙을 방불케 하는 고성방가의 일인자 신애리를 능가하는 악녀 포스라고 할 수 있다. MBC 공채 7기로 출발해 연기생활 35년째. 그녀의 악녀연기가 아마도 그 세월 동안 다져진 것일 것이다.

 

<하얀거짓말>에서 백화점 회장 신영옥(김해숙)은 자폐아 형우(김태현)의 어머니로 지독한 모성애를 가진 여인이다. 뛰어난 수완으로 재단공장 여공에서 수백억 돈을 벌어 남대문에서 신화적 인물로 통하지만 바람 난 남편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소름 끼치게 무섭고 독한 년...."뿐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굴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식을 위해 남편을 궁지로 몰아넣어 자살을 하게 만든 여인이다. 이러한 캐릭터를 가진 신 회장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복수극의 묘미는 그녀의 신들린 연기로 매회 시청자들에게 땀을 쥐게 한다. 특히 김해숙의 연기가 빛을 발한 장면이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정우(김유석)가 아버지 죽음에 모든 것을 알고 신 회장을 아버지의 산소로 끌고가 용서를 구하라고 강요하는 장면이었다. 정우와 신 회장의 대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두 눈을 똑바로 뜨며 정우의 손을 자신의 목에 가져가고 "죽여! 지금 못 죽이면 넌 평생 날 못 죽일거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가히 소름끼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또 하나는 비안이의 생부가 밝혀지면서 그 비밀을 접한 신 회장이 죽을 죄를 졌다면 비는 은영(신은경)에게 신 회장은 약을 먹겠다며 협박한다. 그리고 은영은 차라리 제가 죽겠다고 이야기하자, 신 회장은 약을 던지며 "그럼 죽어!"라며 싸늘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악녀의 포스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처럼 <하얀거짓말>은 정우와 신 회장, 신 회장과 은영의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하며 시청자들을 절대적으로 흡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얼마 전 종영한 <카인과 아벨>에서도 등장했다. 이초인(소지섭)의 부모를 자동차 사고로 위장시켜 죽이는 욕망이 넘치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연기변신을 거듭하며 종횡무진

 

하지만 김해숙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주말드라마 <잘했군 잘했어>에서는 전형적인 어머니상을 연기하면서, 영화 <박쥐>에서 남다른 포스를 뿜어내면서 역시 '김해숙'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더욱이 송강호보다 더 많은 이목을 끌며 영화 <박쥐>의 히로인으로 등극했다.

 

강우(신하균)의 어머니이자 태주(김옥빈)의 히스테리한 시어머니 라여사. 그녀는 약간 불안한 심리상태를 가진 여성으로 영화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이다. 그런 그녀를 소화하기 위해서 김해숙은 실크, 벨벳 소재의 1980년 홈드레스 의상과 작위적으로 자른 듯한 헤어스타일(하하의 어머니 용드옥정과 비슷하다며 네티즌들에게 화제된 머리)까지. 완벽히 라여사였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그녀는 다채로운 표정연기로 극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중 첫 번째는 한복집을 경영하는 그녀가 퇴근 시간이 되자 무표정한 모습에서 방긋 웃으며 "시마이!"를 외칠 때 단연 관객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들의 죽음 이후 사지마비 된 채 뱀파이어들의 살인 장면을 지켜보는 이른바 '눈깔연기'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며 명연기를 펼쳤다. 눈빛으로 긴장감, 불안함과 초조 모든 것을 표현하였다. 비록 영화에서 많은 대사는 없었지만 오히려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하는 그녀의 연기는 그야말로 이 시대의 명배우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다.

 

너무 나오는 그녀가 식상해지는 요즘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김해숙을 끊임없이, 아주 애타게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도 연기를 잘하는 탓에 여기저기 캐스팅되어 줄기차게 찾아오는 김해숙. 그래서 연기파 배우이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하얀거짓말>을 시작으로 <카인과 아벨>, <잘했군 잘했어>로 이어지면서 영화 <박쥐>까지. 그녀의 연기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기 마련이다.

 

더욱이 <하얀거짓말>이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에 5일 기준으로 방송되면 주말드라마 <잘했군 잘했어>로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일주일 모두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겹치기 출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하얀거짓말>과 <카인과 아벨>에서 모두 악녀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녀의 명연기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두 드라마의 연기가 비슷해 보이는 우를 범했다. 단지 <하얀거짓말>에서 백화점 회장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화려한 머리를 선호하면서 깔끔한 정장 위주로 차려 입었고, <카인과 아벨>에서는 의사라는 신분 특성상 머리를 차분하게 올백으로 넘겼을 뿐 두 드라마에서 연기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더욱이 자신의 욕망과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죽이는 모습이 공교롭게도 비슷해 오버랩되는 것들이 많아 두 드라마를 모두 본 나로서는 극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가 끝일까 라는 생각을 했더니 억척스러운 엄마로 <잘했군 잘했어>에 또 등장하니 이제 조금씩 김해숙이라는 배우가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악녀로 연기하기엔 너무나 몸매관리를 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군살이 붙기 마련이다. 보통 아줌마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뱃살이지만 악녀를 연기하는 카리스마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은 듯싶다. 물론 악녀라고 해서 무조건 말라야 하는 것은 고정관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했군 잘했어>의 보통 아줌마라면 용서되지만 백화점 회장님이, 의사가 그러한 몸매를 가지고 카리스마를 연기하는 모습을 하고자 했다면 좀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자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밀어도 분명 <박쥐>에서처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환영한다. 연기력이 없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김해숙이란 배우가 참 대단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뒤로 하고 그럼에도 그녀는 명배우로 손색이 없다.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또 변신할지 기대되는 가운데 김해숙이란 배우가 값진 배우로 남을 수 있도록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태그:#김해숙 , #하얀거짓말, #박쥐, #카인과 아벨, #잘했군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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