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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제위기는 아랑곳 않고 천정부지로 오르는 학자금은 여대생들의 삭발투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학생 본인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가계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내건 바 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등록금이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이어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와 공동으로 2달여동안 기획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이 기간동안 <오마이뉴스>는 '유명인사들이 말하는 등록금' '나의 등록금 고지서를 보여드립니다' 등 다양한 기획 기사를 내보낼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동생이 제대하던 지난해 2월, 동생의 새출발을 기원하며 건배하고 있는 우리 형제의 모습. 이 당시만 해도 우리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동생이 제대하던 지난해 2월, 동생의 새출발을 기원하며 건배하고 있는 우리 형제의 모습. 이 당시만 해도 우리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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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살아오면서, 항상 두 살 어린 동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왔다. 몸이 커가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방은 좁아졌고, 눈만 마주보면 티격태격하는 탓에 우리 집도 여유가 생겨 각 방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막상 동생이 군대를 가니 정말 허전하고 심심했다. 생전 처음으로 동생한테 낯 뜨거운 단어를 써가며 편지를 썼고, 휴가 나올 때면 없는 주머니 사정에 용돈도 제법 챙겨줬다. 녀석이 빨리 제대해서 독수공방 생활을 끝내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끌시끌하게 지내길 바랐다.

곧 동생은 제대했고 우리의 좁은 방은 다시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철없이 왁자지껄하던 어릴 적 분위기와는 어딘가 많이 달라졌다. 동생이 군에 있을 때, 나는 뒤늦게 수능을 치러 대학생이 됐다. 공교롭게도 녀석이 다니는 대학에 후배로 입학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제대 후 동생이 복학을 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이 좁은 방에 두 명의 대학생이 상주하게 된 것, 여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늘어가는 대출 빚] 이미 빚더미 앉은 나, 빚 대열 합류한 동생

우리 형제의 등록금 납부 현황.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내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동생이 군대에 있어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러나 동생이 제대하고 복학한 뒤로는 등록금 부담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났다.
 우리 형제의 등록금 납부 현황.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내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동생이 군대에 있어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러나 동생이 제대하고 복학한 뒤로는 등록금 부담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났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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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학자금 대출 신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동생이 대학에 복학하던 지난해 가을, 내게 건넨 첫마디다. 녀석은 뒤도 볼 것 없이 자연스럽게 대출할 궁리부터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웬만하면 대출받지 마라, 형만 해도 대출 빚이 넘쳐나는데 너까지 그럴 순 없잖아'라고 되뇌고 있었지만, 차마 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해서도 안 됐다. 돈 없고 다른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대출은 학교를 다니기 위한 유일한 대안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우리 형제의 한 학기(3개월 3주) 등록금은 700만원(1인당 340만원)에 육박했다. 반면 우리 가정의 한 달 수입은 60줄(52년생)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힘겹게 개인용달 일을 해 벌어들이는 100~150만 원 정도. 이 돈을 모두 등록금으로 충당한다 해도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남은 선택지는 빚쟁이가 되는 것 말곤 딱히 없었다.

아버지는 매 학기 등록금을 내는 순간이 되면 우리를 보며 가슴 아파했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우리도 한없이 마음이 불편했다. 언젠가 내가 학자금 대출 문제로 이런저런 서류를 알아보고 있을 때였다.

"요즘 같이 어려울 때 공부하기도 벅찰 텐데 다른 데 신경 쓰느라 할 거 못하는 거 아니냐? 매번 너무 속상하구나."

나는 "외국에서는 스무 살 넘으면 자기 앞가림 자기가 알아서 안다고 하잖아"라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가족 생계를 꾸려나가는 데만도 빠듯한 아버지가, 다 큰 자식들 교육비 때문에 두 번 가슴 아파해야 하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아들로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지난 학기에는 눈물 쏙 빼놓은 사연도 있었다. 군대 가기 바로 전학기 학점관리를 안 한 동생이 학점기준미달(직전학기 1.8이하)로 학자금 대출마저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등록일은 지났다. 추가등록마저 놓친다면 강제로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동생으로서는 복학 첫 학기에 대한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형제는 햇살이 맑게 비치는 가을날, 캠퍼스 벤치에 앉아 한숨을 푹푹 쉬며 끊었던 담배를 물었다.

"제대하고 제대로 공부 좀 해보려 했는데 형편이 이러니 이마저도 쉽지 않네. 좌절이다."
 
그때 생각난 것이 <오마이뉴스> 원고료였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에서 적잖은 기사를 쓴 덕택에 원고료가 상당히 모여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재빨리 원고료 인출을 신청했고, 아버지도 일정액을 보태기로 해 가까스로 동생의 강제 휴학을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 동생의 울먹이던 표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짠하다.

올해 1학기에는 우리 형제 모두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나는 어느새 대출 빚이 1천만 원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동생은 이제 나와 함께 빚쟁이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작아지는 꿈] 그저 밥 벌어 먹고 살면 다행?... 이건 아닌데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보낸 메일. 조금이라도 학자금 대출 이자납부가 늦어지면 이런 독촉 메일이 온다. 이에 더해 은행에서는 하루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독촉 전화가 온다. 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보낸 메일. 조금이라도 학자금 대출 이자납부가 늦어지면 이런 독촉 메일이 온다. 이에 더해 은행에서는 하루라도 늦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독촉 전화가 온다. 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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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는 등록금 빚보다 더 슬픈 건, 빚에 비례해 작아지는 꿈과 희망이다. 안 그래도 극심한 취업난에 내몰린 상황에서 1500만 원 빚을 지고 시작하는 사회생활, '생존' 그것 말고 더 따진다? 사치인 것만 같다. 본래 품은 가치는 옅어지고, 우선사항으로 '밥줄'을 고려하게 되는 우리를 볼 때마다 한없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최악의 경제위기에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겹쳐, 온 국민이 생계불안을 느끼는 시기, 더욱이 노동시장 밖에서 한치 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젊은이들은 심신 모두 극도로 위축돼 있다. 20대 특유의 도전정신과 진취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력을 갈고닦아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는 온데간데 없고 개인의 밥줄, 그거 하나 구하는 것도 감지덕지란 생각이 든다. 어느새 목표는 밥그릇이 된다. 직업선택은 보수적이 되고, 안정적인 직장만을 좇는다. 평소 다르게 살길 바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우리 형제도 예외는 아니다. 고학년이 될수록, 꿈은 멀어지고 현실은 다가온다. 졸업반인데 빚만 짊어지고 있다 보니, '청년실업'이란 말은 더 이상 비판의 대상만이 아닌 게 된다.

생존과 밥줄, 이것마저 보장되지 않는 상황. 우리의 꿈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똑똑한 엘리트들마저 직업이 불안해 죄다 의대나 약대 등에 진학한다. 이런 친구들조차 진취적인 선택을 못하는데, 하물며 머리도 별로고 물려받은 재산 없고 등록금 빚만 잔뜩 짊어진 나 같은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꿈과 가치는 무엇이 있을까?

젊은이들의 희망을 빼앗고 생존 투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와 이를 부채질하는 고액 등록금, 밥줄 싸움에 찌든 젊은이들이 가득한 우리 사회의 10년 후는 어떨지, 후배들은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 달도 학자금 대출 이자 10여 만 원은 어김없이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하루라도 이자납부가 늦어지는 날이면 익숙한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뜬다. 은행 직원이다. 그리고는 항상 그랬듯 "제때 이자를 안내면 신용불량이 돼 차후에 대출은 물론 취업 등에도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며 잔뜩 겁을 준다. 이 말은 언제나 무섭다. 젊은 가슴에 든 열정과 포부는 점점 식어간다. '그저 밥벌어 먹고 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또다시 뇌리를 스친다.


태그:#등록금, #학자금 대출, #형제, #대학생,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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