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해 어머니 주일을 앞둔 어느 날, 낮 두 시에 뉴욕에 사는 막내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막내아들은 다섯 해 앞서 혼인했는데, 바로 일자리를 따라서 이 곳 엘에이를 떠났지요. 그래도 한 해에 한 번쯤은 다니러 오거나 아니면 우리 부부에게 비행기표를 보내주는 신통한 아들입니다.

"엄마, 안녕하세요?"
"그래. 잘 있었니?"
"어머니날이라서 그레이스하고 내가 엄마한테 선물을 보냈는데요. 인터넷으로 알아 보니까 오늘 오후에 집에 간다고 하네요.  엄마는 언제 집에 가세요?"
"그래? 고맙다. 얼른 일이 끝나는대로 가야지. 받으면 곧 전화할게."
"빨리 좀 가세요. 배달하는 사람이 아파트 문 밖에 놓고 가면 어떻게 해요?"
"알았어."

곧 남편한테 전화를 했더니 마침 볼일이 끝나고 막 집에 들어 왔는데 아무 것도 아직 안왔다고 합니다. 네 시쯤, 둘째아들이 많이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어요.

"엄마, 뉴욕에서 패키지(선물상자 소포)가 왔어요. 녹을 수도 있으니 빨리 오셔야겠어요."
"응. 그래? 벌써 왔구나. 동혁이한테서 전화받았다. 얼른 냉장고에 넣어라."
"엄마, 그냥 지금 못 와요?  빨리 좀 오세요."

전화를 끊고 생각했습니다. 녹을 수도 있다면 또 초콜릿을 보낸 모양인데, 도대체 둘째아들이 왜 저렇게 허둥대고 있을까요? 냉장고에 넣으면 될 일을….

지지난 해 어머니 주일 즈음에도 막내아들네가 큰 선물 상자를 회사로 보냈습니다. 회사가 집에서 세 블럭 떨어져 있어 나는 걸어서 일터를 다닙니다. 선물 상자가 무겁지는 않았지만 들고 가기엔 부피가 너무 커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어요.

그이가 차를 가지고 와서 선물을 싣고 집에가 열어보니, 세상에! 큰 상자 안에 스티로폼 상자가 나와요. 열었더니 얼음상자가 나오고, 또 열었더니 작은 상자가 나오고, 그 안에 조그만 초콜릿 상자가 있지 뭐예요? 초콜릿을 차갑고 싱싱하게 받으니 좋긴 하지만 겹겹이 쌓인 상자들, 이렇게 많은 자원이 아깝게 버려지면서 자연을 해치지 않겠습니까.

어느 해에도 막내 며느리가 큰 선물 상자를 보냈는데 그 안에 큰 스티로폼 얼음상자가 나오고 그 안에 장미꽃송이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효도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해도 덮어놓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 깨달았습니다.

"얘들아,  나는 이런 선물도 좋지만 전화로 너희들 목소리 들을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너희들한테서 사흘이 멀다하고 전화를 받으니 이미 넉넉하게 효도를 받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제부터 꽃과 초콜릿은 그만 받았으면 좋겠다. 돈도 아끼고 환경도 아껴야 하지 않겠니?"

"아, 그러네요. 그레이스와 내가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니까 그렇게 큰 부피로 가는 줄은 몰랐지요. 엄마 말이 맞아요. 환경을 보호하기는커녕 망치는 일이네요."

다섯 시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본 남편이 둘째아들 방에다 대고, "엄마 오셨다. 선물상자, 빨리!" 하며 큰소리를 치자, 둘째가 뛰어 나오며, "엄마, 선물 패키지가 내 방에 있어요. 빨리 가 봐요" 하며 싱글벙글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왔기에 식구들이 이 난리법썩이란 말입니까? 나는 단숨에 둘째 방으로 뛰어 갔더니… 글쎄… 막내아들이 두 팔을 벌리고 서서 활짝 웃고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숨이 딱 멎어 버렸어요. 

"어머, 어머, 이럴 수가…."

발을 동동 구르고 어쩔 줄을 모르며, 벌린 두 팔로 다가오는 아들을 보다가 가슴이 벅차 올라서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우는 나를 포근히 안으며 막내아들도 눈물을 글썽이고 옆에서 보고 있던 둘째아들도 눈물을 글썽였어요.

"엄마, 좋은 일에도 그렇게 눈물을 흘리네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참…."

한 세상을 살면서 좋은 일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릴까요? 부모한테 가장 좋은 선물은 '멀리 있는 자식 얼굴을 보는 일'이겠지요. 이런 좋은 선물을 깜짝 놀라면서 받았으니 왜 눈물이 아니 나오겠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한겨레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통일'일테지요. 우리한테 이 선물이 떨어지는 날,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다 한들, 선 채로 돌이 된다 한들 어찌 아니 좋을까요.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응모글



태그:#선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