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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건의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최종 결과로 들리고, 그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신인 배우, 기획사, 방송사, 거대언론사, 그리고 금융기관은 정말 아무 관계도 없었던 것일까? 한 신인배우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까닭이, 근거도 희박한 우울증 때문이거나 확인할 수도 없는 술자리 몇 번 나갔기 때문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것일까? 결국 경찰의 발표는 그녀를 헛소리나 써갈기고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죽음을 통해, 오늘 연예산업의 위기와 신인 배우들의 위기, 그리고 더욱 심화될지 모르는 문화의 위기를 본다. 이제 총체적 위기에 처한 한국연예바닥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시기가 왔다. 올바른 성찰과 반성이 그녀의 죽음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도리이며 그것을 통한 대안의 마련이 위기의 연예바닥을 치고 나올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자의 말>

 

글 싣는 순서

① 충무로의 조감독들은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 취약한 토대, 붕괴직전의 제작시스템

② 스타가 되고 싶으면 어디로 연락해? - 매스미디어와 연예인의 종속관계

③ 장자연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연예매니지먼트법에 대한 심각한 우려

 

충무로의 조감독들은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취약한 토대, 붕괴직전의 제작시스템)

 

대중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일설에는 영화 <쥬라기 공원>으로 (미국이) 벌어들인 수익이, 당시 현대자동차 1년간에 수익보다 많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대통령이 '그 카면 우리도 그거 해야 않겠나?'해서 시작하게 되었다는, 어처구니없지만 그 대통령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법한 계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식적으로 대중문화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때는 미국의 경우 1930년대 대공황 시기부터이며, 일본은 동경올림픽 직후인 1964년부터로 알려졌다. 당시(1930년대) 미국은 영화산업을 중심으로 문화산업계획을 수립했었고, 일본은 애니메이션부분을 중심으로 산업을 육성했는데, 이러한 집중적인 투자와 육성이 결국 오늘날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재패니메이션의 근간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산업화 초기의 모습은 다른 분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당시 미국의 영화사에서 필름 컷팅(영화산업 초기의 노동, 오늘날의 편집에 해당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주급 10달러를 채 못 받았었고, 일본 역시 원화를 그리거나 만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도 형편없는 박봉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 두 나라의 대중문화산업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위업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록 79년 역사의 미국대중문화산업이나 45년 역사의 일본 대중문화산업과 절대적 비교도 어렵고, 국가가 특정 분야에 대한 미래전망을 가지고 지원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겨우 15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연예산업은 놀라운 성장력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안방을 점령하고 중국으로부터 '한류'라는 말로 불리울 정도로 성장했다. 스크린 쿼터제도에 힘입어 세계최강 미국의 영화가 유일하게 자국의 영화에 밀리는 '기적'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이 필요했고, 그들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성공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문제는, 비약적 발전에 필연적으로 드리워지게 되는 우울한 현실이다. 한국의 연예산업(공연, 영화, 음악, 그리고 방송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작시스템의 가장 하부에 있는 노동자들은 헌신을 강요당했고 다른 어떤 직업군보다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일당 몇만 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며 때로는 그 최소한의 보수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한국 대중문화 판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충무로, 제작사의 조감독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이겠는가? 수많은 단역배우들은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최악의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4대 보험 같은 것은 꿈도 못 꾸는 일이며, 그것은 마치 노동자도 인간이라 절규했던 전태일, 그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 섬유산업을 연상케 할 정도다.

 

이들(제작스태프와 단역배우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번 만들어 봐야 적자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제작사나, 방송사는 악랄한 사용자에 다름 아니다. 수많은 일용직, 잡급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처우는 언제나 뒷전이었으며 여전히 그러하다. 드라마 제작비용의 상승이 스타의 몸값 때문이라지만 과연 그것이 문제인지 아닌지 정확한 제작비 내역의 공개도 없을뿐더러, 설사 그렇다 해도, 스타들의 몸값을 올려놓은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이제 와 열악한 제작 현실 운운하는 것은 결국 방송사와 제작사의 몫이 줄었다는 것에 대한 아우성일 뿐 그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제작 스태프와 단역배우들에 대한 배려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명의 스타에게 언제까지 의존할 것인가

 

 

흔히들 대중문화산업을 스타의 산업이라 한다. 한 명의 스타가 모두를 먹여 살린다는 의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언제나 대중은 비나 보아, 배용준과 최지우, <대장금>과 <가을동화>에 열광하지 그것을 만들어낸 제작시스템에 찬사를 보내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불세출의 스타라 하여도 그를(혹은 그것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제작시스템,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불과 15년 만에 문화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 한국은, 값싼 노동력을 유일한 경쟁의 무기로 삼아 일본과 미국의 문화산업을 따라잡아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 동력은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에 봉착했을 때 제대로 수정, 보완하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문화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인적자원이 절대적인 분야다. 그래픽과 특수효과 같은 첨단의 기술 역시 기자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인 발상으로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든다고 할 때, 비록 그 모든 영예는 한 명의 스타가 가져간다 해도 그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획과 구성, 제작과 홍보 그리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단역배우로부터 스태프 하나, 하나까지 무수한 사람들의 창의력과 상상력, 헌신과 노고가 없으면 스타도 히트작품도 존재할 수 없다.

 

90년대 홍콩영화의 몰락은 유명한 배우나 감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서가 아니다. 오늘날 주춤한 우리 드라마나 음악콘텐츠의 위기가 재능 있는 신인들이 고갈되어서도 결코 아니다.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위기는 산업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제작시스템, 그 노동자들의 위기에서부터임을 인식해야 한다.

 

신인 배우가 연기를 통해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고, 연출가를 꿈꾸는 조연출들이 촬영 중인 작품이 끝나면 실업자가 되고, 움직이면 빚만 불어나는 제작 스태프들의 황당한 현실은 바로 우리 연예산업이 망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원인이 된다. 이 바닥에 발을 담그는 순간 먹고 살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한데도 뛰어든다면, 그는 용감한 것이 아니라 무식한 것이다. 무지가 인류를 구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헌신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상황에 처한 우리의 연예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탁현민 기자는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이며 오마이뉴스에서 탁현민의 imagine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자연, #대중문화, #연예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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