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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을 납치(?)중이신 우리 엄마.
 꿀벌을 납치(?)중이신 우리 엄마.
ⓒ 손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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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붕-" 하얗게 만개한 벚나무 아래에서 귀 기울이고 있으면, 끊임없이 들리는 꿀벌 소리로 또다른 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활짝 핀 벚꽃으로만 봄을 실감했었다. 엄마와 함께 비닐봉투를 들고 벚나무를 찾기 전에는 말이다.

" 아유~ 벌도 많네~ 유채꽃에 앉은 벌은 잡기도 힘든데, 여기 애들은 너무 쉽게 잡혀서 웃긴다, 야."
"엄마, 벌 좀 불쌍하다. 그리고 난 절대 안 맞을 거야."
"가시나. 니는 안 놔줄 거다. 뭐, 많이 잡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

엄마가 축구를 하다 발목을 삐끗한 남동생에게 봉침을 놓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재작년부터 봄이면 가끔씩 팔이나 다리 관절에 봉침을 스스로 놓으시며 효과를 자랑하던 엄마였다.

벌독은 여왕벌이나 일벌의 독주머니에 저장되어 있는데, 일벌은 공격자에게 방어용으로 벌침을 쏜 후 몇 시간쯤 뒤 죽는다. 벌침 자체가 내장기관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면 최후를 맞이할 벌들을 보며 작년의 뉴스 보도를 떠올렸다. 2006년 가을에 일어난 전대미문의 꿀벌실종사건. 그 해 가을부터 2년 동안 미국에서만 전체 36%의 꿀벌이 실종됐다. 꿀벌 애벌레를 공격하는 진드기의 소행도 아니었으며, 바이러스도 원인이 아니었다. 2007년 봄까지 아무 이유도 없이 북반구 꿀벌의 4분의 1이 사라진 것이다.

아인슈타인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한다"

로완 제이콥슨 지음 / 노태복 엮음 / 에코리브르
▲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로완 제이콥슨 지음 / 노태복 엮음 / 에코리브르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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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고 난 뒤, 4년 안에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2006년 가을부터 이어져 온 꿀벌의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이하 CCD)을 생각하면 무서운 말이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원제:Fruitless Fall)은 2006년 가을부터 겨울까지 단 두 계절 동안, 3000개의 벌통 중 2000개를 잃은 어느 양봉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후 CCD는 한두 곳의 양봉가를 넘어 북반구 전체로 번져나갔고, 유례없는 꿀벌의 실종으로 곤충학자들과 연구소가 원인 규명에 나섰다.

책은 이 연구과정을 꾸준하고도 친절하게 좇는다. 처음에는 신종 바이러스나 이미다클로프리드(체내 침투성 살충제로, 이 약품에 식물의 씨앗을 담갔다가 파종하면 농약을 따로 칠 필요가 없어 현재 세계에서 최다 판매되는 살충제다)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이마저도 명확한 정답으론 각광받지 못했다.

'2008년이 되자 과학자들은 CCD의 주범을 찾는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 양봉가 대다수는 이미다클로프리드가 주범이라고 믿지만, 그렇게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증거가 너무 섞여 있다. 그럴듯한 용의자마다 추적하여 벌에게 위협을 가할 만한 이런저런 증거들을 쌓아놓았지만, 끝내 결정적인 단서는 확보하지 못했다.'

신경쇠약 직전의 벌들

오늘날 꿀벌들은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각종 신종 바이러스와 살충제, 항생제, 영양실조, 지구온난화 따위다. 화석연료의 사용과 대단위 농업의 결합으로, 꿀벌들은 몇 주에 한 번씩 트럭에 실려 꽃이 피는 곳으로 이동된다.

물론 한국의 꿀벌들은 이런 장거리 이동의 스트레스에서는 예외이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산업화로 인한 꽃의 개체 수 급감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당신은 충혈된 눈으로 전국을 날아다니고, 아침 식사로는 콜라를 마시고 기력을 충전한다. 임대한 차를 끌고 업무 회의에 참석하러 나선다. 그런데 아뿔싸!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서 길을 헤맸다. 회의에는 초조하고 긴장된 모습으로 뒤늦게 참석한다. 위궤양이 도진 데다 항생제도 듣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고 화장실로 향해야 한다. 게다가 양탄자에서 벼룩이 튀어 양말 속으로 들어온다. 회의 중간에 방역 요원들이 들어와서 회의실 안에 흰 연기를 살포하자 당신은 구토를 일으킨다.'

최소한의 먹이로 하루를 살고, 각종 바이러스와 항생제로 생명을 잇는 꿀벌을 비유한 글쓴
이의 가상 시나리오이다. 오로지 상업적 가루받이용으로 길러지는 꿀벌의 하루는 이렇게 비극적이다.

취미로 기르는 양봉은 어떨까? 글쓴이는 소량의 취미양봉가 확산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실제로 CCD를 겪은 양봉가 몇몇이 남은 수의 벌통을 자연치유력에 맡겼더니, 몇 해 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경험했다. 꿀벌의 애벌레를 공격하던 진드기도, 어쩌면 급증하는 꿀벌 개체 수를 감소시키려는 자연현상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면역력이 돌아올 시간을 충분히 가진 꿀벌들이 번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다만 2~3년이 넘는 기간동안은 수입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취미양봉이 대안이 되는 것이다.

1개의 벌통으로 시작하는 '취미양봉'

활짝 핀 벚꽃속에서 꽃가루와 꿀을 채취하는 꿀벌
 활짝 핀 벚꽃속에서 꽃가루와 꿀을 채취하는 꿀벌
ⓒ 손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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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산다면 지금 당장 우리도 양봉을 할 수 있다. 한국에도 거창하게 100통 이상이 아닌 단 한두 개의 벌통으로, 천연밀랍과 벌꿀을 얻으며 만족하는 취미 양봉가가 꽤 있다. 한국양봉협회의 게시판이나 소수의 개인 양봉장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문의 및 매매가 가능하니, 여건이 된다면 당장 시작해 볼 일이다.

꿀벌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글쓴이는 '토종벌에 인기 있는 식물 목록'까지 빼곡히 정리해 놓았다. 아카시아와 코스모스, 무궁화까지 포함돼 있는 꼼꼼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언젠간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꿀벌이 불쌍하다는 우리 남매의 성화에, 엄마는 세 마리 벌의 꽁무니에서만 벌침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놓아 주었다. 그리곤 다음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나라고 빌고는 세 마리 모두 고운 흙에 묻어주었다. 꿀벌 없는 세상에서 결실 없는 가을을 맞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로완 제이콥슨 지음, 노태복 옮김, 우건석 감수, 에코리브르(2009)


태그:#꿀벌, #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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