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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황은 우리 가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남편은 소규모 무역회사를 다니고 있다. IMF 때도 아무 문제 없던 남편 회사였건만 이번엔 피해가지 못했다. 그동안 월급이 3년째 동결 상태였는데 올해부터는 10% 삭감됐다. 이로 인해 우리 집 생활패턴도 많이 달라졌다. 되도록 '안 쓰고 살자'가 가훈처럼 되어버렸다.

대학 4학년과 3학년 두 아이를 둔 우리 집은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이 있어도 매사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치솟는 물가도 한몫 하지만 덩달아 아이들 등록금도 천정부지로 오르니, 학자금 대출 때문에 가계는 이미 부도난 상태다. 그래도 남편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너희들 대학등록금은 졸업할 때까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만 전념해라. 하지만 졸업 후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이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

남편의 생활신조였다. 그러나 회사 사정이 녹록지 않은 데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무게를 더해 가면서 남편은 술자리가 잦아졌다. 두 아이 대학 등록금을 내야할 때가 되면 우리 부부는 말이 없어진다. 유일한 수입원인 남편의 월급은 삭감인데 반해 대학 등록금 해마다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 앞둔 대학생 아들, 벌써 1700만원 빚

1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촉구하는 예술, 이공계열 대학생대표자 대정부 농성선포식에서 대학생 대표자들이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열린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 반값등록금 실현' 등을 촉구하는 예술, 이공계열 대학생대표자 대정부 농성선포식에서 대학생 대표자들이 등록금 차등책정 철폐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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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담보대출을 해야 할지, 보험약관대출이나 학자금대출을 해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싼 이자를 내는 곳을 찾아 대출을 받아야 하기에 고심하기 마련이다. 이미 여러 차례 학자금대출을 받은 상태라 이자가 계속 늘고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군대를 마치고 복학한 아들이 등록금 고지서가 나오자 한 마디 한다.

"이번에도 학자금 대출을 해야 하나요? 졸업 후에 취직하면 제가 갚아야 하는 건가요? 취직하기도 만만치 않은데……."

등록금 때가 되면 아들은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하며 엄마 눈치를 살핀다. 그런 아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등록금 부담 때문에 요즈음은 용돈 달라는 말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밥은 먹고 다니니?"
"할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주신 용돈으로 학교식당에서 해결하고 있어요."
"학교식당 밥은 먹을 만해?"
"2200원에서 3000원하는 밥이 그렇지요. 그냥 허기만 면하는 편이에요!"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주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에게 학자금 대출 빚을 넘겨주지는 말자고. 살고 있는 집을 팔아서 아이들 등록금 대출받은 돈을 갚고 지금보다 작은집으로 이사하자고.

아들이 군대에 가고 작은애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공과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복학하자 한 학기에 443만6000원의 등록금을 내게됐다. 대학생 한 명이 1년 동안 천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는 것이다. 4학기를 대출한 아들 경우에는 벌써 17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등록금 생각만 하면 숨이 턱에 찬다

부모가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지켜본 딸은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자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가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지켜본 딸은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자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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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을 내야할 때가 되면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밥맛도 떨어진다. 대출이자를 갚기에 급급하다보면 저축은 상상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 둘을 대학에 보내는 경우, 이자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서적들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감까지 생각하면 숨이 턱에 찰 지경이다.

부모가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을 지켜본 딸은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자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행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매번 장학금을 받으며 가계에 보탬을 주는 기특한 딸이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 보겠다며 휴학을 한 것이다.

며칠 전 등록금 인하를 위해 삭발을 한 채 거리로 나온 여학생들을 지하철에서 만난 적이 있다. 찰랑찰랑했던 긴 머리를 삭발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3년 전 대학에 입학해 새내기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딸은 순수한 열정으로 전쟁 반대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했던 적이 있었다. 등록금 인하는 딸에게 부딪힌 직접적인 사안인데도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동참할 수 없는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게 다가온다.


태그:#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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