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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으로 글을 안쓰고 지낸 지 꽤 오래됐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실타래처럼 얽히는 때도 있었지만, 그보다 다른 일에 몰두해 있어서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입니다. 대한민국을 떠나 먼 이국 땅으로 가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15년간 다니던 회사를 이달 말에 그만두고 다음 달에는 호주로 이민을 갑니다.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

 

작금의 경제위기와 정치판의 모습은 국민을 끝없는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청년실업률과 불안한 실물경제는 서민대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국가재정의 건전성도 이미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고령화는 가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극심한 내수부진이 우리에게도 먼 후일의 일만은 아닙니다. 답답합니다.

 

정치권은 적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합니다. 허무맹랑한 처방과 시기에 맞지 않는 정책들을 가지고 다만 다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좀 발전이 있었던 민주주의는 빠르게 퇴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권위주의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때로는 우왕좌왕하며 임기응변식으로 국정을 이끌어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국민이 누려야 할 권력에 대한 비판은 현저히 위축되고 있습니다. 정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눈치를 살피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정치권력의 언론장악 시도도 점차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판 좀 했다고 잡혀가거나 수사를 받는 네티즌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비판하기를 두려워 할 환경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전직대통령의 측근들은 줄줄이 수사를 받거나 구금되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측근기업인으로부터 현정권과 가까운 사람들까지 돈을 받은 일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야에 따라서 검찰의 수사강도나 의지는 현저히 달라 보입니다. 이제 전직 대통령 가족까지 그에게 돈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의 경중을 떠나 철저하게 수사하여 의법처리해야 합니다. 또 형평에 어긋난 법적용이 있어선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형평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답답한 조국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경제는 희망이 안 보이고, 정치는 점점 퇴행하며, 국민의 말할 자유도 위축되고 있습니다. 언론조차 권력의 손아귀에 장악되어가고 있습니다. 법을 엄정히 집행해야 할 권력기관들의 줄서기도 이미 완전히 부활한 것 같습니다. 답답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조국을 떠날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라면 남아서 부당한 권력과 쟁투를 벌이는 것이 옳았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치신 수 많은 민주선열들께서 그랬던 것처럼 그런 투쟁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나는 투사가 아닙니다. 또 다른 자기역할을 거부하지도 부인하지도 못하는 소시민일 뿐입니다.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 역할이 있습니다. 가족이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상실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런 역할입니다. 누구나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 일조차 쉽지 않고 버거운 느낌이 듭니다. 내 가정의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 너무 소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절실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나름 적절히 적응된 생활을 정리하고 낯설고 어색한 이국땅을 찾아가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일상의 삶을 끝내 지킬 자신이 없어서 떠나는 것입니다. 만약에 실직을 하거나 건강을 잃거나 그 어떤 이유로라도 생활비를 벌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곧장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릴 것이 두려웠습니다.

 

만일 실직을 한다면 나로 인하여 이 세상에 온 두 아이들의 삶은 험난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그런 경우에 필요한 국가의 역할이 너무나 미비합니다. 아니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가가 나의 가족을 적절히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며 경제활동을 했는데 왜 국가는 내가 어려울 때 적절한 보호를 해주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위해 좀 더 많은 세금을 내라면 기꺼이 그렇게 할 용의가 있습니다.

 

곧 있을 미래의 불행을 대비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족하게 여기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미래는 닥치는 대로 대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암울한 미래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높은 주거비용과 사교육경쟁

 

대출을 받아서 산 집 때문에 매월 100만원이 훨씬 넘는 주거비용이 지출되어야 했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부담이었습니다. 다만 집 값이 과도하게 비싼 것은 분명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평생 집값을 치르느라 가처분 소득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의 불행에 대비할 여력도 소진되기 마련인 것이죠.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선행학습을 시키느라 지출하는 사교육비도 문제입니다. 누가 더 많은 돈을 투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사회적 계급이 정해지는 것은 모두에게 결국 불행이 될 뿐입니다. 극히 일부의 승리자를 위해 모두가 희생당하고 있습니다. 몰지각한 사교육비 경쟁에 뛰어들 능력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홀로 독불장군처럼 아이들을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난감한 일이죠. 이미 사교육을 위해 공교육이 상당 부분 양보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세를 거스르고 혼자만 다른 길을 가기도 어렵습니다. 또 그 저열한 경쟁의 대열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감당할 능력이 안됩니다.

 

설혹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사교육비를 퍼부을 여력이 있다손치더라도 그런 일에 동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하루종일 아이들을 닦달하고 고문하는 일은 옳지도 않으며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 대한 생각이 이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적절한 수준의 교육만 받고 여유 있게 노는 법도 배우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싼 집값을 치르며,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지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어서 선택한 또 다른 길이 저에게는 호주로의 이민이었습니다.

 

수직적 계급사회와 경직성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모두가 동등한 자유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매우 수직적이며, 경직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연령에 따른 수직적 관계, 소득과 직업에 따른 계급의 경직성 등으로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불합리한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때로는 고령자의 불합리한 생각에 반대하는 것이 불경죄가 됩니다. 상급자의 부적절한 일처리에 반대하는 것이 배제되고 왕따를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가 다수에 의하여 가혹한 대우를 받기도 합니다. 모두가 한줄로 늘어서서 수직적 계급을 이루고 있는 모습입니다. 상위계급에 있는 사람의 잘못이 모두의 잘못이 되어 그릇된 결과를 낳습니다.

 

분명 직업의 귀천이 알게 모르게 존재합니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적은 소득으로 연명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편하고 쉬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소득도 높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풍토도 있습니다. 그러한 풍토는 사회의 경직성을 더욱 단단히 고착시킵니다.

 

이런 경직성과 계급적 사고는 대단히 큰 사회적 비용을 수반합니다. 회사의 임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실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직 후 눈높이를 낮추어 말단사원의 직무에라도 일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체면 때문에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상관없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회사도 타사의 임원출신을 말단으로 근무시키려 하지는 않습니다.

 

조직의 인화를 해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작용하고 맙니다. 그래서 실직은 곧 파멸이라는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취업과 채용이 이루어진다면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경직성이 국가의 역할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입니다. 물론 대한민국은 그러한 역할을 국가가 거의 감당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민을 하려고 마음먹은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민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일인가?

 

이민을 간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내 나라를 떠나서 무슨 영화를 보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좋은 자연환경과 사회복지를 거론하며 부럽다고 합니다. 두 가지 다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립니다.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과연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가는 것일까요? 제 대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정다운 교류가 있고, 익숙하고 정든 환경이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당연히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할만큼 삶에 여유가 없어서 가는 것입니다.

 

좋은 자연환경과 사회복지 혜택도 매력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여유있고 넓은 자연 속에 살아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평소에 부지런히 일하며 세금내고 어려움에 처할 때 국가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는 것도 한편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의 땅에서 적응하며 사는 데에는 각고의 인내와 고통이 수반되는 일일 것입니다.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겁니다.

 

결국 이민도 또 하나의 선택에 불과한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꼼꼼히 살펴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유리할 것인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상황이 이민을 가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 다음에는 가서 겪어내야 할 여러가지 또 다른 어려움에 대한 각오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를 살펴야 합니다.

 

나는 다정한 지인들과의 교류를 손실하며 이민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물론 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잘 준비된 상태도 아닙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 곳에 도착하면 역시 장밋빛 미래가 아닌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그 곳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근근히 연명하는 삶을 살아도 할 수 없다고 각오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미래에 내가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그보다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를 암담하게 예측하도록 만든 대한민국을 또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되겠지요? 외국에 나가면 고국이 더욱 그리워지고 애국심이 생겨난다고 하더군요. 그리워도 참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위기를 잘 극복하고, 그동안 발전된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소중한 가치들을 상실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특히 서민대중의 미래가 점점 암담해지는 일은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더 발전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멀리서나마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찌질넷, 노사모, 노하우, 인터넷 까페에 동시에 올립니다.


태그:#호주이민, #대한민국, #사회복지, #사교육비, #주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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