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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8일 오전 10시부터 <PD수첩> 수사와 관련, MBC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납치사건이 벌어진지 2주 만에 언론사 압수수색이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25일, MBC <PD수첩> 이춘근 PD가 마포대교에서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에서는 '체포'라고 말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을 연출하며 벌어진 이 사건의 배경이, 검찰의 이런 무모한 행동을 유발시켰다고 보기엔 너무 조야하여, 이를 '납치'라고 밖에 달리 규정할 수 없을 듯하다.  

검찰이 25일 밤 마포대교 부근에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26일 오전 여의도 MBC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비상총회에서 이날 아침 수갑을 찬 이춘근PD가 검찰조사를 위해 서초경찰서에서 끌려나오며 "언론자유 보장하라!"를 외치는 장면을 공개했다. (TV 모니터 촬영)
 검찰이 25일 밤 마포대교 부근에서 MBC <PD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을 보도했던 이춘근 PD를 체포한 가운데, 26일 오전 여의도 MBC본사 로비에서 열린 노조 비상총회에서 이날 아침 수갑을 찬 이춘근PD가 검찰조사를 위해 서초경찰서에서 끌려나오며 "언론자유 보장하라!"를 외치는 장면을 공개했다. (TV 모니터 촬영)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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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PD는 이틀 만에 석방됐지만, 체포과정을 살펴보면 상황은 이랬다. 검찰 출두일을 넘기고 사내 농성 중이던 이춘근 PD는,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아내와 잠시 바람을 쐬고자 차를 타고 나선다. 이때 마포대교 위에서 뒤따라가며 미행하던 차량과 맞은편의 2대 차량이 길을 막아서며 긴급 체포 작전을 펼쳤고, 결국 MBC로부터 겨우 수백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이 부부의 드라이브는 중단됐다.

도대체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까? 이춘근 PD가 한국은행이라도 털고 도주 중이었다면 필자도 충분히 수긍했으리라. 아니면 마약이라도 소지하고 있던 걸까? 지금부터 경찰의 '이춘근PD 납치사건'에 대한 전모를 밝혀보고자 한다. 

검찰은 왜 이춘근 PD를 '납치'했나  

27일 밤 서울중앙지검에서 석방된 MBC <PD수첩> 이춘근 PD.
 27일 밤 서울중앙지검에서 석방된 MBC <PD수첩> 이춘근 PD.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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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2008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친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의 방영이었다. 이 방송은 참여정부에서 현 정부로 이어진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권과 농림부, 협상단의 잘잘못을 따진다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광우병과 인간 광우병의 위험, 수입으로 우리가 먹게 될 미국산 소의 관리와 도축에 대한 문제점, 허술한 검역체계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수입위생 조건의 제반 문제들을 다루는 방송이었다.

이때만 해도 농림부가 반발하고 나섰지만, 정권에 위협을 줄 만한 내용으로 인식되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후 학교 급식 등으로 선택권 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될 중·고등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촛불을 들고 나섰고, 이것이 며칠만에 대규모 촛불집회로 번져,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도심에서 촛불 집회를 이어가게 된다.

최초의 대규모 집회였던 청계천 집회에 등장한 피켓들을 보면 알 수 있듯, 촛불집회는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문제 제기만은 아니었다. '0교시 수업'에 대한 문제부터 '대운하 반대', '한미 FTA', '홈에버 비정규직 문제'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대부분의 이슈가 등장했다.

또 쇠고기 수입 반대를 축으로 한 이 집회들은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물대포 살수, 시민 연행,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가 불거졌고. 대통령이 두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하는 일이 생겼다.

 <PD수첩> 검찰 출두 거부, 왜?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비상 시국미사에 참석하여 미국산 쇠고기 장관 고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촛불집회에 강경 대응하는 공권력을 규탄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30일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비상 시국미사에 참석하여 미국산 쇠고기 장관 고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촛불집회에 강경 대응하는 공권력을 규탄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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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PD는 김보슬, 송일준 PD와 함께 위와 같은 정권 퇴진 운동의 시발점이 된 광우병 방송의 취재와 방영을 맡은 장본인이다. '눈이 올 땐 비질을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실현된 것인지 오비이락인지는 알 수 없으나, 촛불 집회가 잠시 수그러들자 <PD수첩>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도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번 정권 들어 벌어진 여러 건의 어이없는 납치사건 중 하나일 뿐일지도 모르는 '이춘근PD 납치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춘근 PD의 검찰 출두 거부 사유를 들여다보자. 

<PD수첩>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가 있었고, 이에 대한 검찰의 출두 요구를 거부한 <PD수첩> 담당 제작진의 행동은 일견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법 집행에 거부를 행사한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그동안 종교단체나 기업들을 비롯한 많은 이해단체의 소송에 시달려오던 <PD수첩>이, 유독 이 사건에만 출두를 거부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번 사건은 고소인부터 특이한 사건이었다. 농수산부 장관이, 대통령이 두 번이나 사과한 사안에 대해 언론을 고소한 것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언론이 정부 정책에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한 것에 대해, 정부 관계자가 법적 대응을 하고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민주주의는 독재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대통령이 있으나, 이는 국민의 대행이지 절대 권력은 아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폭거가 있을 수도 있기에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회나, 시민단체, 또 언론 등이 감시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만약 이들의 비판에 대해 정부가 개인들에 소송을 걸기 시작한다면, 이후 누가 감히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을까? 만약 <PD수첩>의 PD들이 조사에 출두했다면, 이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모든 언론들에게 최악의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고, 언론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을 멈추면, 그 순간부터 민주주의도 멈추게 될 것이 자명하다.

<PD수첩> 팀은 이에 더해 취재한 원본 테이프 제출 또한 거부하고 있다. 원본 테이프에는 음성변조나 모자이크 처리가 없고, 제보자 신원, 또 방송에 나오지 않은 인터뷰 등 취재 도중 수집한 모든 영상자료가 들어있다.

정부 관계자에 의해 소송이 들어오고, 그때마다 정부 정책에 비판한 익명의 제보나 내용이 정부에 노출될 수 있다면, 이후 누가 내부고발을 시도하고, 언론에 제보하고, 인터뷰에 응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의 비리를 그 회사 사원이 언론에 비밀리에 제보했는데, A회사에 제보 내용과 제보자가 노출된다면 이후 누가 감히 비리를 제보할 수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검찰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의해 정권에서 독립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춘근PD 납치 사건'에서 보듯 무리수를 던지는 검찰을 보면, 삼권분립의 원칙마저도 그리 든든한 보루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이춘근PD 납치 사건'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정부가 소송을 걸고, 정부가 조사를 하고, 정부가 벌을 내리는 것처럼 운용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믿는다, 다시 일어설 것을

MBC <PD수첩> 김은희 작가가 지인들로부터 받은 격려 문자메시지. "아무리 거센 바람도 언젠간 지나간다, 밥 거르지말고 씩씩하게 견뎌라, 24시간 응원할게"
 MBC <PD수첩> 김은희 작가가 지인들로부터 받은 격려 문자메시지. "아무리 거센 바람도 언젠간 지나간다, 밥 거르지말고 씩씩하게 견뎌라, 24시간 응원할게"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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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시작된 <PD수첩>은 외압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소외된 이웃과 서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고자 성역과 금기에 도전 해왔다. 때론 국가권력이나 특정집단에 공격을 받고, 탄압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에 굴종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PD수첩>이 앞선 이유로 최대의 수난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 정권이 덮어두고 싶어 하는, 때론 그들도 잘 모르는 '불편한 진실'을 <PD수첩>이 들춰냈기 때문이다. 이 진실은 국가권력이나 특정 집단 혹은 다수(Majority) 권력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진실을 폭로한 결과는 <PD수첩>에 대한 강압적이고, 불공정한 수사와 언론 탄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위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우려를 갖게 된다.

그러나 큰 고비마다 진실이라는 무기로 다시 일어선 <PD수첩>이 이번에도 힘든 시기를 무사히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거기엔 <PD수첩>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시청자들, 시민들의 노력이 함께 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고, 촛불집회를 거치며 '집단지성'으로 탈바꿈한 우리 사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PD수첩>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감시자로서의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줄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하여 시청자들은 계속해서 알 권리를 충족하고, 진실과 사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탄압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 이전보다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환골탈태할 <PD수첩>을 기대하며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동우 기자는 PD수첩 시청자 모임 카페 회원입니다.



태그:#PD수첩, #언론탄압, #촛불, #이춘근, #김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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