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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죽이는 곳이 군대였다. 적을 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전투가 없었던 기간에도 군대에서는 사람이 계속 죽어나갔다. 1980년에서 1995년까지 군복무중 사망한 사람은 9천 명에 달했다. 연평균 600여 명의 젊은이들이 국방부 표현대로 하자면 '비전투손실'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화가 만든 가장 중요한 변화로 군대 내 사망자 숫자를 꼽는다. 1995년 이후 2004년까지 연평균 사망자는 220명 정도로 떨어졌다. 민주화가 매년 400여 명의 젊은이들을 '살린' 셈이다. 군대는 그 성격상 시민사회의 개입이 가장 힘든 곳이지만, 시대적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불온서적' 헌소한 군법무관 파면... 기필코 복수하는 국방부

 

그런 군대가 요즘 가관이다.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제일 막나간다는 소리를 듣는다. 작년 7월,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대한민국사> 등과 같은 베스트셀러와 문광부 지정 우수학술도서를 포함한 23종을 불온도서라고 지정해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시민들은 해당 도서를 불티나게 팔아주면서 국방부를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금서(禁書)라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지만, 선정기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에 국방부가 발표한 것이라고는 겨우 한 학생운동단체의 추천 도서 목록이었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군법무관들이 이렇게 금서를 정하는 것은 군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모습에 군대가 변하기는 변했구나 생각했다. 한 해 400명을 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까라면 까는' 군대에서 '그만하십시오'를 할 수 있는 군대로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헌법소원 당시부터 명령 계통을 어겼네, 징계를 하네 난리를 쳤지만 헌법이 보장한 헌법소원을 한 걸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역시 국방부였다. 육군중앙징계위원회는 지난 3월 16일 헌법소원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군법무관 2명의 파면을 의결하면서 군 위신 실추와 복종 의무 위반, 품위 손상 등을 이유로 들었다. 누가 봐도 보복성 징계였다.

 

군대의 내부 규정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가? 상관의 결정이 헌법을 위반하였는지 상관에게 '건의'해서 확인해야 하는가?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군대는 사회가 아니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지 말기를. 80년 광주에서 민간인을 향해 발포했던 것 역시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쿠데타, 민간인학살, 군의문사, 녹화사업 등과 같은 경험을 가진 우리사회는 군대가 그 내부의 논리로만 움직일 때 어떻게 폭주할 수 있는가를 똑똑히 알고 있다. 

 

엄정한 군기 확립하겠다는 군, 그런데 무단골프는?

 

국방부는 "위기일수록 엄정한 '군기 확립'이 중요하다"고 징계이유를 설명했다. 군법무관이 헌법에 보장된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은 군기가 빠진 일이란다. 그래서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자 그렇다면 근무시간 중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행위는 어떤가? 헌법 소원이 파면이면, 이 엄정한 시기에 근무지 무단이탈에 대한 징계수준이 무엇일지 잘 상상도 안 간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지난 29일 육군 내부통신망에는 근무지를 이탈해 골프를 친 장교들의 명단이 일부 공개되었다. 공개된 것은 육사 출신 준장을 포함해 10명의 명단이었지만, 비공개까지를 포함하면 수백 명의 장교들이 근무시간에 골프를 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육군본부는 이들에게 소명 기회를 주었고, 10명의 장성과 직업군인 모두는 이 소명기회를 활용했단다. 복잡할 것도 없다. 육군본부는 공문으로 "개인별 구제기회를 주는 것이니 자진보고하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육사 출신을 비롯한 직업군인들에게는 사법처리나 징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무혐의 처분의 구멍을 열어준 것이다.

 

누가 봐도 군인에게 근무지 무단이탈보다 심각한 일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개인소명 인정 사유도 5가지로 엄격하게 정해놓았다. ▲ 공식 부대 승인 전투 휴무(당직 포함) ▲ 휴가명령 행정착오자 ▲ 기타 지휘관이 인정하는 타당한 사유 ▲ 명령에 의한 전속기간 ▲ 전역대기 직업보도 교육기관.

 

장성이 장교들과 근무시간에 골프 치러 다니는 것이 적발된 마당에 위의 5개 중에서 무슨 사유로 소명을 할 수 있을지 심히 궁금하다. <서울신문>은 한 관계자의 말을 빌려 "근무자가 아닌 장교들이 휴일에 나와 당직이나 휴가 등 관련 서류를 고치고 있다, 2~3번 골프를 친 무단이탈자의 경우 근무일을 휴가명령 행정착오자로 바꾸면 휴일에 친 것으로 기록된다"고 전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엄중한 시기에 골프 친 거 때우려고 공문서 위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명예보다는 골프채, 그게 MB시대 군 수뇌부 수준

 

동일한 지휘체계 안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 육본이 처리하고 있는 장성·장교의 무단골프 사건과 국방부가 지휘한 헌법소원 군법무관 파면을 다르게 볼 수 없다. 괜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니, 군 지휘계통의 엄정함이니, 군무의 순수성과 같은 표현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군법무관들은 상부가 하는 일에 대들어서 잘린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노골적으로 청와대의 의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헌법소원을 취하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는데도 버티자 파면시켰다. 중간에 취하한 2명의 법무관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무단이탈해 골프 친 이들에게는 싹싹 빌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걸린 장성·장교들은 서류를 꾸며서라도 싹싹 빌고 있다. 논리는 간단하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시키는 대로 하면 골프를 쳐도 봐주지만, 아니면 헌법에 보장된 행위라고 해도 끝장낸다. 다시 까라면 까는 군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군법무관들의 용기 있는 헌법소원은 불온서적 지정으로 국민바보가 되었던 군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었고, 내부의 건강한 비판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명령보다 중요한 것이 명예다. 그러나 군대는 이들을 파면시켰고 무단골프 장성과 장교들을 눈물겨운 전우애로 끌어안고 있다. 이로서 대한민국 군대는 명예보다는 골프채를 선택한 '골프채 군대'라고 불리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태그:#불온도서, #헌법소원, #국방부, #무단이탈,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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