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우리나라를 뒤흔든 기사 중 하나는 한 택시기사가 본인의 AIDS감염 사실을 숨긴 채, 콘돔도 착용하지 않고 만취한 여성 승객 등과 6년간 무분별한 성관계를 맺은 사건이었다.

모두가 염려하는 사실은 택시기사에서 시작된 감염이 여성승객들을 거쳐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감염되어 갔을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제천지역에는 AIDS 괴담이 확산되면서 하루 2~3명에 불과하던 AIDS 검사인원이 50명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간의 파장에 비하면 너무 이른 시기인 듯 하지만, 지난 17일을 기해 이 사건의 경찰수사를 종결하고 검찰로 송치하였다. 그러나 뚜렷하게 해결된 감이 없이 서둘러 일단락 지으려는 듯한 경찰의 모양새가 오히려 불안감을 지속시키고 있다.

어쨌거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민이 AIDS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유용한 교훈들도 상당수 얻게 되었다. 

[교훈 1]  AIDS의 감염력은 그 명성만큼(?) 강하지 않았다

<너는 내 운명>에서 석중은 은하에게서 AIDS에 감염되지 않았다.
 <너는 내 운명>에서 석중은 은하에게서 AIDS에 감염되지 않았다.
ⓒ 영화사 봄

관련사진보기

지난 13일, 질병관리본부는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발빠르게 사실 해명에 나섰다. '해당 AIDS 감염인은 2003년 8월19일 HIV 양성으로 확진돼 담당 보건소에서 관리해 온 자로 30여 차례 이상 주기적인 상담과 건강관리, 투약과 검진을 통해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사실과 'AIDS 감염력 측정 지표로 볼 수 있는 주기적인 HIV RNA 정량 검사에서 200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AIDS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수준을 보였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전파행위를 해도 감염력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특히나 강조했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는 일반인에게 안심을 주고 싶겠지만, 'AIDS = 죽음의 병'이라고 뇌리에 박혀 있는 대대수 국민들은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껏 AIDS에 관한 의학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진보했는지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DS 관련 의학의 현주소는 어렵지 않게 가늠해 볼 수 있다. 일례로, 1991년 AIDS로 인해 은퇴한 NBA 농구스타 매직 존슨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 있다. 예전에는 AIDS가 죽음의 병이었지만, 최근엔 복용이 간편해져 조기에 약만 꾸준히 복용해도 정상생활 유지가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미 AIDS가 당뇨, 고혈압과 같이 만성질환화되어 조기발견으로 적절하게 치료하고 관리하면 건강인과 같은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한 질병이므로 조기검진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완치는 안되지만 꾸준히 관리하면 생명연장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2005년 개봉된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석중(황정민)은 은하(전도연)와 결혼관계를 유지했지만 그가 AIDS에 감염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 스토리 흐름 면에서 봐도 그는 AIDS에 감염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왜 감염되지 않았을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AIDS를 담당하고 있는 이영숙 팀장은 "여성의 질액은 강한 산성이고, 질벽도 강하여 이성 성관계의 경우 AIDS에 감염될 확률은 낮다"고 말한다. 이성 성관계에 비해 동성간의 성관계의 경우 AIDS 감염률이 높은 이유는 항문의 내벽이 약하여 모세혈관이 파열되면서 쉽게 감염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이성 성행위에 의해 AIDS에 감염될 확률은 1000분의 1∼4 수준에 불과해 실제로 감염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교훈 2] AIDS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이번 사건으로 '청풍명월의 도시'라고 불리던 청정도시 제천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와 동시에 AIDS라는 질병이 도시나 유흥가에서만 일어나는 질병이 아니라는 것과 AIDS 문제가 우리나라에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사실이 함께 증명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1985년 국내 첫 HIV감염인 발견 이후 23년 만에 누적 감염인 수가 6천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2012년쯤에는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 안된 감염자, AIDS에 감염되고도 확인되지 않은 감염자를 합치면 국내 AIDS 감염자가 이미 최소한 1만 명을 넘어섰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AIDS 문제는 국내보다 해외, 특히 아프리카 지역에서 더욱 심각하다. 유니세프 자료에 의하면 AIDS는 지난 10년 동안 세계 보건부문 발전에 있어 가장 큰 문제이며, AIDS 감염자의 70%, AIDS 고아의 80%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있다.

2007년 현재 전세계의 3320만 명이 AIDS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감염자 중 210만 명은 15세 미만의 어린이다. 하지만, AIDS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중 치료받는 어린이의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2007년 한 해 동안 29만 명의 어린이가 AIDS로 목숨을 잃었고, 1,520만 명의 어린이가 AIDS로 부모 중 한 쪽을 잃고 AIDS 고아가 되었다.

AIDS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학교에 갈 기회와 보건의료를 받을 기회,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기회와 안전한 거주지에서 생활할 기회 등 기본 생존에 필요한 중요한 기회들을 빼앗길 위험이 커진다.

더 이상 AIDS는 멀고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AIDS를 피할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AIDS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위해 계몽활동을 활발하게 해야 하며 조기 검진과 적절한 치료를 동반해야 한다.

[교훈3] AIDS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 계속 해야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어린 봄이를 통해 AIDS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관심을 증대시켰다.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어린 봄이를 통해 AIDS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관심을 증대시켰다.
ⓒ mbc

관련사진보기


지금도 대중매체와 책, 기업활동 등을 통해 AIDS 계몽활동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2007년 AIDS 문제를 내세운 장혁, 공효진 주연의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는 20% 내외의 시청률로 종영되었다. 이 드라마는 AIDS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키고, 편견을 줄이는 데 공헌한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드라마상에서 수혈 과정에서 AIDS에 걸린 꼬마 봄이가 일반인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AIDS가 일상에서는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일상적인 신체접촉이나 소변, 땀, 침 등으로 AIDS가 전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

또 유아용 그림 책 '브랜다의 피 속에 작은 용이 살고 있어요'는 HIV에 감염된 3세 여아 브랜다에 관한 이야기로, 브랜다의 양육어머니가 실화를 바탕으로 직접 썼다고 한다. 이 책은 AIDS에 걸린 아이들도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썼는데,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라면 AIDS에 걸린 친구들도 아주 평범한 아이들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여성 화장품 브랜드 MAC은 VIVA GLAM 립스틱의 판매수익을 적립하여 지난 15년간 약 1800억원의 MAC AIDS FUND를 조성하였다. 세계 60여 개국 700여 단체에 기부해 왔으며, 국내에서는 총 8차례에 걸쳐 6억원을 지급하였다. 이중에는 한국AIDS퇴치 연맹의 프로그램 지원사항도 있는데, HIV 무료 익명 검사센터를 후원하고 청소년을 위한 AIDS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또래 지킴이'들은 친구 또는 청소년들에게 AIDS 예방에 대한 정보 제공과 상담자로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같이 AIDS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각종 매체와 프로그램 활동을 통해 지금도 이루어 지고 있다. 또 많은 공익단체들이 AIDS를 퇴치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AIDS 사업을 지원하는 기업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며, 해외에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튼 존과 같은 유명스타만 맡게 된다는 AIDS 홍보대사도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인기가 없다.

AIDS 퇴치 운동을 하기 위해 홍보대사를 세우려 해도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이미지 타격을 우려하여 동참을 고사하거나, 기껏해야 1회성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AIDS는 여전히 대중에게 이미지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AIDS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고도 험하다.

[교훈4] 보건당국이 어떻게 성생활 관리하나? 본인 스스로 지켜야

질병 혹은 방역 관련 사건과 같은 사건이 터지고 나면 "허술한 관리 체계" 혹은 "보건당국의 환자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식의 자극적 제목의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조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이 진정 보건당국만의 문제인지를 말이다.

충북 제천시보건소는 2003년 전씨가 AIDS 감염자로 등록된 뒤 줄곧 관리해 왔다. 사실 관리라고 해 봐야 전화를 걸어 약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가끔 전염 예방을 위한 성교육을 했다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보건소의 담당인력은 단 1명이었다고 한다. 이 한 사람의 인력이 지난 수년간 계속되어온 여성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을지 되묻고 싶다.

수혈과 모자감염 등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한다면, AIDS는 사실상 개인의 성생활을 통해 전염된다. 성관계는 가장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사생활이므로, 24시간 동행하며 감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이것은 보건당국만의 문제라 할 수가 없다. 형식적인 관리를 통해 AIDS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 말로 허상이 아니겠는가? 어떠한 정부기관이라 해도, 어떠한 법과 제도로 재정비한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AIDS로부터 지켜주지는 못 할 것은 자명하다.

AIDS 문제는 법과 제도로 해결될 문제라기보다는 감염자와 비감염자 모두 절제된 성행위로 개인 스스로를 보호해 가야 하는 문제다. 즉, AIDS 감염 전파의 문제는 기존 AIDS 환자의 방치, 구멍 난 관리체제의 방치로 인한 문제라기보다는 무분별한 성문화의 방치와 편견의 방치가 문제인 것이다. 무분별한 성문화는 언제든지 AIDS가 창궐할 바탕을 만들어 주는 것이요,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편견은 당사자의 치료를 더디게 만들고, 언제든지 반사회적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근원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반복하지 말아야 할 실수는 문란한 성문화에 우리 자신을 계속 방치함으로써 위험한 상황에 계속 노출해 두는 것이요, AIDS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방치함으로써 AIDS 환자들의 건전한 사회 생활을 외면하는 것이다.

결국, AIDS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AIDS에 대한 올바른 이해, AIDS 감염인에 대한 편견의 극복과 꾸준한 치료 등 지원, 그리고 올바른 성문화의 확립이라는 사회 조치가 병행되어야만 하겠다.


태그:#제천, #AIDS, #에이즈, #택시 기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