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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를 강타하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 파동'이 끝내 곪아 터지고 말았다.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재판'을 담당하던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재판 압력'을 가했는지 여부를 놓고 대법원이 진상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서울남부지법 김형연 판사(사법연수원 29기)가 신 대법관의 용퇴를 주장하고 나선 것.

 

판사가 신 대법관의 용퇴를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일선 판사들이 '사법불신'을 우려하는 불만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어서, 향후 판사들의 집단반발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형연 판사, 신영철 대법관 '용퇴' 주장

 

김 판사는 8일 법원내부통신망에 '신영철 대법관님의 용퇴를 호소하며'라는 글을 올리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가급적 빨리 용퇴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용퇴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먼저 신영철 대법관의 해명 내지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신 대법관은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촛불)사건은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재판을 신속하게 하는 것이 합법이고 이를 법원장의 입장에서 주문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판사들이 그 정도의 발언에 영향을 받는다면 판사라고 할 수 없으며, 법원장의 위와 같은 행위는 재판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 내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는 이어 "적용법조항에 대해 다른 법원의 위헌제청이 있어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계류 중인 때에는 굳이 중복해 위헌제청을 하지 않고 당해 사건의 진행을 사실상 중지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 사건을 처리해 온 것이 법원의 실무 관행"이라며 대표적인 경우로 양심적 집총거부사건을 꼽았다.

 

또 "법원장의 언행으로 재판에 실제로 영향을 받을 판사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판사들이 그 정도의 발언에 영향을 받는다면 판사라고 할 수 없다'는 대법관님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며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것이 재판에 대한 간섭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되지 못할 것"이라고 신 대법관의 주장을 일축했다.

 

김 판사는 "이는 재판에 대한 간섭행위가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강조하며 "재판의 간섭행위였느냐는 그 행위를 하는 사법행정권자의 입장에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그 행위를 당하는 판사의 입장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근무평정권한과 사무분담권한 및 배당권한 등을 갖고 있는 법원장이 특정사건에 관해 여러 차례에 걸쳐 그것도 인사권자인 대법원장님을 거명하며 처리방향을 암시한다면 어느 판사가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겠나?"라고 따져 물으며 "결국 그 행위를 당한 일부 형사단독판사들이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촛불재판에 대한 일련의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사실상 신 대법관이 '재판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근무평정권한자가 사실상 재판압력 행사했다"

 

아울러 김 판사는 "재판에 관여할 의도로 그와 같은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신영철 대법관님의 말씀을 믿고 싶다"며 "촛불재판에 대한 일련의 사태가 신영철 대법관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가 현재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 누적돼 발생한 문제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어느 때부터인가 사법부 조직에 행정부의 문화가 서서히 자리하기 시작했다"며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라는 구호 아래 사법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을 섬기는 법원'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생긴 구호다.

 

그는 "그리하여 코트넷(법원내부통신망)에는 각급 법원이 경쟁적으로 실적을 홍보하고 판사들은 그 실적을 위해 재판업무와는 별개로 이리저리 불려 다녔으며, 판사의 직접 보고를 요하는 사안은 갈수록 증가하고, 사건처리율, 조정성공률, 법정개정시간 등의 통계수치와 관련하여 판사들을 경쟁으로 몰아넣었다"고 고백했다.

 

또 "일반직 직원이 하던 일에 판사가 배치돼 재판업무가 아닌 행정업무를 하기 시작했고, 공보담당판사는 공보업무와 함께 법원장 비서업무도 하기 시작했으며, 아예 기획법관이 것도 생겼다"며 "판사는 피라미드 조직에 편입됐고, 어느덧 판사도 피라미드 조직의 조직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각하도록 만들었다"고 판사의 자화상을 슬퍼했다.

 

김 판사는 "그런 반면 재판권에 대한 외부의 침해가 있어 그것이 가끔 문제가 된 경우 앞서 본 것과 같은 행정력은 어디 가고, 재판과 관련된 일이라는 이유에서인지 해당 법관 개인에게만 그 대처를 맡겼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촛불재판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는 비대하고 강력해진 사법행정권력이 자제력을 잃은 채 판사를 순화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고 부하직원으로 여겨온 풍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하며 사법부 수뇌부에 쓴소리를 냈다.

 

"신영철 대법관 언행, 중대한 재판침해행위"

 

그러면서 김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에게는 '용퇴'를, 이용훈 대법원장에게는 가칭 '법관독립위원회' 설치를 호소했다.

 

김 판사는 먼저 "신영철 대법관님이 용퇴의 결단을 내려달라"고 고언했다. 이어 "대법관님께서 심정적으로 억울하실 수도 있겠지만 외부로 드러난 언행은 사법부의 권위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한 재판침해행위이고, 대법관님이 자리를 보전하고 계시는 한 사법부는 계속 정치세력의 공방과 시민단체의 비판에 눌려 있어야 할 것"이라고 용퇴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비록 진상조사단이 현재 활동하고 있지만, 조사과정에서 더 이상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도 사법부의 구성원으로서 차마 못 볼 일이고, 더구나 구성과 관련해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끝난다고 해서 이 사태에 마침표를 찍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오히려 새로운 비판만 가중하는 쉼표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우려했다.

 

김 판사는 "무엇보다도, 저를 비롯한 후배 법관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판사의 업무를 수행할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라며 "그러니 뒷모습이 아름다운 분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가급적 빨리 용퇴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이 호소는 제가 며칠간 잠을 못 이룬 후에야 드리는 것이니, 사법부를 사랑하는 갸륵한 후배의 고언으로 받아들이셨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라고 고뇌에 찬 고언임을 강조했다.

               

대법원장에게 '법관독립위원회' 설치 건의

 

이와 함께 김 판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가칭 '법관독립위원회' 또는 '재판독립위원회'의 구성을 건의했다.

 

그는 "법관의 독립 내지 재판의 독립은 사법부가 지켜야 할 본질적인 가치임에도, 지금까지 매우 소홀하게 취급돼 침해를 당하는 해당 판사에게만 맡겨뒀다"며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재판업무를 수행하면서 침해자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다 판사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보니, 거의 대부분은 일방적으로 매도를 당하면서 이를 참고 살아 온 것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는 법관의 독립 내지 재판의 독립이 단순한 이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구현하기 위한 특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위원회에 법관의 독립 내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사례에 대해 해당 판사의 신청을 받거나 또는 직권으로 경위 조사를 하고 침해행위라고 판단하는 경우 기관의 이름으로 항의를 하거나 징계요청, 수사기관에의 고발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 문제되고 있는 사법행정과 재판간섭 사이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도, 진상조사를 하는 것도 모두 이 기구(위원회)가 맡으면 될 것이라고 기구의 역할을 덧붙였다.

 

김 판사는 다만 "위원회가 어느 특정세력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도록,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 사법행정과 전혀 관련이 없는 법관으로 판사회의에 의해 선출된 법관, 법대교수, 재야법조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하고, 대법원장 직속 기구로 설치하되 그 독립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저의 졸견을 피력했는데, 비록 협량이라고 나무라는 하되, 사법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충정만은 이해해 주기 바란다"라고 끝마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로이슈, #신영철 , #김형연, #사법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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