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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기장군 장안사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개울을 건너, 삼각산- 시명산- 불광산- 장안사으로 내려 오는 긴 산행로를 택했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내 발자국 소리에 왠지 좋은 일이 있을 듯한 예감에 휩싸였다. 제법 가팔라 보이는 길을 보무당당하게 올라갔다. 이번 산행은 고독하게 혼자다. 그래도 다박다박 산을 걷다보니 맑은 공기 청아한 바람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승되었다. 
 
걷고 또 걸으면서 또 걷다보면 잡념이 없어지는 것이 등산 아닌가. 세속에 찌든 피곤을 주말이면 산에 와서 다 씻는 것이다. 듬직한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걸기도 하고, 혼자 휘파람 불며 흥얼흥얼 춥지도 덥지도 않는 2월의 꽃샘 바람 속으로 올라 올라가니, 장안사 큰 가람이 엽서그림처럼 한 눈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높은 곳으로 올라온다는 것은 발아래 세상을 두는 재미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녀서 제법 길이 닳아 보이는 바위틈새로 난 좁은 산행로를 이용해서 위로 위로 올라갔다. 중간 중간 만나는 이정표가 삼각산 가는 방향을 안내했다. 이 길은 높지도 낮지도 않아 산길을 걷는 재미가 솔솔 했다. 조금 가니 '헬기장' 가는 산길에 보기 좋은 황금빛 낙엽이 카펫트처럼 깔려 있었다.
 
나는 어린애처럼 낙엽이 깔린 숲길을 걸어보았다. 사각사각 마치 지폐 헤는 소리 같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도 좋지만, 숲은 향기로운 낙엽냄새 흙냄새 그리고 앙상했던 나무의 물관에서 뿜어나오는 나무의 향기가 콧끝을 맴돌았다. 등산은 산벗이 있으면 있는 대로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그 고독이 나쁘지 않게 좋다. 진짜 여행은 그래서 여럿이 보다 혼자가 좋은 것이다.
 

겨울 숲에서 봄 숲으로 넘어오는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도 따라서 겨울의 마음에서 봄의 마음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되는 것 같다. 다박다박 삼각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내 추운 마음에서 꽃이 활짝 핀 마음의 정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듯. 나는 길을 걷다가 멈추고 두리번 두리번 나무의 생김새도 살핀다.
 
산벗들과 올 때 미처 살펴 보지 못했던 다양한 바위들이 내 발길을 붙들었다. 숱한 세월의 바람이 조각한 갖가지 바위들 속에 얼굴 없는 사람 같은 기묘한 바위 하나 만났다. 말이 없는 바위들 속에도 마음이 들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거북이 모양의 바위, 군화 모양의 바위, 토끼 모양의 바위, 용 모양의 바위들이 에워싸인 숲길은 의외로 인적이 없고, 찰칵찰칵 내가 누르는 셔터 소리에 청솔모 한 마리가 깜짝 놀라 나뭇가지 위로 위로 달아났다. 그 나뭇가지 끝 올려다 보는 2월의 하늘이 아름다운 물빛이었다.
 

삼각산 가는 길에 만난 전망대에 오르니 저멀리 동해바다가 보이고 울산 시가지도 보였다. 날씨 탓에 시계가 흐릿했지만 흐릿한 풍경 그대로 운치가 있었다.삼각산 정상에 오르니 시명산도 보이고 '해운대의 C.C'도 보였다. 여기까지 올라오면 내리막코스. 이 산행로는 음계처럼 오르락 내리락 되는 반복이 있어 콧노래가 흥얼거려지는 코스다.

 

이정표가 알려주는 시명산 산행로로 가지 않고 골프장 쪽으로 향했다. 조금 올라가니 삼거리였다. 이곳에서 '입산금지'의 안내판을 만났다. 그런데 출입금지 철조망이 설치되고 경고 표지판이 길을 막았다. 길을 다시 돌아서 가야 한다 ? 또 다른 빨간 글씨의 안내판을 읽으며 절로 한숨이 쏟아졌다.
 

잘 나가던 길이 '입산 금지 금역' 안이 아닌가. 또 한번 한숨이 푹 쏟아진다. '어쩔 수 없다. 다른 길로 돌아가야지... 그래 산행은 정상을 정복하기 위함만 아니라, 산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나는 오늘 만큼은 나귀처럼 다박다박 걷는 거다.' 그러나 또 하나의 입산 금지 안내판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입산하는 자는 벌금이 자그만치 20만원이라니…. 이런 안내판은 산의 입구에 서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길은 다시 '某, 골프장'을 피해 생긴 등산로를 따라 이어졌다. 길은 가파르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래를 내려다 보니 골프 공 날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산행로 다시 두구봉(564m)의 전망대에 멈추었다. 눈 앞에 탁 트인 전망을 펼쳤다. 구름이 신비한 하늘 궁전을 지으며 흘러갔다. 나는 잠시 심호흡했다. 내 폐 속에 풍선처럼 맑은 공기에 나는 상쾌해졌다.

 

시명산 정상에서 빠른 걸음으로 10분정도 걸으니 불광산이 나왔다. 불광산 가는 길목에 양산 대운산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으나, 이길을 택하면 시간이 길어질 듯했다. 길은 척판암 앞의 대밭이 있는 도로로 향했다. 매점도 있고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는 가게 앞에서 당나귀를 만났다. 당나귀의 주인은 매점 가게 주인이었다. 당나귀는 등짐 대신 가게를 선전하는 광고 현수막을 등에 부착하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오전 10:40 분경. 시계를 보니 오후 5시였다. 점심을 먹은 시간 빼면 쉬지 않고 5시간 이상을 걸은 것이다. 나귀처럼 다박다박 말이다. 오늘의 산행은 나귀를 만나기 위한 것 같았다. 나는 가다가 뒤돌아 보았다. 나귀의 눈은 왠지 슬픈 듯 보였다.
 

덧붙이는 글 | 불광산 산행은, 장안사 가는 교통편의, 해운대 역앞에서 39번이나 1003번 직행 버스를 타고 기장 시장에 내려, 9번 마을 버스를 이용하면 좋다. 


태그:#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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