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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용산 철거민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10일 사의를 표명했다.

 

경찰청장에 내정된 지 23일, 용산 철거민 참사가 있은 지 21일만으로 치안총수가 내정단계에서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일 저녁 청와대에 사의를 전달한 김 청장 내정자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고 이후 불법 폭력행위에 대한 비난에 앞서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경찰에 대한 책임만을 강요하는 일각의 주장에 많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공권력이 절대로 불법 앞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는 조직 내외의 요구가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비롯한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저 개인의 진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저의 사퇴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나 김 청장은 "수도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벽돌, 염산병이 무차별로 날아들어 건물이 불타고 교통이 마비되는 준도심 테러와 같은 불법행위가 더 이상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며 "민주사회에서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용산 화재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명백히 밝혀졌다"면서 "극렬한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과정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사고"라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사회적 정의 실현보다는 목전의 정치적 이익과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여론몰이식으로 경찰을 비난하고, 불법폭력의 심각성보다 경찰의 과오만을 들춰내는 비이성적 습성을 하루빨리 타파해야 한다"며 사퇴를 요구해온 야당과 시민단체들을 비난했다.

 

김 청장은 "경찰이 이유없이 매 맞거나 폭행당하는 것을 국민들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국민 여러분이 경찰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줘야 경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김 청장은 기자회견문에서, 진압과정에서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묘역(대전현충원)을 참배하고 12일 퇴임식을 가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청장의 사의 표명은 비록 '자진사퇴'의 모양새는 띠었지만, 용산 사건으로 들끓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여권의 고육책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2005년 시위 농민 사망사건으로 허준영 경찰청장이 물러나는 대신 경찰이 과잉진압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했던 것과 유사하게 이번 사건이 처리되는 셈이다.

 

여당은 외견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명예 지킨 적절한 처신" - "법치주의의 천박한 뿌리"

 

'김석기 책임론'을 일관되게 견지해온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청장의 자진사퇴는 자신 뿐 아니라 경찰의 명예도 지킨 적절한 처신"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남경필 의원도 "적법·위법 여부를 떠나서 이번 진압 과정에서 6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여기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책임은 져야 된다"고 김 청장 사퇴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당 일각과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김 청장의 사퇴를 놓고 이론이 분분하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법치와 여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김석기 퇴진' 카드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는 것이 비판론의 골자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청와대 일부 세력들이 (김 청장의) 자진사퇴를 강하게 압박하고 유도했다"며 "얄팍한 정무적 판단으로 국정운영의 기본을 그르치는 것 아니냐"고 청와대 참모진을 질책했다.

 

신 의원은 "경찰이 직접적 사인의 책임이 없는데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법치주의의 천박한 뿌리를 보는 같아 씁쓸한 심정"이라며 "반정부 시위를 두려워해 김 내정자의 옷을 벗기는 것은 자신감의 상실이고 국민들에게 떳떳치 못한 선택"이라고 탄식했다.

 

보수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도 10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는 자진사퇴라는 쇼다. 도덕적 책임을 진다면서 가장 부도덕한 정치적 쇼를 하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라고 공격했다.

 

조 대표는 "결론적으로 이 대통령은 혼자 살기 위해 경찰과 국민을 버린 것"이라며 "취임 이래 단 한 번도 국민을 감동시킨 적이 없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라는 것도 한강의 기적에 속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태그:#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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