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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1월 23일 평양 백화원 국빈관에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1월 23일 평양 백화원 국빈관에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북한주재 중국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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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미용 발언과 대남용 발언

북한의 군사, 외교, 통일을 담당하는 3개 기관이 새해 들어 잇달아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

1월 13일 북한 외무성은 북미 핵군축협상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1월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성명을 통해 NLL을 부정하고, 대남 '전면대결태세 진입'을 선포하였다. 이어 1월 30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를 위한 그동안의 합의를 무효로 하고,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약속한 NLL의 평화적 이용을 폐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조평통은 남북한이 '전쟁접경'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총참모부 성명과 조평통 성명은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깝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격화될 것이 너무나 분명한 상황에서 2월 2일 총참모부는 다시 한 번 북미 핵군축을 주장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를 향해서는 의제 선점을 위한 샅바싸움을 시도하고 있고, 이명박 정부에게는 전면대결을 선언하고 있다. 핵군축을 요구한 외무성 성명은 미국을 향한 것이고, 조평통 성명은 대남용이다. 

심사 뒤틀린 북한

북한이 남한에 대해 초강경 성명을 발표한 것은 남한 정부가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지 않고 있고,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을 확산시켰다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평통 성명은 "최고존엄을 함부로 헐뜯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까지 전면부정"한 것을 남북관계 악화의 요인으로 꼽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소홀히하고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이행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북한의 누적된 불만이 조평통 성명의 배경이다. 조평통 성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최고존엄을 함부로 헐뜯고"를 남북대화 단절의 첫번째 이유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을 제기한 것에 대한 북한의 격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가 갖는 위상을 고려하면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 유포'에 대한 불만조차 직접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표현하는 순간부터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흠이 생긴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에 대한 직접 언급은 삼가면서 지속적으로 뒤틀린 심사를 표출할 것이다. 

6·15 선언과 10·4 선언 이행을 강조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이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은 모두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직접 서명한 문서는 두 선언밖에 없다. 북한은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이명박 후보가 확정된 2007년 하반기부터 당선, 취임 때까지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이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상한 침묵은 2008년 3월까지 이어졌다.

이 무렵 북한 관계자 가운데는 남한 사람들에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이 침묵하는 동안 인수위원회와 새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에 의해 지난 10년의 남북관계를 부정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새정부는 신중하게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기 보다는 설익은 계획들만 성급하게 발표하였다. 마치 북한을 악의적으로 무시하는 대열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책 재검토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정부차원에서 조정과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이 '그동안 참았다'고 자주 말하는 것은 이 시기의 침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8년 4월부터 지난 몇 달 동안의 침묵을 깨고 6·15 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라며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다 점차 비난의 강도를 높여왔다. 이런 와중에서 불거진 '김정일 위원장 와병설'은 결국 불구덩이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북한의 조평통 성명은 이런 상황을 담고 있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대남 강경책을 구사할 때 흔히 사용하는 격렬한 어조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북한의 화법이 늘 그렇다며 상황을 쉽게 넘기려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2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미셸 오바마.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2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오른쪽은 부인 미셸 오바마.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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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핵군축협상?

이번 조평통 성명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문제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한 '관심끌기용'은 아니다. 북한은 이미 오바마 정부를 향해서 손에 쥐고 있는 핵카드를 흔들어왔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앞둔 올 1월에 북한 외무성은 핵문제에 대해 두 차례의 강경 입장을 발표했다.

1월 1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와 주한미군의  핵보유에 대한 검증, 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요구하였다. 이 담화에서 북한은 '선 비핵화, 후 북미 관계개선'이 아니라 '선 미국의 핵위협 제거, 후 비핵화'라는 순서를 제기했다. 북한의 비핵화는 미국의 대북핵위협이 제거된 이후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1월 17일에 외무성 대변인은 핵문제의 본질에 대해 '미국핵무기 대 북한핵무기'라고 주장하였다. 미국을 향해 북미 핵군축협상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지난 2월 2일에는 총참모부가 핵군축협상을 주장했다. 외무성의 두 차례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핵문제에 대해 외무성이 아닌 총참모부가 나선 것은 북미군사회담을 겨냥하고, 또 북한외무성 성명에 대한 남한 정부의 반박('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관련한 외교부 당국자 논평' 1월 15일)을 재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한과 관계를 외교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남한 정부에 대한 반박에 외무성이 나서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이런 발언들은 9·19 공동성명을 비롯한 6자회담의 여러 합의들과 어긋난다. 6자회담에서는 비핵화의 경로로 폐쇄-불능화-폐기의 3단계를 합의하였다. 2단계 불능화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부시 정부가 검증문제를 과도하게 제기하는 바람에 폐기단계로 넘어서지 못하고 지금 추춤거리고 있는 상태이다. 미국이 폐기단계에나 해당하는 수준의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 지나친 조치라고 한다면, 현재 북한의 주장도 6자회담의 합의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바마의 '핵없는 세계'와 북한의 '속썩이기'

새해부터 이어진 핵과 관련한 북한의 강경발언은 당연히 오바마 정부를 향하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에서 우선순위에 있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강화와 '핵없는 세계(Nuclear-Free World)'이다. '핵없는 세계'를 위한 핵심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가 비확산 정책이다. 북한, 이란 등의 핵개발을 막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다. 비확산을 위해 핵연료은행(Fuel Bank) 설립에도 적극적인 편이다. 핵연료은행을 통해 평화적 핵이용을 원하는 나라들에게 핵에너지를 제공하여 핵무기 개발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또 핵무기 해체에 따라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런-루가 프로그램'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악행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부시식 접근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안전한 핵폐기'라는 오바마식 접근법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둘째, 핵보유국들의 핵무기 감축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와 핵군축협상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5월 NPT 재검토회의를 통해서 이런 구상에 대한 1차적인 결실을 얻고자 할 것이다. 이 회의에서 국제적으로 핵무기의 위협을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며 NPT를 강화할 경우 오바마 정부는 외교적 성과를 얻으면서 동시에 지지기반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신년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핵관련 강경발언은 오바마 정부의 '핵없는 세계' 추진 구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의 요구를 무시해서 북한 핵 개발이 가속화되면 이란의 핵개발을 부추켜서 NPT 체제가 흔들릴 것이다. 북한과 핵군축 협상을 하더라도 '핵 개발 문턱국가(threshold nuclear state)'들에게 하나의 전례가 되어 버릴 수 있다. NPT 유지가 타격을 받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북핵폐기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NPT 강화가 힘을 받을 것이다. 북한은 이 고리를 쥐고 미국과 기싸움을 하고 있다. 지금 NPT 강화와 대북정책 재검토를 하고 있는 미국의 관련기관들에게 이 문제는 골치 아픈 문제가 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직접 핵군축을 요구하는 것은 북한핵문제의 본질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6자회담의 과정에 대한 북한의 평가도 작용했을 것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 미국이 BDA를 제기하여 6자회담이 난관에 부딪혔다. 이때부터 북한과 미국의 직접접촉을 통해서 난제를 풀고 6자회담을 진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북미 직접접촉에 더욱 매력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핵군축 요구는 향후 오바마 정부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협상전술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북핵관련 담당자 인선을 하고 정책 재검토를 하는 사이에 북한은 의제를 새롭게 설정하면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식 북핵 접근법을 만들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미국 속썩이기'라는 협상전술이 어떤 효과를 거둘 것인지는 미지수다. 오바마 정부의 관리들이 북한핵문제를 '시급하게 다루겠다'(act with urgency)고 강조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이 밀어붙이기식 협상전술을 서두르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2000년 부시 당선 때는 안이하다가, 반작용으로 이번에는 너무 급하다. 북한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2002년 8월 13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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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약한 고리에서 군사적 충돌 일어나

북한은 남북한의 전면대결 태세를 선포한 총참모부 성명을 발표하고, 그 이후 조평통 성명을 통해서 남북한의 정치 군사적 합의를 무효로 하였다. 조평통 성명은 총참모부 성명을 실행에 옮기는 수순이다. 군부가 중심이 되어 남북한의 군사대결상황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한의 합의를 치워놓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의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해온 그동안 북한의 입장과 어긋나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총참모부 성명이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면, 대남기구인 조평통의 성명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총참모부 성명과 조평통 성명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무력화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서해상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은 이미 두 차례의 충돌이 입증하듯이 정전협정의 취약한 고리이다.

그러나 북한의 NLL 관련 주장은 '성서격동'(聲西擊東) 전술이라는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 소리는 서쪽에서 지르고 충돌은 다른 곳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물론 서해  NLL의 긴장상태를 볼 때, 특히 꽃게철인 6월에는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격화된다. 이것이 불안정한 한반도 정전체체의 실상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전면대결태세'는 NLL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의 약한 고리에서 시작할 수 있다.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4km의 간격을 유지해야하는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제대로 간격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동서 249Km의 군사분계선(MDL) 가운데 계선이 불명확 곳이 많다. 얼마든지 남북 사이에서 군사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다. 96년 15대 총선 전에 있었던 판문점 무력시위도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

북한은 해마다 3월에 실시하는 한미군사훈련에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번 3월 한미 군사훈련에 맞서 북한이 긴장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개성공단 인근에 북한의 병력을 재배치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나, 이는 정치군사적 합의를 무효로 한다는 북한 성명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군사행동으로 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동안 북한의 행태를 분석해 볼 때 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은 남한이 아닌 미국과 협상수단으로 사용하였고,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대남 압박용으로 미사일 실험이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은 낮다.

 6.15 선언과 10.4 선언 인정에서 출발해야

어떤 형식으로든지 예상되는 북한의 상황악화조치는 대결과 대화라는 남북관계의 이중성을 견고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이런 이중성이 고착된다면 앞으로 남북의 대화와 협력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냉소적 시선이 늘어나고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협에 의해 유지되는 남북관계는 쌍방의 내면에 불신을 깊게 심을 뿐이다. 이제까지 북한은 충분한 의사표시를 하였으므로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북한이 이런 강경조치를 잇달아 내놓는 동안에도 한국정부는 북한의 발언을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정부도 속으로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에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다리기만 하는 정부의 태도는 무기력하게만 보인다. 방관하는 것으로는 군사대결을 예방할 수 없고, 충돌이 발생할 경우 책임져야할 몫만 키우는 것이다.  

예상되는 충돌을 막기 위한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조평통 성명에서 정치군사분야에서 남북한이 합의한 것을 무효로 한다고 하였지만, 6.15 선언과 10.4 선언도 무효의 대상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빈틈이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이해서 6.15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지난 정권의 유산으로 보지말고, MB식 통일정책을 창조하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 것이 실용의 참모습이다.

'비핵-개방-3000'의 순서를 신축적으로 '3000-개방-비핵'으로 조정하고 이를 단계적이 아닌 병렬적으로 추진해서, 임기안에 비핵화, 평화협정, 남북연합 진입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당장 3월부터 이산가족 상봉과 북한에 대한 쌀, 비료 지원 등 인도적인 사안들에 대한 남북협상을 시작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각적인 대북접촉을 적절하게 시도하면 길은 생긴다. 물이 엎질러지기 일보직전이므로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김창수씨는 통일운동 단체인 '통일맞이' 집행위원입니다. 이 기사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에도 기고됩니다.



태그:#NLL,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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