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길이 있었습니다. 이따금은 꿈에서조차 그리워하는 고향마을 산모롱이 길, 초등학교를 다닐 때 산막이라고 하는 이웃 동네에 살던 친구들이 등하교를 하던 길, 산막이에 사는 친구네 집을 가기 위해서는 종종걸음으로 다람쥐처럼 걸어야 했던 아슬아슬한 산모롱이 길입니다.
잃어버린 옛길, 걸어 줄 사람이 없어진 아슬아슬한 산모롱이 길강줄기와 산기슭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난 길이라 반듯한 신작로를 동경하게 하던 좁고도 울퉁불퉁한 산비탈 길이었고, 그 길을 매일 오가는 친구들이야 익숙했을지 모르지만 이따금 걷는 또래들에겐 무섭기조차 할 정도로 호젓한 산모롱이 비탈길이었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깎아 세운 듯 벼랑위에서 꼬마들을 얕잡아 본 다람쥐나 산토끼가 뒷발질로 굴리는 작은 돌이 굴러내려 놀랐고, 길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절로 바라보게 되는 시퍼런 강물에 어느새 오금이 저려오는 길이었지만 육지 속의 섬처럼 아무런 교통수단이 없던 산막이 사람들에게는 바깥세상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산막이 앞 강 건너로 신작로가 만들어지니 사람들은 구불구불한 산모롱이 길을 걷는 대신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너 신작로를 걸었습니다. 회오리바람처럼 불어온 이농에 마을 사람들조차 하나 둘 떠나며 산길을 걸어줄 사람이 없어지니 자연스레 없어졌던 길입니다.
데이트 장소, 맞춤 길,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길그 길, 한 번쯤은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꿈속에서조차 그리워하던 그 길이 복원되고 있었습니다. 흔적처럼 흐릿하게 남아있는 옛길을 더듬으며 복원되어 가는 길이니 조붓한 오솔길일 뿐이지만 산기슭의 구불구불함이 걷는 맛으로 느껴지고, 넘실대는 물줄기가 자연의 손놀림으로 다가 오는 아름다운 마음의 길입니다.
옛길이 복원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억으로 더듬고 있는 그 길이나 주변이 공사를 핑계로 들락거릴 장비나 차로 훼손되는 것은 아닐까를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공사 현장을 가보니 기우였습니다. 흔적처럼 남아있는 옛길에 덧그림을 그리듯 주변 훼손 없이 복원되고 있었습니다.
공사에 소요되는 자재들은 조그맣게 만든 바지선으로 강변을 따라 인력으로 옮기고 있으니 공사를 위한 길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공사에 소요되는 자재들이라고 해 봐야 울퉁불퉁했던 길을 고르기 위해 세우고 깔 목재들이 전부였습니다. 마구잡이로 하는 공사가 아니라 추억을 되살리듯 옛길 그대로를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하는 덧 칠 같은 공사였습니다.
아직은 공사중이지만 새싹 파릇파릇하게 돋아오는 봄날이 지나고 나면 수풀 냄새 싱싱한 산바람과 산들거리며 불어올 강바람이 만나는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될 것입니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열려 있지만 방해 받지 않을 둘만의 길이 되니 자연이 펼쳐주는 은밀한 데이트 장소가 되고,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걸으면 저절로 맞춰지는 발걸음에 마음까지 버무리게 될 맞춤길이 될 것입니다. 산바람과 강바람을 쐬며 산모롱이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걸음인가를 경험하고 싶다면 그길 한 번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야 어떨지 모르지만 마음이 고단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면 저절로 찾아가게 될 것 같은 그 길,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마음이 옹달샘처럼 솟아날 것 같은 추억 속의 그 길이 복원되고 있으니 다가오는 봄날이 더더욱 기다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복원되는 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괴산댐 바로 위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