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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따라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저녁식사 속도가 빠릅니다. 그리고 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병실을 나가버립니다. 평소와 달리 텔레비전도 보지 않은 채 말입니다. 덕분에 텔레비전을 끄고 잠시나마 조용한 병실생활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요란한 음악이 들려옵니다. 트로트도 들려옵니다.

 

병원 내에서 노래자랑이 열리는 날(1월 22일)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와 환자가족을 위한 노래자랑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습니다. 그 노래자랑이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나도 어느새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음악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노래자랑이 열리는 병원 1층 로비에는 벌써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해 놓은 의자는 빈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의자에 앉은 사람보다 서있는 사람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서로의 안부와 건강을 물으며 노래자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초대가수 불태산의 열창, 링거 꽂은 소녀팬의 환호

 

참가자들의 면면도 볼 만했습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은 물론이고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할머니도 보입니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내려오고, 링거를 꽂은 채 내려온 환자도 보입니다. 시쳇말로 거동이 많이 불편한 환자를 빼고는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환자의 병원생활을 돕던 가족들도 많이 보입니다. 평소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던 간호사도 간간이 보였습니다.

 

무대도 그럴 듯했습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고 갖가지 경품으로 무대 배경을 만들었는데도 훌륭해 보였습니다. 조명도 따로 없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사회자도 말 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노래자랑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트로트만 한 게 없었습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초대가수 '불태산'이 환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나훈아의 노래를 열창합니다. 관객들은 노란 풍선을 흔들며 노래를 같이 부릅니다. 노래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가 된 모습입니다. 환자복을 입은 채 무대로 나와 춤사위를 선보이는 사람도 보입니다. 몸을 열심히 흔들었는지 한 젊은이는 웃옷까지 벗어 던집니다. 평소 딱딱하던 병원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웃옷까지 벗어던진 환자들 "열광열광"

 

출연자들의 면면도 각양각색입니다. 노래 실력도 빼어납니다. 칠순은 거뜬히 넘어보이는 할머니에서부터 아저씨와 아주머니, 학생까지 나와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다 잡습니다. 깁스를 하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쭉 뻗은 채 휠체어를 타고 나온 환자 박태근씨는 앉은 채로 진시몬의 노래 '낯설은 아쉬움'을 불렀습니다. "참가자가 그리 많지 않아 노래를 잘 못해도 입상권에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나왔다"면서 너스레를 떱니다.

 

또 다른 환자 김영희씨는 안치환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환자인 딸의 옆자리에 서서 풍선을 흔들며 응원을 합니다. "병원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친절과 정성을 다한 간호에 감명을 받았다"는 그녀는 "의사와 간호사들이야말로 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을 간호하고 있다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김현경씨는 '섬마을 선생님'을 이미자 뺨치게 불렀습니다. 노래를 끝낸 그녀는 마이크를 든 채 환자복을 입고 앉아있는 남편 앞으로 가더니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백년해로를 남편과 함께 다할 것을 맹세한다"며 사부곡을 바쳐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함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병원을 대표해서 나온 한 복지사 아가씨는 장윤정의 노래 '짠짜라'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트로트는 트로트대로, 발라드는 발라드대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댄스곡을 부를 때는 병원 로비가 순식간에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었습니다. 통기타를 메고 나온 여자와 색소폰을 연주한 남자 등 초대손님의 수준도 프로급이었습니다. 지역특산물 자랑만 없었지 전국노래자랑이 따로 없었습니다.

 

55회 개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병원 음악회
 

김치냉장고와 온풍기, 전자레인지 등 시상품과 경품은 이미 참가자들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어우러진 것만으로도 흡족한 병원 노래자랑이었습니다. 환자와 환자가족들이 힘과 용기를 얻고, 병원 종사자들도 자긍심을 갖는데 노래자랑이 한몫 톡톡히 한 것 같았습니다. 병원의 슬로건처럼 '마음까지 치료하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병원의 노래자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개원과 함께 지난 2003년 1월 첫 음악회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55회를 했다고 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평균 석 달에 두 번씩 작은음악회를 열었다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명절을 전후해선 환자와 가족들 노래자랑을 했고, 평상시엔 합창단이나 군악대, 동호회 등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었다"는 게 이 병원 양신걸 사회복지과장의 얘기였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번거롭고 힘도 들지만 환자와 환자가족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갖는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요즘입니다. 회사마다 복지예산을 줄이고 행사경비를 축소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다소 사정이 어렵더라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웃음을 선사해 주는 병원의 작은음악회가 앞으로도 쭈-욱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몸과 마음 무거운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한때나마 즐거움을 선사해 준 첨단종합병원 측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입원한 환자의 한 사람으로서….

 


태그:#첨단종합병원, #병원노래자랑, #양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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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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