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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미스터미용실은 조진규, 서영화 부부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다.
▲ 창녕 미스터미용실 창녕 미스터미용실은 조진규, 서영화 부부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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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머리 어디서 깎았는데?"
"미장원에서 깎았다. 왜?"
"자식, 사내새끼가 쪽팔리게 미장원에 어떻게 가?"
"……."

참으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같은 이야기다. 미장원에 대한 기억은? 글쎄, 벌써 까마득하다. 하지만 처음 미장원을 찾았을 때 그 기분이란? 좀은 창피하기도 했고, 괜히 귓불대기가 붉어지는 것 같아 쭈뼛댔었다. 여자들 가는 미용실에 간다는 비아냥거림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처럼 예전에는 미장원이 순전히 여성들이 긴 머리 정도를 다듬거나 파마 등 하는 곳으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여성들만의 전용공간이었다.

이에 비하여 이발소는 남자 커트 전문업소였다. 또한 남자 이발사들은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 머리를 깎는 데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었다. 그즈음만 해도 이발소에서는 소위 가위를 주로 사용했는데, '바리캉'(머리를 깎는 기구, 제조회사의 이름에서 유래함)을 사용함으로써 머리를 깎는 데 한결 민활해졌다. 그러나 이것으로 여자들의 머리를 깎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바리캉이 생기고부터 여자들도 커트를 할 수 있게 된 게 사실이다.

"야, 너 머리 어디서 깎았는데?"

그런데 남자들이 미장원을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격이 싸서 아니면 여자 미용사들이 한결 부드러우니까? 아무튼 그런저런 이유로 남자들이 미장원을 찾기 시작했다. 필자 역시도 그런 연유에서 벌써 20년째 미장원을 찾고 있다(사실 아들이 태어나고서부터 목욕탕과 미장원을 동행하게 되었다). 근데 차츰 미장원이 늘어나자 예전의 일부 이발소에서는 손님을 끌기 위해 여자 보조(면도사)를 쓰게 되었고, 또 그것을 악용하는 퇴폐적인 업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도시 이발소는 미장원과 차별화를 뚜렷이 하여 남자 전용 커트 공간으로 특화되어 있다. 시골이나 지방에는 아직도 이발소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야, 미장원에 가보니까 남자 미용사도 있더라."
"어딘데?"
"응, 우리 동네 사거리 ○○ 미용실에 가 보면 남자 미용사가 있어."
"그래? 나도 한번 가 봐야지."

가위를 든 조진규씨가 민활한 손놀림으로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다.
▲ 머릴 깎는 조진규씨 가위를 든 조진규씨가 민활한 손놀림으로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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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사회가 급변하기는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역할을 바꾸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여자가 운전하는 택시나 버스를 타게 되면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더구나 남자 간호사, 남자 미용사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십거리요 화재가 됐다.

헌데 지금은 어떤가? 만약 그러한 이야기를 한다면 시대에 떨어졌다는 지청구를 당하기 십상이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런 소리를 하냐고. 이제 성역할 따른 직업구분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변화 된 셈이다.

이제 성역할 따른 직업구분은 찾아보기 어려워

하여 요즘은 시내 어느 미용실에 가든 손놀림이 현란한 남자 미용사를 쉽게 만난다. 필자가 단골로 가는 미용실도 남자 미용사가 운영하는 미용실이다(그렇지만 이 미용실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창녕 '미스터미용실'(원장 조진규, 46, 경남 창녕읍 교통)이다.

지난 18일 만난 조진규씨는 창녕 토박이로 올해 25년차 베테랑 미용사다. 그는, 갓 스물을 넘긴 즈음에 어떤 직업에 종사할까 고심하다가 누님과 상의한 끝에 미용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남자가 미용을 배운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경력이 25년째라면 참 오랜 세월인데 특히 미용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네, 평소 제가 섬세한 것을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누님과 의논을 했죠.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다가 요리와 미용 중에 어느 것을 할까 많이 고민했었죠. 그때만 해도 남자로서 좀 특이했고, 장래성도 있고, 또 적은 자본으로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해서 미용을 배우기로 했지요. 그게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미장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직장 동료로 함께 일을 하다가 만났죠. 그래서 지금은 동업자로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조진규씨는 올해로 25년째 이용사 일을 계속하고 있다.
▲ 미용사 조진규씨 조진규씨는 올해로 25년째 이용사 일을 계속하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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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규씨는 대구에서 미용을 배웠다. 그에 말에 따르면 그 당시만 해도 미용학원에 남자 수강은 조씨가 유일했다. 청일점이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이런저런 일로 갈등이 많았으나 미용기술을 하나하나 터득함에 따라 재미가 솔솔 붙고, 남다른 솜씨도 인정받게 되어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직업이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당당하게 자격증을 땄고 시내 미용실에 취직이 되었다.
이 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직업이다

하지만 시작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여자 손님들이 남자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겠다고 꺼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머리를 만지는 것보다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현장실습을 5년 동안 거뜬하게 마쳤다. 그리고 그는 낯선 대구보다는 고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고향 사람들은 달랐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찾아오기도 하고, 말벗 삼아 머리를 맡기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참 황당했습니다. 남자가 무슨 파마를 하고 여자 머리를 씻기느냐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죠. 그래도 제 특유의 웃음으로 받아넘기며 열심히 일했죠. 그러자 점차 입소문으로 손님이 줄을 잇기 시작하더니 미장원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저처럼 남자 미용사라면 누구든 한번쯤을 겪었을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나 남자 미용사들이 많잖아요?"

마침 중년의 남자 손님 한 분이 미장원에 들어섰다. 순간 이야기를 하다말고 반갑게 맞이하는 조진규씨, 두 분 다 익히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서둘러 머릴 깎을 준비를 하면서도 그는 손님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다. 시국이며 경제, 읍내의 사사로운 일까지 다 짚는다. 손님의 응대도 한결 맛깔스럽게 이어진다. 근데도 그이 아내(서영화, 41)는 별 거듦도 없이 뒷전에 멀찍이 나앉아 있다. 머릴 깎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이왕에 남자 손님이 왔으니 아주머니가 깎으면 안 되나요?"
"허허허, 우리 미용실 경영방침입니다. 남자 손님은 주로 제가 맡고, 여자 손님은 아내 몫이죠. 서로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거죠. 간혹 서로가 하기에 힘드는 부분이 있을 때만 서로 도웁니다. 아내도 미용 경력이 21년째나 됩니다."
"네, 그것 참 합리적인 경영방식입니다. 매번 제가 머리 깎으러 왔을 때도 그랬었군요?"
"그게 섭섭했습니까? 우리 집에 오시는 남자 손님은 당연히 제가 깎는 것이 불문율이죠."

머리를 깎는 그의 손놀림은 세세하고 민활했다. 다 깎은 것 같은데도 손님에게 거울을 들여다보이며 앞뒤좌우의 모습을 다듬어준다.
▲ 조진규 미용사 머리를 깎는 그의 손놀림은 세세하고 민활했다. 다 깎은 것 같은데도 손님에게 거울을 들여다보이며 앞뒤좌우의 모습을 다듬어준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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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는 그의 손놀림은 세세하고 민활했다. 다 깎은 것 같은데도 손님에게 거울을 들여다보이며 앞뒤좌우의 모습을 다듬어준다. 그 모습이 지나치리만치 꼼꼼하다. 그러고도 남자 손님인 만큼 코털, 귓속, 목 뒷덜미 면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 해낸다. 손님 머리 감기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의 미용실에는 보조 미용사를 따로 두고 있지 않은 까닭이다. 세면실에서도 그의 손놀림은 야무지다. 샴푸를 끝낸 손님이 대만족한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리고도 끝이 아니다. 머리를 드라이로 말리고 다시 한참을 매만진 끝에 손을 탈탈 털었다. 족히 사십분을 소요한 대가는 8천원이었다.

부부 서로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해

"손님께서는 연세도 꽤 있으신 것 같은데 특별히 이 미용실을 찾는 이유가 있습니까?"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보시다시피 자근자근하게 머리를 잘 깎잖아요. 남자답지 않게 친절하지요. 그래서 이 집에 오면 뭔가 대접을 받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그래요."

"그런데 그동안 얼마나 이 집을 이용하셨는지요?"
"조 사장이 창녕에 미용실을 낸 게 한 20년쯤 되지요. 그 동안 가게를 세 번이나 옮겼고요. 처음 가게를 열 때부터 쭉 이용했습니다. 더구나 우린 고향 선후배 사이라 이왕에 후배를 생각하고 키워준다는 뜻에서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찾아옵니다."

조진규씨는 남자손님의 머리는 처음 바리캉으로 선별적으로 깎는다.
▲ 선별깎기 조진규씨는 남자손님의 머리는 처음 바리캉으로 선별적으로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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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가위로 세세하게 다듬는다.
▲ 가위로 다듬기 이어서 가위로 세세하게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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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머리 윤곽을 잡고 나면 머리깎기는 끝난다.
▲ 마무리 뒷머리 윤곽을 잡고 나면 머리깎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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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한 후에 드라이로 머리를 말린다.
▲ 세신 후 드라이 세신한 후에 드라이로 머리를 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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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필자도 머리를 깎을 때가 되어서 턱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미스터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은 지 다섯 번째다. 근데 머리를 깎기 보다 그의 아내가 커피 한 잔을 권한다. 부부는 닮는다고 했다. 그의 아내도 그를 닮아 여간 싹싹한 게 아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셋 남자의 이야기에 좀처럼 끼어들지 않더니만 제법 맛깔스런 이야기를 곧잘 한다. 그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겪은 후일담이었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다보면 하찮은 일로 마찰을 겪을 때가 없나요?"
"웬걸요. 저이 성격을 보세요. 같이 이 일을 한 지가 언 20년이 다 되어도 말싸움 같은 것도 한번 해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아무리 쫑알대도 저이는 꿈적도 안 해요. 그냥 씩 웃어넘겨버려요. 그 때문에 가끔은 속상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부부가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의 강점을 존중해주는 원칙을 갖고 있기에 일하는 재미가 절로 나요."

"오시는 손님을 대중 잡아봤을 때 남자 손님이 많나요? 여자 손님이 많은가요?"
"그야 때에 따라서 다르지만 여자 손님이 조금 많아요?"

"그러면 사모님이 훨씬 바쁘겠네요?"
"그렇지 않아요. 꼭 여자 손님이라고 해서 저한테만 머릴 맡기지 않거든요. 여자 손님들 중에도 저이 단골손님이 꽤 많아요. 바쁠 때는 저도 그렇고 저이도 그래요. 남자여자 손님 가리지 않고 손님을 맞이한답니다. 특히 설 단대목이나 추석 같은 때는 자리 앉아볼 겨를이 없거든요."

창녕 ‘미스터미용실’(원장 조진규, 46, 창녕읍 교통)이다. 조진규씨는 창녕 토박이로 올해 25년차 베테랑 미용사다.
▲ 조진규씨 부부 창녕 ‘미스터미용실’(원장 조진규, 46, 창녕읍 교통)이다. 조진규씨는 창녕 토박이로 올해 25년차 베테랑 미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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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을 하든지 그에 걸맞은 원칙이 필요하다. 특히 조진규씨가 운영하는 미스터미용실의 경우는 부부가 서로의 강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게 크게 내세울 만한 노하우다. 그래서 미용실 운영 자체가 원활하고 원만하다고 한다. 때문에 손님 취향에 따라서, 성별과 연령에 따른 역할분업이 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게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이 일관되게 바라는 바가 아닐까. 조곤조곤 얘기 나누는 부부의 모습이 참 정겹다.

어느 일을 하든지 그에 걸맞은 원칙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층에서, 특히 남자들이 이용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선배로서 바람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앞으로 계획은요?"
"크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일수록 기초부터 꾸준하게 배웠으면 하는 것이지요. 미용기술은 배웠다고 해서 평생 그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날마다 변하고 있습니다. 겉만 배우지 말고 차분히 배웠으면 좋겠네요. 우리 부부도 별 탈 없이 지금까지 성실하게 해 왔던 것처럼 힘닿는 데까지 계속했으면 합니다. 그게 보람이겠지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벌써 머리가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시원하다. 오늘 하루 조진규씨 부부와의 대화만으로도 충족한 일상이 되었다.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내고 지금까지 알뜰하게 미용실을 운영해왔던 것처럼 새해에도 우직한 소의 심성처럼 번창했으면 하는 덕담을 나누고 미용실을 나왔다. 따뜻한 환대에 감사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미디어 블로거 뉴스에도 보냅니다.



태그:#미용사, #이용원, #성역할, #단골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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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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