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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막걸리 마시다 정권을 욕했다는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어둠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이 미니스커트와 장발을 단속하고 야간통금을 실시했던 '야만의 시대'를 부활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여기저기 막걸리 냄새가 진동하는 요즘입니다. 검찰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로 알려진 박모씨를 전격 체포한 지난 1월 9일, 민주당 소속 국회 문방위원회 위원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국회 문방위원인 최문순 의원이 15일 주최한 토론회 제목은 아예 '인터넷판 막걸리 보안법을 폐지하라'였습니다.

 

그런데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 그리고 야간통금 실시가 무슨 얘기죠? 이렇게 묻고 싶은 누리꾼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경찰국가 시절'의 일이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시절 경찰은, 여자는 스커트가 짧다는 이유로, 남자는 머리칼이 길다는 이유로 풍기문란으로 단속했습니다. 밤 12시가 넘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경찰서나 파출소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욕을 해도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그렇다면 또 이런 의문이 생길 법합니다. '막걸리 보안법'과 미네르바 구속은 무슨 관계가 있죠? 지금의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막걸리 마시다 정권을 욕했다는 이유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던 어둠의 시절' 역시 역사적 사실입니다. 술자리에서 홧김에 혹은 농담으로, '김일성보다 더한 놈'이라고 욕을 해도 구속되고, '호찌민은 비록 공산주의자이지만 베트남에서 국부로 칭송받는다'고 역사적 사실을 얘기해도 죄가 되던 수상한 시절이었습니다.

 

참말일까요? 물론 판례를 보면, 피고인들이 모두 막걸리를 마시다가 잡혀간 것은 아닙니다. '막걸리 보안법'과 '막걸리 반공법'은 민초들이 술김에 또는 격분해서 토로한 언행조차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적용한 것에 대한 자조적 표현입니다. 참말인지 아닌지는, 박원순 변호사가 쓴 <국가보안법 연구 2- 국가보안법 적용사>(이하 인용한 판결은 모두 <국가보안법연구 2>에서 재인용한 것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면전에서 철거반원을 향해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 운운한 것은 북괴의 학정을 겪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 북괴에서는 대한민국보다 나은 행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게 될 것이고 그곳에 가서 살아보겠다는 의사도 내포된 것이라 할 것이어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해당된다."(대법원 1970년 8월31일 선고, 70도 제1486호 사건 검사의 상고이유서)

 

도시빈민 A씨는 철거반원들이 강제로 집을 뜯어내자 극도로 흥분한 상태서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죄목으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국가의 모든 법집행에 대해 북한보다 못하다고 '비교급'을 구사해 비난하는 것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얘기입니다.

 

호찌민이 베트남에서 칭송받는다고 사실을 얘기해도 보안법 위반

 

"'남한은 세금이 많아서 못산다. 남한은 북한정권을 따라가려면 10년이 걸려도 못 따라간다. 고향의 처자식을 만날 때도 머지않은데 술이나 마시자'고 언동, 북괴를 대한민국보다 우월한 것으로 찬양한 것이다."(대법원 1974년 7월 16일 선고, 74도 제846호 사건 공소장)

 

70년대 초반만 해도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다는 것은 많은 객관적 지표가 입증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고향인 노동자 B씨는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며 다른 노동자 4명에게 '세금 때문에 못 살겠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공산주의 목적은 나쁘나 그 방법은 나쁘지 않다. 행정학에서 나오는 과학적 관리법은 소련이 미국보다 앞서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과학적 관리법은 배울 점이 많다'고 말한 것은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동조한다는 미필적 인식하에 한 것으로 볼 것이다."(대법원 1973년 3월 13일 선고, 73도 제166호 사건 판결문)

 

철도역장 C씨는 역사무실에서 직원들을 모아놓고 훈시를 하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과학적 관리법을 예로 들어 배울 점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월맹의 공산당 지도자였던 호지명도 비록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였지만, 공(公)만을 위해 사심 없이 싸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날 그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함으로써 월맹 공산당의 구성원인 호지명의 활동을 찬양-고무하여 국외 공산계열을 이롭게 한 것이라고 원심이 판시하였는바, 피고인이 '비록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지만'이라는 말을 전제하고 발언하였다 하더라도…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대법원 1978년 6월 27일 선고, 78도 제880호 사건 판결문)

 

D씨는 교인 200명 앞에서 '공(公)과 사(私)'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면서 호찌민이 베트남에서 국부로 칭송받는다는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그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공영방송도 호찌민을 전쟁영웅으로 칭송하는데, 당시는 '비록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지만'이라는 말을 전제하고 발언하더라도 죄가 성립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보안법 3차 개정의 '인심혹란죄'와 '헌법기관 명예훼손죄'

 

이처럼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은 정부 수립 4개월 만인 1948년 12월 1일에 제정 공포된 이후 7차에 걸쳐 개정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개정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이른바 2·4 파동이라고 부르는 1958년 12월 24일 3차 개정입니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사사오입 개헌과 부정부패로 민심이 이반된 가운데 정·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일반 국민과 언론․야당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국가보안법 3차 개정을 시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술경관을 동원해 야당 의원을 감금한 채 여당 의원만으로 개정안을 3분 만에 통과시킨 이른바 '2·4파동'입니다.

 

3차 개정으로 국가보안법 전문 6조가 총40조로 늘어났습니다만, 주목할 점은 '인심혹란죄'(제17조 5항의 언론조항), 헌법기관(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을 말함)에 대한 명예훼손죄(제22조) 등이 추가됨으로써 법 적용 대상이 간첩이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행동한 사람에서 일반시민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인심혹란죄는 주로 언론과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귀를 틀어막는 데 사용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59년 당시 자유당 정권의 눈엣가시 같았던 <경향신문>의 폐간입니다. 그때 적용된 헌법기관(대부분이 대통령) 명예훼손에 의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폭언을 하여 경찰의 수배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난 1960년 2월 14일 자유당 전남도당부에 있는 임모씨가 동(같은) 당 앞 게시판에 이 대통령의 사진을 게시하자 이때 돌연 한 청년이 나타나 '너도 오래 살려면 그런 일은 하지 말라'고 협박 후 사진을 가리켜 또한 비슷한 폭언을 하고 도주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 1960년 2월 18일 자 기사)

  

"대법원 형사부는 1960년 3월 31일 술을 마시면서 대통령에게 욕설을 하다가 헌법기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선우만혁 피고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형법만을 적용해 징역 3년을 확정하였다."(동아일보 1960년 4월 1일 자 기사)

 

4·19 초래한 이승만 정권의 전철을 밟으려는 이명박 정권

 

이 같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은 개정안의 무기를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1960년 4·19를 맞았습니다. 왜냐고요? 3차 개정 당시 야당과 국민의 반대를 꺾는 데 지나친 강압과 물리력을 행사함으로써 이후 야당의 무효화 투쟁과 민심의 이반을 자초해 당초 의도한 대로 국가보안법을 마구 사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같은 부담 때문에 결국 칼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종말을 맞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하는 이명박 정부가 50년 전에 '아버지 정권'이 밟았던 똑같은 길을 가려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얼굴을 맞댄 현실 세계가 아닌 사이버공간에서의 글쓰기와 누리꾼의 놀이가 된 댓글까지 이른바 '사이버모욕죄'나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하려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퇴행적입니다.

 

우선, 이 정부와 집권당은 인터넷 게시글·댓글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사이버모욕죄가 그것입니다.

 

또 이 정부의 검찰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제47조1항)을 적용해 미네르바를 허위사실유포죄로 기소하려고 합니다.

 

검찰은 미네르바의 허위사실 유포로 국익 손실과 국가 신인도 추락을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국격(國格)을 실추시킨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법조항을 적용해 누리꾼을 구속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모든 누리꾼에게 사이버모욕죄라는 재갈을 물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이버 국가보안법'이니 '인터넷 보안법'이니 하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58년 보안법 3차 개정 때와 판박이, 이제 4·19만 남은 셈

 

예를 들어 누군가가 MB를 '쥐박이'라고 구박하고 당사자가 모욕을 느끼면 당사자의 고소가 없어도 눈치 빠른 검사가 제3자의 고소를 통해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정도면 MB를 '쥐박이'라고 욕하는 것을 목격하고서도 사법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제3자도 처벌하는 '불고지죄'를 신설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이버모욕죄가 신설되면, 앞으로 이런 사건 기사가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전문대 졸업에 무직인 K씨가 이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모욕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K씨는 지난 2월 17일 당직자 L씨가 한나라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 대통령 사진을 게시하자 '오래 살려면 쥐박이 사진 거는 일은 하지 말라'는 댓글을 올렸다가 L씨의 고소로 이 대통령을 모욕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한편, 게시판 관리자인 P씨는 이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모욕한 댓글을 발견하고서도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지 않아 불고지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다."

 

그러니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인심혹란죄와 헌법기관 명예훼손죄를 신설한 1958년 보안법 3차 개정 때와 어쩌면 그렇게 판박이로 닮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영락없는 '인터넷판 막걸리 보안법'입니다. 미네르바가 구속된 것도 어쩌면 '경제 대통령'으로 혹세무민(인심혹란)하고 대통령을 사칭(헌법기관 명예훼손)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제, 4·19만 남은 셈입니다(그런데 인터넷에 이런 글이 자주 출몰하면 조만간 '사이버 내란선동죄'가 신설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태그:#막걸리 보안법, #사이버 국가보안법, #미네르바, #쥐박이, #인심혹란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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