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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네이버 카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회원 '코난'입니다. 올 초 정부가 내놓은 1조 2천억원짜리 전국자전거길 소식을 듣고 그동안 생각해온 제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자출(자전거 출퇴근) 경력 18년입니다. 1년 365일 중 350일 이상을 자출하거나 자전거여행을 떠나는 오리지널 자출족입니다. "자전거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라 여깁니다. 제게 "자전거는 레저도구가 아니라 교통수단"입니다. 애들만 셋인 다둥이 집안인데도, 저는 자동차 면허증도 자동차도 없습니다. 대신 식구별로 자전거는 하나씩 다 있습니다.

 

저는 속초, 정선, 강릉, 부산, 땅끝… 전국 어디든 하루 또는 넉넉잡고 1박2일이면 자전거로 갑니다. 최근 몇 년간 그렇게 전국 곳곳을 '싸돌아' 다녔습니다. 여기 제 의견은 자출 및 장거리 라이딩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국 자전거길은 기존 도로를 재활용하는 게 옳다

 

저는 새로운 자전거도로를 놓는 것보다 기존 도로를 재활용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도로를 새로 놓기 위해서는 어딘가의 논과 밭, 산과 들, 강과 바다를 없애고 깎고 메워야 합니다. 그보다는 이미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한 기존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입니다.

 

예를 든다면, 서울-속초 구간만 하더라도 최근 새롭게 포장한 신도로 외에 예전에 이용하던 옛길들이 있습니다. 그 길들은 아주 드물게 차들이 오갈 뿐, 거의 버려진 채로 있습니다. 이런 옛길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듭니다. 의외로 이런 길은 많습니다. 서울-강릉 구간에도 새로운 영동고속도로를 만들면서 옛 도로가 버려진 채 있습니다.

 

이런 도로들을 얼마든지 자전거전용(또는 겸용) 도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서울-부산 구간을 당일 또는 1박2일 정도로 장거리 라이딩을 하다보면 복잡한 국도보다는 한적한 지방도를 이용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구간을 달리다 보면 몇 킬로미터를 가도 차 한 대 만날까 말까한 때가 많습니다. 이런 한적한 지방도들도 좋은 자전거 전용(겸용) 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터널을 뚫으면서 버려진 옛길들(예컨대 미시령옛길이나 이화령옛길 등등)에는 거의 차량이 다니지 않습니다. 경치 구경하려는 목적을 빼면 대부분 터널로 다니지요. 자전거족들에게 이런 길들은 정말 호젓한 자전거길이자 관광코스입니다.

 

새로 큰길들을 놓고, 새로운 다리를 짓고, 새로운 터널을 뚫으면서 버려진 옛길들을 자전거에게 돌려주십시오.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고속도로나 산업도로처럼 처음부터 차량을 위한 목적이 우선인 도로들에는 그냥 차들만 다녀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은 국도나 지방도의 한 차선 정도는, 또는 갓길 한 귀퉁이는 자전거를 위해 양보해주십시오.

 

전국 곳곳에 찾아보면 이런 길들, 너무 많습니다. 버려진 길들을 자전거를 위해 재활용해주십시오.

 

전국 모든 국도·지방도에 자전거도로 의무화해 주세요

 

자전거길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것은 차선 하나를 자전거에게 우선 양보하는 것입니다.(자전거도로를 새로 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대부분 도로들은(심지어 편도 1차선 도로를 포함하여!) 차선 폭을 조금만 줄이면 충분히 자전거가 양쪽으로 왕복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됩니다.

 

고속도로와 산업도로를 뺀 전국 모든 국도, 지방도로 등에 차선 하나는 자전거도로를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법령을 만들어 주십시오. 재정을 국고로 하는 게 좋을지, 지방재정으로 하는 게 좋을지 등은 정부 관계자와 국회의원, 지자체와 시민단체가 모여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모으면 좋은 지혜가 나오리라 믿습니다.(제 판단으로는, 그래봐야 그 비용은 현재 정부가 전국에 자전거도로 놓겠다고 잡은 예산인 1조 2천억원의 1/10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이 자전거도로는 반드시 차선과 나눠진 도로여야 합니다. 방지턱을 세우든, 차단막을 세우든, 진입금지 말뚝을 세우든 상관없으나 차선과 자전거도로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으면 자전거도로는 얼마든지 자동차 주차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강화도 자전거도로는 거의 자동차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물리적으로 차선과 자전거도로를 나눌 예산이 없다면, 자전거도로에 불법주차하는 차량에 대해서 엄중한 벌금과 벌점을 부과하도록 법을 바꾸어 주십시오. 우리 자전거족이 열심히 사진 찍어서 신고해드리겠습니다. 자전거족들은 얼마든지 내 돈과 시간 들여서라도 자전거도로에 불법주차한 차들 신고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전국 파출소 앞에 넉넉한 자전거 보관소를 만들어 주세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전국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전제조건은 먼저, 기존 정부안보다 훨씬 친환경적이고(산과 들을 또 깎아서 환경파괴하지 말고), 둘째, 기존 정부안에서 잡힌 예산보다 훨씬 낮은 돈으로 경제적으로 건설되어야 하며, 셋째, 차량으로부터 자전거가 안전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최선의 대안은(부분으로는 새로운 자전거도로를 건설하여 각 도로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필요하더라도) 전국에 새로운 자전거도로 뚫느라 쓸 데 없는 대규모 공사 벌이지 말고, 기존 국도나 지방도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그리고 차선과 자전거도로를 물리적으로(그게 힘들면 법적으로 엄격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저 같은 자전거족은 안심하고 어디든지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동차 면허 따라는 주변 압력에 좀더 당당하게 버틸 수도 있을 겁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더 보완할 점을 말씀드리면, 먼저 자전거를 수납하여 이동할 수 있는 연계교통수단이 필요합니다. 현재로서 자전거를 휴대해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자전거가 휴대 간편한 접이식 자전거가 아니라면)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짐칸에 넣고 다니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예외인 경우가, 정선5일장 MTB열차 정도겠지요.

 

자전거족이 전국 어디든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동하도록 열차와 지하철 중 1칸 정도는 자전거 수납이 가능한 차량으로 바꿔 주십시오. 섬과 섬을 오가는 배들에도 자전거를 자유롭게 싣게 해주십시오.

 

대중교통과 자전거가 쉽게 연계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전국 자전거 여행이 더욱 편리해집니다. 누구나 저처럼 전국 어디든 하루 또는 이틀에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대중교통과의 연계는 꼭 필요합니다.

 

또한 전국 관광지나 환승역(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 등)에 안전한 자전거 보관소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를 가든(식당이나 화장실을 가더라도) 자전거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현재 지하철역 주변 자전거 보관소는 보관소가 아니라 '자전거 도둑들의 일터'입니다. 안전하게 자전거를 두고 보관할 수 있는 자전거 주차장이 있어야 안심하고 주변 관광지를 다닐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자전거 보관소는 파출소(현 지구대) 앞입니다. 파출소 앞에 자전거를 넉넉히 보관할 수 있는 자전거 보관소를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해주십시오. 파출소 앞에서 자전거 훔쳐갈 대범한 도둑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국 역이나 버스정류장, 또는 유명관광지 앞에 자전거 보관소를 두고 24시간 감시 가능한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공익근무요원을 의무 배치하여 자전거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해주셔도 좋습니다.

 

전국에 자전거길을 만들려면 자전거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과, 자전거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데 가장 핵심 문제입니다.

 

기타 의견으로는 ▲ 일본처럼 지자체에 자전거를 의무 등록하는 시스템을 갖추어 주십시오. 자전거 도난은 훨씬 줄어들 겁니다 ▲ 창원시처럼, 자출하는 사람에게 교통비 일부를 보조하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해 주십시오. 자출족이 몇 배로 늘어날 겁니다 ▲ 자전거를 의무 등록할 때 정부나 지자체가 헬멧 하나씩 무료로 나눠주십시오. 싼 물건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비용이면 자전거 사고로 일어나는 사망사고나 치료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으며, 보다 안전한 자전거 자출 및 여행이 보장될 겁니다.


태그:#자전거길, #자출사, #전국자전거길, #자전거, #녹색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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