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래는 참 좋은데 왜 하필 '총'이냐구
▲ 가수 백지영 노래는 참 좋은데 왜 하필 '총'이냐구
ⓒ 백지영 미니홈피

관련사진보기

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어
그냥 웃었어 그냥

허탈하게 웃으며 하나만 묻자 했어
우리 왜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헤어져 어떻게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 난 가슴이

어느새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
이러기 싫은데
정말 싫은데 정말 싫은데 정말

일어서는 널 따라 무작정 쫓아갔어
도망치듯 걷는 너의 뒤에서
너의 뒤에서 소리쳤어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흘러 넘쳐
잡아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총 맞은 것처럼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아픈데
살 수가 있다는 게 이상해

어떻게 너를 잊어 내가
그런 건 나는 몰라 몰라
가슴이 뻥 뚫려 채울 수 없어서
죽을 만큼 아프기만 해
총 맞은 것처럼

- 방시혁 작사 작곡

"큰딸! 요즈음 뜨고 있는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 알지?"
"후후후~ 아빠가 그 노래를 어떻게 알아? 지난 연말 KBS 연예대상 보면서 들었지?"

"그래. 근데 그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랫말 어때?"
"웃겨! 지가 총 맞아 봤어? 정말 웃겨. 노래는 참 좋은데 왜 하필 '총'이냐구. 그렇잖아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총으로 점령해서 난린데. 이러다가 자칫하면 애들이 총 쏘는 것을 아주 장난으로 생각할까봐 너무 무서워."

"너 같으면 그 노랫말을 어떻게 바꾸었으면 좋겠니?"
"아빠! 나 같으면 헤어지자는 너, 김밥 좋아하던 너 생각하며 김밥을 썰다가 '칼에 베인 것처럼'이나, 너 향기가 묻은 옷에 단추를 달다가 '바늘에 찔린 것처럼' 등등 그런 노랫말을 짓겠어. 갑자기 웬 총?"

"히야! 큰딸 글짓기 실력이 아빠보다 더 뛰어나네."
"그럼, 누구 딸인데."

왜 노래 제목이 '총 맞은 것처럼'이어야 했을까

몇 주간 멜론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몇 주간 멜론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 화면캡쳐

관련사진보기


기축년(己丑年) 새해 들어 주간 인기가요 순위 '멜론차트' 첫 1위를 백지영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이 차지했다. 지난해에 이어 6주 연속 1위다. 이를 두고 가요계에서는 "백지영의 호소력 짙은 발라드인 이 곡이 추운 날씨, 경기 침체 등과 맞물려 사랑받고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마구 떠들고 있다.

새해 첫 주 온라인 가요 베스트 10위에 든 노래는 1위 총 맞은 것처럼(백지영), 2위 러브 119(케이 윌), 3위 붉은 노을(빅뱅), 4위 프리티 걸(카라), 5위 매력쟁이(린), 6위 유 아 맨(SS501), 7위 마이 스타일(브라운아이드걸스), 8위 노바디(원더걸스), 9위 어제보다 오늘 더(김종국), 10위 레이니즘(비) 순이다.

근데, 왜 하필 노래 제목이 '총 맞은 것처럼'이어야 했을까. 지금 혹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우습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방시혁(36)씨는 노랫말을 그렇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지어야만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여겼을까. 노랫말 하나 하나가 대중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방씨는 1972년생으로 1995년 제6회 유재하 가요제에 입상한 뒤 1997년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수재다. 그는 1997년 박진영 3집 '이별탈출' '사랑할까요' 작, 편곡으로 가요계로 발을 디디딘 뒤 박진영을 비롯한 비, GOD, 박지윤, 임정희, ivy, 김건모, 김현성, 백지영, Bady, V.O.X, BOA, 바나나걸 등 유명가수들 노래를 수없이 작사 작곡했다.

2006년에는 30주년 대학가요제 심사위원을 맡을 정도로 영리한 그가 왜 하필이면 노랫말을 '총 맞은 것처럼'이라고 지었을까. 그는 과연 가슴에 총을 맞아 봤을까. 그리고 그때 가슴에 총을 맞고도 살아난 그 격렬한 아픔을, 너무나 가슴 아프게 헤어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실 그대로 비유했을까. 

'총 맞은 것처럼'이란 이 노랫말이 우리 사회에 끼칠 악영향을, 우리 10대 20대 청소년들이 행여 흉내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정녕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노랫말은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헝클어진 감정을 다스리기도 하고, 노랫말처럼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근데 이 뻔한 사실을 방씨는 몰랐을까.

남자애들, 손가락총으로 여학생 가슴 쏘는 시늉해
영리한 그가 왜 하필이면 노랫말을 '총 맞은 것처럼'이라고 지었을까
▲ '총 맞은 것처럼' 작사 작곡가 방시혁 영리한 그가 왜 하필이면 노랫말을 '총 맞은 것처럼'이라고 지었을까
ⓒ 방시혁 미니홈피

관련사진보기


"작은 딸! 요즈음 한창 백지영이 부르고 있는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 들어봤지?"
"그럼. 아빠! 내 꿈이 가수라는 것도 몰라?"

"그럼 그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랫말 어떻게 생각해?"
"노랫말이 웃기기는 한데, 곡이 좋아. 내 친구들은 노랫말 생각은 하지 않고 곡만 좋아해. 아빠! 백지영 목소리가 너무 좋잖아."

"너도 백지영 노래를 듣고 있으면 '총 맞은 것처럼' 그래?"
"아빠! 그건 잘 모르겠어. 가슴에 총을 맞으면 가슴이 뻥 뚫리면서 곧바로 죽잖아? 글구, 총을 맞았는데 웃음만 나와서 그냥 웃었다는 것도 정말 웃기잖아.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도 그래. 심장이 멈추면 곧바로 죽는 거지, 뭐가 아프다는 건지, 나 참! 아빠! 그 노랫말 때문에 요즈음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 손가락총으로 여학생 가슴을 쏘는 시늉을 많이 해. 정말 얄미워 죽겠어."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딸과 작은 딸도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잘 알고 있었다. 두 딸 모두 걱정스러워하는 것은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 때문에 아이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총 쏘는 흉내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손가락총이긴 하지만 행여라도 그 10대들 손에 진짜 총이 쥐어져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이에 대해서는 백지영도 지난해 12월 23일, 음악 채널 KM '소년소녀가요 백서'에 출연해 "처음 노래를 받았을 때 제목을 보고 '나한테 장난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당황스러웠었다"고 밝혔다. 백지영은 이날 "'총'이라는 단어가 심의에 통과할 줄은 더더욱 전혀 예상치 못했다"라며 "하지만 데모 테이프를 듣는 순간 '이 노래'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래 후렴구인 '구멍 난 가슴이'로 노래 제목을 고치려고 했었다"라며 "하지만 '구멍'이라는 단어도 썩 좋은 어감은 아니라는 생각에 작곡가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심했고 처음 제목대로 '총 맞은 것처럼'으로 노래가 나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부 대중가요 노랫말, 엉망진창

내가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연말 TV채널을 돌리다가 우연찮게 KBS연예대상 프로그램을 볼 때였다. 그때 사회를 맡은 이덕화씨가 프로그램 중간에 백지영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을 소개했다. 나는 그때 '총 맞은 것처럼'이라니, 이게 무슨 노래지?'하며 채널을 고정시켰다. 이어 백지영이 나와 요란스런 춤을 추면서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전쟁영화에 나오는 배우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흑백필름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니. 대체 무슨 노랫말이 이렇게 선정적이고도 살인적이란 말인가. 그 수많은 낱말들 중에 하필이면 '총'이라니. 갑자기 짜증이 나면서 화가 슬슬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딸 꿈이 가수이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건 아니야, 이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해'란 말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백지영 '총 맞은 것처럼'뿐만 아니라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을 하나하나 훑기 시작했다. 옛날에 유행했던 노래와 지금 유행하는 노래를 꼼꼼히 읽고 그 차이점을 찾았다. 

맞춤법이 틀린 것, 낱말이 틀린 것, 국적불명인 낱말, 영어와 모국어가 마구 잡탕이 된 것, 지나치게 선정적인 것 등. 말 그대로 지금 유행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일부는 엉망진창이었다. 다행인 것은 옛 유행가요는 그나마 우리 시대와 정서를 어느 정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글쓴이는 이번 '총 맞은 것처럼'을 시작으로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을 차근차근 곱씹어 볼 생각이다.

"너도 백지영처럼 가슴에 총 한 번 맞아볼래?"

'총'이라는 단어가 심의에 통과할 줄은 더더욱 전혀 예상치 못했다
▲ 가수 백지영 '총'이라는 단어가 심의에 통과할 줄은 더더욱 전혀 예상치 못했다
ⓒ 백지영 미니홈피

관련사진보기

이건용 작곡가는 고승하 작곡집 <아름나라 노래세상> 추천사에서 "노래가 가지고 있는 리얼리티는 가사의 정서와 밀착됨으로써 얻어진다"고 썼다. 이씨는 "노래의 가사가 가지고 있는 민요적 색채는 결코 우리의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가사는) 아직도 우리 생활 속에 지니고 있는 우리 고유한 삶의 모습"이라며, 노랫말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창남(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해 10월에 나온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뷰>에서 김민기 노래가 100대 명반에 뽑힌 것은 "단순하고 즉물적인 기존 대중가요 노래말과 달리 깊은 정신적 울림을 가지고 있다"며 "그의 노랫말은 당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사회와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갈등을 대변해 주었다"고 썼다.

김 교수는 "그의 노래가 없었다면, 이 음반이 없었다면, 70년대 초 청년문화는 그저 하나의 소비적 유행사조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대중가요 노랫말이 한 시대 문화를 새롭게 창조하고, 새롭게 이끌어가는 홍위병과 같다는 말이자 단순하고 즉물적인 노랫말은 한 시대 문화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옐로카드'이기도 하다.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도 같은 책에서 "그들(어떤 날, 조동익 이병우)은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창밖에 빗소리도 잠을 못 이루는 너, 그렇게 여린 가슴'이라 노래하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 하지 마,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이라며 조용조용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그 조용한 소곤거림 속에는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 같은 게 담겨 있었다"고 썼다. 

김씨는 "'그날'에서 이병우가 들려주는 강렬한 기타 연주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노래, 모든 소절마다에는 어떤 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지금껏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며, 대중가요에서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감정을 일으키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김윤하(웹진 가슴) 편집인도 같은 책에서 김현철 노래에 대해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혹은 일기장 구석에 써놓은 듯한 노랫말은, 만든 이와 듣는 이의 거리를 뺨이 닿을 듯 가깝게 만들어 주는 재주를 부린다"며 "(김현철은) 한 음 한 음, 설렘을 담아 쓰고, 연주하고 노래한다"고 썼다. 이는 노랫말이 수많은 사람들 감정을 마구 뒤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곡가 고승하는 6일(화) 저녁 전화통화에서 "어떤 말이나 부탁이 아무리 예의를 잘 차려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해도 그 부탁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폭력과 다르지 않다."며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란 노랫말은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가수 백지영보다 그 노랫말을 작사한 작사가가 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대중가요를 마누라보다 더 사랑한다는 권아무개(51)씨는 "지금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은 한 마디로 국적 불명에다 아름다운 우리 모국어를 마구 뒤흔들며 거칠게 꼬집고 있다"라며 "이렇게 가다가는 청소년들이 자칫 '너도 백지영처럼 가슴에 총 한번 맞아 볼래'하며 총 쏘는 것을 예사로 여길 우려도 있다"고 우려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백지영, #방시혁, #총 맞은 것처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