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상파 방송사들의 총파업이 '방송법 개정안 처리 유보'라는 부분적 성과를 안고 2주 만에 중단된다.

 

방송사 직원들로서는 9년만의 총파업이 승리로 귀결된 데 대해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지만 정부와 메이저신문들이 방송계 재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언론전쟁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파업 지휘부 역할을 해온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은 "일단 언론 악법 날치기 통과를 막은 것은 성과로 본다"며 "국회가 쟁점이 된 언론관련 법안 처리를 연기함에 따라 8일 0시 부로 총파업 투쟁을 일시 중지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 결의대회를 끝으로 1월 투쟁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KBS·MBC·SBS 지상파 3사의 투쟁 강도가 많이 달랐던 만큼, 파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평가도 엇갈린다.

 

[MBC] 파업의 '엔진'

 

언론노조는 지난달 23일 방송사를 주축으로 한 언론사들의 연대 파업을 결의했지만,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1999년 이후 방송사 총파업이 성사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마다 큰 싸움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견 기자·PD들은 9년 동안 편한 생활에 젖어있었고, '고연봉 화이트칼라' 이미지의 신세대들에게 파업은 생경했다.

 

불확실한 정세를 돌파하고 언론노조 파업의 '엔진' 역할을 한 곳은 MBC노조였다. MBC는 방송 제작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방송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리포트를 집중적으로 내보냈고, 이 때문에 방송 진출을 꾀하는 친정부 신문들과 거의 매일 난타전을 벌였다.

 

인기있는 앵커와 아나운서들이 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고 파업 지지를 호소하는 광경, 이문세·조재현 등 연예인들이 줄을 이어 파업지지 메시지를 밝힌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 기자는 "이번 국회에서 언론법을 처리하고 난 뒤 내년 2월 공영방송법과 4월 방문진법을 잇따라 바꿔 MBC를 대기업에 넘기려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며 위기감이 커졌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것은 보수 성향 직원들도 권력이나 대기업이 방송 제작에 간섭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 기자의 말은 계속됐다.

 

"밖에서는 MBC를 정파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구성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MBC사람들은 단 한번도 누군가 찍어누르는 분위기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 조중동처럼 회사 이익에 충실한 논조를 강요받는다면 못 견딜 기자들도 많다. 보수건 진보건 전 직원이 힘을 합치게 된 것은 외세의 압력 없이 자율적으로 제작하게 해달라는 염원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까? '우릴 제발 내버려달라'가 진짜 슬로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BS] "우리가 보수라는 인식, 많이 바뀔 것"

 

보수적 이미지가 강했던 SBS의 경우 아나운서·기자 조합원들이 검은 옷을 입고 화면에 등장하는 블랙투쟁을 전개해 사내에 다른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심석태 SBS 노조위원장은 "작년 촛불시위에서 SBS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속이 상했는데, 'SBS = 보수'라는 인식이 많이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MBC와 달리 파업하기 힘든 회사라는 인식이 팽배했는데 '뭉치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전에는 회사가 불편할 만한 취재 아이템은 아예 내지도 않았는데, 그런 분위기가 많이 깨졌다. 회사가 메인뉴스를 통해 '파업 참여자는 사규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협박했는데도 조합원들이 집회에 더 많이 나오더라."

 

심 위원장은 "봄이 되면 공기업 민영화 등 태산 같은 이슈들이 몰려올 텐데, 한나라당이 이번처럼 방송법 처리에 전력을 다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겨울 추위에도 사람들이 이만큼 몰려나왔는데 날이 풀리면 사태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며 여당의 법안처리가 앞으로도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KBS] '강 건너 불구경'... 수수방관 대가 톡톡히 치러

 

타 방송사들의 파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본 KBS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 중 가장 규모가 큰 KBS 노조는 파업에 불참했다. 임기 종료를 앞둔 박승규 전 노조위원장은 "SBS는 집행부 위주의 파업으로 실질적 파업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실상 MBC 외에는 파업하는 곳이 없다"며 냉소적 반응까지 보였다.

 

언론학자들이 "정부여당이 MBC뿐만 아니라 KBS2까지도 대기업에 넘겨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보다 못한 기자·PD들이 파업지지 성명을 내고 <사원행동> 소속 직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집회에 참석했지만, 노조는 해가 바뀔 때까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KBS는 오히려 지난달 31일 '보신각 타종' 행사장을 뒤덮은 반정부 시위대를 브라운관에서 감추는 바람에 조작 방송 논란에 휘말렸다. "보수성향 시위대였다고 해도 방송에는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제작진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영방송'의 길로 가는 KBS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이병순 사장에 비교적 우호적인 새 노조 집행부가 앞으로의 '언론악법 저지 투쟁'에 어느 정도의 공력을 들일지도 지켜봐야 한다.

 

강동구 KBS 신임 노조위원장은 "정부·여당이 2월에는 어떤 식으로든 법안을 밀어붙일 것 같은데, KBS 내부 사람들은 방송 민영화의 파장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투쟁할지는 조합원들과 계속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태그:#언론노조파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