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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박계동 사무총장이 12월 23일 저와 문학진 민주당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합니다. 형법 138조 국회회의장모욕죄와 141조 공용물건손괴죄랍니다. 보좌관 다섯 명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으로 고발했답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는 쓴 웃음만 나왔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 위원들을 회의시간에 회의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국회의장은 "경호권은 발동한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박진 외통위 위원장이 질서유지권 발동할 근거도 없습니다.

 

회의 시작하기도 전에 회의장 안도 아닌 복도에서 경위를 동원해 회의를 막은 것은 아무리 위원장이 지시했더라도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이 아니라 야당 위원들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 경위 수십 명을 동원했습니다. 경위들을 내보낸 박계동 사무총장과 김형오 국회의장이 공무집행방해의 책임을 져야할 판입니다. 그런데도 회의에 들어가겠다고 한 야당 의원들과 보좌관들을 고발하다니,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어야합니다. 

 

형법 교과서나 제대로 보았나

 

저는 국회사무총장이 법률검토는 제대로 받아 고발장 결재하는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갖추고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뜯어보니 형법 교과서 수준의 법률검토조차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좌해야하는 국회사무총장의 업무능력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제대로 입법보좌가 될지 의문입니다.    

 

형법 138조는 “법원의 재판 또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 또는 위협할 목적으로 법정이나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먼저, 저는 국회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모욕 또는 소동하지 않았습니다. 이 조항의 '국회회의장'이란 심의가 진행 중인 회의장을 말합니다. 제가 외통위 회의장에 들어간 것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미 2분 만에 회의를 끝내고 국회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뒷문으로 다 도망가고 회의에 참석했던 외통위 직원들과 속기사도 다 나가버린 뒤였습니다. 죄가 되려면 시간과 장소와 같은 객관적 구성요건부터 맞아야 하는데, 이것조차 맞지 않습니다.

 

다음, 저는 국회의 심의를 방해하거나 위협할 목적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12월 18일 오후 2시, 야당 의원들은 외통위 회의실에서 열리는 외통위 회의에 참석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위들을 시켜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출입구를 책상과 의자로 완전히 막아버려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한나라당 의원들끼리만 상정한 행위는 무효이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 자격 없으니 사퇴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심의를 방해할 목적입니까. 제 목적은 이 심의가 위법하여 무효라는 법률적 판단을 분명히 말해두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지적해두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목적은 당시 회의장 앞에서, 또 회의장 안에서 분명히 밝혔습니다.

 

형법 138조는 이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법조항이 아닙니다. 국회사무총장의 결재로, 국회의장에게까지 보고된 국회사무처의 고발이라면 최소한의 수준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법조항에 쓰여 있는 것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고발은 오히려 국회의 수치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요

 

국회사무처는 제가 형법 141조 제1항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손상 또는 은닉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에 위반했다고 고발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외통위 한나라당 의원들 명패 대여섯 개를 바닥에 던져 깼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잘못이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호위 받아가며 절차는 깡그리 무시해버린 한나라당 의원들, 국회의원 자격이 있습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요.

 

그들은 한미FTA 비준동의라는 중대사를 날치기로 처리하며 정부의 대미협상의 여지를 2분 만에 무너뜨려버렸습니다. 거대여당 172석 의석수만 믿고 폭주하면서 국회를 민의의 전당이 아닌 독재회귀의 표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들이 한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해 분개했다는 표시조차 하나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우리의 도의감, 우리의 분노

 

형법 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형법 교과서는 이렇게 씁니다. "사회상규란 국가질서의 존엄성을 기초로 한 국민 일반의 건전한 도의감 또는 공정하게 사유하는 일반인의 건전한 윤리감정"이라고요.

 

18일 외통위 파행에 대해 국민들은 한나라당에 주된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22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1천명 대상 ARS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에 따르면, 외통위 충돌의 책임에 대해 '한미FTA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한 한나라당'이라는 의견이 48.1%,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에 나서지 않은 민주당'이라는 의견이 33.7%로 나타났습니다.

 

한미FTA 국회비준동의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오바마 정부의 입장을 확인한 뒤에 처리해야 한다'가 55.9%로 나타나, '미국이 원안처리 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 23.9%를 앞질렀습니다.

 

제가 느낀 분노는 국민들의 느낀 감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안 일방처리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일방 독주는 이날 사태를 기점으로 국회를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그 뒤에 숨어 앞으로 한미FTA의 협상력을 크게 떨어뜨릴 위험한 일을 민주주의 절차까지 다 어겨가며 감행한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당신들이 잘못했다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명패를 부순 것이 국민들의 도의감에 어긋나는 일인가요?

 

형법의 정당행위의 법리는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비난했다고 범죄라니, 국회 사무총장은 형법 교과서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을 고발할 수준 밖에 되지 않는가요?

 

왜 애꿎은 보좌관들을 잡으려 듭니까

 

국회사무처는 저와 문학진 의원 외에도 보좌관들 다섯 명을 함께 고발했습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란 것이 도대체 누가 어떻게 다쳤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현장에서 본 것은 오후 2시쯤 한나라당 보좌관들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우르르 몰려들어오다가 유리문을 흔들어 깨어 한나라당 보좌관이 다쳤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회의장 뒷문으로 한나라당 의원들 내보내려고 일부러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모여들게 하려고 한 작전이었더군요.

 

사태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회사무총장이 경위들 수십 명 동원해 일으켜놓고, 야당 의원들 돕느라 올 수밖에 없었던 보좌관들을 왜 잡으려 듭니까. 보좌관들 행동을 집단폭행으로 문제 삼으려면 차라리 당대표들을 고발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부담스러우면 저와 문학진 의원에게 뒤집어씌우던가요. 왜 힘없고 애꿎은 보좌관들을 잡으려고 듭니까.

 

수사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검찰이야 고발이 있으면 수사하는 것이 직무이지만, 법률검토해보니 아무리 갖다 붙여도 범죄가 안되면 각하처분 해야 합니다. 국회회의장모욕죄는 각하가 마땅합니다. 공용물건손상이니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이니 모두 기각처분감입니다. 그 이상 어떤 죄를 논하는 것 자체가 검찰 스스로 자신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검사가 청부 수사하는 사람도 아닌데, 이 고발은 국회사무처가 나서서 검사들에게 여당 편들라고 종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검찰의 위신과 독립성까지 떨어뜨릴 이 수사에 협조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밟으려면 밟아보십시오. 박계동 사무총장이 나서서 고발장 결재한 이 저급한 행동 뒤에는 한나라당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르려면 눌러보십시오. 밟으려면 밟아보십시오. 두려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악행은 그대로 되돌려 받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역사의 진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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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정희 기자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입니다.


태그:#이정희,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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