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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란 부제가 붙은 한겨레 조현 종교전문기자 신간
▲ 조현 저 '울림'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란 부제가 붙은 한겨레 조현 종교전문기자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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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노 선배가 신입기자들의 교육을 할 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있나요."
".....(침묵)"
"음... 모르는군요. 기자와 정자의 공통점은 2억 마리 중에 하나만 사람이 되는 것이지."

좀 극단적인 비유지만 ‘인간적인 기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인가를 말하는 우스갯말이다. 기자라는 직업이 천성적으로 비판의 기질을 타고 나야 하는데다 온갖 유혹 앞에서 의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되기 어려운 기자들이 사람에 대해 쓰는 글은 상당히 신뢰성을 의심받을 요지가 충분하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글을 쓴 기자는 아마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 책은 바로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인 조현의 <울림>(부제: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란 책이다.

이 책은 우리 근현대부터 활동한 기독교 인물들을 다룬다. 사실 기자 못지 않게 이 사회에서 욕 먹기 좋은 것이 당대의 기독교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가난해져가고 있는데, 바벨탑같이 견고한 교회를 만들어서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기독교는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오만까지 더해져 극단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조현 기자가 포커스를 맞춘 기독교인은 위의 권력형 기독교인이 아닌 진정으로 낮은 자세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떠난 이들이다. 그는 이런 인물들을 취재해 편안하게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24명 모두가 소중하지만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다시 본다. 이 문구에는 당연히 기자의 주관이 많이 함유되어 있지만 그 자체로 좋은 글들이기에 소개한다.

"지구에서 일어났던 폭력의 상당수가 하나님과 예수를 앞세운 서구 제국주의로 인한 것임을 간파한 권정생은, 이 땅 위의 우상과 마귀는 마을 앞 서낭당이나 성주단지와 고수레와 까치밥이나 차례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독재와 폭력과 자기밖에 모르는 욕망이며 독선이라고 생각했다."(권정생 편)

"대부분의 기독교 목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자'고 외칠 때도 친구(채희동)는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땅에서 아픈 이와 슬픈 이의 고통을 동참해보자고 했다. 그것이 평화이며, 그곳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채희동 편)

"밀턴의 실낙원을 읽어보면 맘몬은 고층건물을 잘 짓고, 물질세계의 발전을 잘 일으키는 재능이 있는 마귀로 묘사되었다. 이것을 읽은 뒤부터는 고층건물을 보면 맘몬의 힘을 연상하게 된다."(장기려 편)

"<은둔의 나라 조선>을 써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해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미국 선교사 월리엄 그리피스는 '조선의 역사라는 것은 단지 민담에 불과하며, 일본이나 중국과 같이 민족적인 허영심과 동물 신화에 근거해 전통적이고 지역적인 가치의 차원에서만 어림잡은 연대기일 뿐이어서 역사라는 범주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신은 '물에 산에'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주일마다 서울 근교의 고적과 명소를 심방하고 참배하면서 청년들에게 우리 국토와 자연의 아름다움, 문화적인 탁월성을 발견하게 했다."(김교신 편)

이 책에는 김재준 목사의 10가지 자신과의 신조(127페이지)나 유일한 선생이 이승만과 안창호의 정치 투쟁을 보는 소회(182페이지) 등의 인상적인 정보도 말해준다. 최흥종, 강순명, 이보한 등 어려운 처지에서 올바른 기독교 정신을 편 이들을 보여준다.

어떻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당대 기독교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삼국시대에 이 땅에 들어온 불교는 고려시대에 귀족불교와 왕족불교로 변했다. 그리고 조선의 등장과 함께 여지없이 심판을 받게 되어, 조선 500년간 도성 출입도 못하고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그와 다름없이 조선시대를 통틀어 국가 이념으로자리 잡았던 유교 역시 왕족과 양반의 지배 이데올로기…."

이 글에서 말하듯 근대 이후 새로운 사상으로 기운을 얻은 기독교가 지금의 모습으로 권력적인 형태를 띤다면 머잖아 패망하게 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물신주의와 성공주의에서 벗어나 사람을 평안하게 하고 화해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영성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친절한 교훈도 전해준다.

어떻든 이 책은 위대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통해 모두에게 '울림'을 주는 반가운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물질과 권력에 이미 빠져 절대 권력을 든 이 땅의 기독교가 과연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는 것인가다.

사실 필자는 지난 수년간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의심했는데 이 책을 보고서야 이런 인물들이 소금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아직 썩어문드러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런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정신적 기둥은 무너지고 반면에 씻어야 할 부패의 바벨탑이 너무 많다는 것에 한국 기독교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울림 - 한국의 기독교 영성가들

조현 지음, 휴(休)(2014)


태그:#조현,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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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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