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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닭실 마을에 도착했다.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 닭실 마을 드디어 닭실 마을에 도착했다.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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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닭과 수탉이 사랑을 나누다

드디어 나는 닭실 마을에 닿았다. 어느새 불현듯 말이다. 30분 정도를 걸었을까? 몸이 덥혀져서 그런지 추위가 한결 가시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작은 시내 골짜기를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흘리며 다리를 건넜다. 그러자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작은 산세에 폭 싸인 꽤나 너른 평지가 눈에 쏙 들어온다.

이렇듯 이곳의 지형이 암탉과 수탉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알을 품은 형태인 금계포란이라는 형국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닭실이라는 마을의 이름은 이런 지형과 관계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택리지에서는 이곳을 안동 내앞, 풍산 하회, 경주의 양동과 더불어 삼남의 4대 길로 꼽는다. 풍수지리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배산임수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인 듯 하다.

닭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저 멀리 산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평화로움이 있다.
▲ 닭실 마을 길 닭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저 멀리 산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평화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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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의 고택에는 사람 냄새가 났다

마을로 들어서니 길을 따라 왼쪽으로는 시내 안으로 논과 밭이 죽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산 밑으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많은 집들이 약간씩 현대식으로 리모델링 되어 기대했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찌하랴 전통과 역사는 세월의 더께를 말하는 것이고, 이러한 변화 역시 그 더께의 일부분이 되는 것임을.

다만, 주택들과 논, 밭 사이에 호젓하게 난 길을 걷다 보니 그런 모습들을 떠나서 호젓하고 정다운 고향 마을 길을 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 흡족했다. 고향길을 가니 길가에 흔들리는 들풀 하나, 꼬리를 살랑거리며 다가와 몸을 비벼대는 황구 한 마리가 어찌 반갑지 않을쏜가. 반가운 마음에 마침맞게 대문을 열고 나서시는 할아버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게다가 닭실 마을이 내게 준 포근함 때문인지 목소리가 생각보다 우렁찼던 모양이다. 할아버지께서 조금 놀라시더니 곧 푸근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이쯤 되면 기대했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은 수정할 수 밖에 없겠다. 바로 이것이 내가 기대했던 그것이다.

저 집이 견디어 왔을 또한 보아 왔을 세월을 나로선 감당하기 힘들었다.
▲ 권씨 종가 저 집이 견디어 왔을 또한 보아 왔을 세월을 나로선 감당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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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깊숙한 안 쪽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종가가 보였다. 그리고 종가는 역시 종가인지라 고택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대문이 닫혀 있는 집이 없다. 종가도 그러했다.

살짝 들어가 마당을 휘휘 둘러 보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다 다시 고개를 저었다.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세월의 축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고택의 고아한 모습을 가진 종가라 해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담장 너머 보이는 모습에 만족하기로 했다.

<바람의 화원> 포스터의 바로 그 곳, 청암정


종가집 옆 쪽을 돌다 보면 바로 그 유명한 청암정이 있다. 바로 박신양과 문근영이 출연하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의 포스터를 찍었던 곳이다. TV를 보지 않아 드라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포스터는 웹 상에서 자주 보았었다. 그 강렬한 아름다움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마을에 난 길을 돌아가니 청암정을 한 바퀴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수로를 구성하기 위한 둔덕과 잎이 거의 다 졌음에도 무성한 나뭇가지들로 인해 언뜻언뜻 보이는 청암정은 그 궁금증을 더욱 북돋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충재 권벌 선생님이 책 읽던 곳이 아닌가 한다. 문을 열어 놓고 낭랑히 책 읽으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 청암정 확실하진 않지만 충재 권벌 선생님이 책 읽던 곳이 아닌가 한다. 문을 열어 놓고 낭랑히 책 읽으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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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정을 밖으로 한 바퀴 돌아 낮지만 강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작은 쪽문으로 들어섰다. 사실 고백하자면 첫인상은 실망이었으리라.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고 여유를 되찾자 실망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무언가 뿌듯한 감정이었다. 포스터와 같이 화려한 장관은 아니었지만, 초겨울의 쓸쓸함과 여운에 담뿍 젖은 청암정은 내게는 마치 열렬히 좋아하던 책을 다시 읽어 차분한 감동을 얻어낸 때의 기분과 같았다.

초겨울의 쓸쓸함과 여운이 담뿍 묻어 있다.
▲ 청암정 초겨울의 쓸쓸함과 여운이 담뿍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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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청암정 위까지 올라가 괜스레 좌정하고 앉아 보기도 하고 청암정 끝자락에서 뒷짐을 지고 말없이 서 있어 보기도 한 뒤 청암정을 빠져 나왔다. 멋쩍은 웃음을 하나 달고서.

선비 흉내를 내다.
▲ 청암정에 올라 선비 흉내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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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실 마을이 걸어 온 길을 살피다.

문중에서 굉장히 잘 관리를 해 놓았다.
▲ 충재 박물관 문중에서 굉장히 잘 관리를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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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청암정 옆에 있는 충재 박물관으로 갔다. 종가에서 운영한다기에 그저 족보나 모아 놨으리라 생각한 것은 확실히 실수였다. 오히려 그런 것들 보다 역사적 고증과 연구에 도움이 되는 진짜 자료들이 많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박물관에서 안내글들을 하나씩 차분히 읽다가 문득 시간이 꽤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비록 끝자락이지만 태백산맥에 한 발을 걸쳐 놓은 곳이다.

해가 빨리 지리라. 종가에서 박물관을 관리한다던 분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빠져 나왔다. 그러나 나와서까지 아직 지지도 않은 해를 걱정하며 마음을 급하게 먹을 수는 없는 일. 아까 보았던 것, 느꼈던 것들을 복기하며 차분히 마을을 빠져 나왔다.

차분히 여유롭게... 여행은 그것이면 된다.
▲ 돌아가는 길 차분히 여유롭게... 여행은 그것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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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봉화, #닭실 마을, #청암정, #바람의화원, #충재 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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