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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등 복면을 착용하고 집회나 시위에 참가할 수 없다.'
'집시법을 위반한 단체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뉴라이트 운동'을 기반으로 국회에 입성한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이런 세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신 의원이 집회 참가자의 복장과 휴대용품을 규제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집시법 위반 단체의 정부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신지호 법안'이라 불리우는 두 건의 법률 개정안은 같은 당의 성윤환·안상수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 손범규 의원의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 제정안' 등과 함께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법안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법안들은 "1987년 이전의 독재시대로 역주행하는 법안들"(민주당)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 들어 이렇게 집회·시위와 관련된 법률개정안을 대거 발의한 데는  '촛불의 충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약 두 달간 지속된 촛불시위가 정권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다는 판단 아래 '정권 비판'을 막으려는 의도로 집시법 개정에 나섰다는 것. 

신지호 법안들='복면 금지법'?... 집회 취소 사실 통보 안 하면 과태료 부과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권영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권영진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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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의원은 지난 10월 "건전한 집회·시위를 유도하여 법질서가 지켜지는 선진일류국가 건설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국회의원 17명의 동의를 얻어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평화적 집회 및 시위보장법'으로 새롭게 명명된 이 집시법 개정안에 따르면, 가면이나 마스크 등 복면도구를 착용할 수 없고(복면착용 금지조항), 쇠파이프 등을 휴대할 수 없다(흉기류 제조·보관·운반 금지 조항). 신 의원은 마스크 등을 쓸 경우 집회·시위참가자의 신원 확인이 곤란하다는 점을 들어 '복면금지 조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신 의원은 복면금지 조항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구류에 처하고, 복면 제거 요구를 2회 이상 응하지 않을 경우 해산명령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신고된 집회나 시위가 열리지 않았는데 그러한 사실을 통보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까지 부과하는 '유령집회·시위의 폐해 방지 조항'과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시위 주최 측에 통보한 후 영상을 촬영하는 '경찰관의 촬영에 의한 채증 근거규정'도 신설된다.

또한 신 의원은 집시법을 위반했을 경우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보조금 예산 및 관리에 관한 일부 개정법률안'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촛불집회 이후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활동을 통제할 목적으로 발의된 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지난 2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이 개정안은 폐기됐다.

지난해 같은 당 한선교 의원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은 개인이나 단체가 집시법을 위반했을 경우 다음해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런데 신 의원은 폐기된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의 또 다른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집시법을 위반한 민간단체의 보조금 지급을 금지하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 

신 의원은 이미 지난 7월 국회 본회의에서 "행정안전부가 이번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소속 74개 단체에 총 6억5700만원을 집행했다"며 "불법폭력시위를 주최하거나 참여한 단체에 대해 지급된 보조금을 전액 환수하고, 일정 기간 정부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없도록 관련법을 신속히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안 발의를 예고한 바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집시법을 위반해 벌금 이상의 실형이 확정된 회원이 있을 경우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할 수 없고, 교부받은 보조금도 환수될 뿐만 아니라 등록까지 말소된다. 또 국회의장(3명)과 등록된 민간단체(12명)의 추천으로 구성되는 공익사업선정위원회도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민간단체에서 각각 4명씩 추천받아 구성된다. 

성윤환·손범규·안상수 '법률가 의원들', 대거 집시법 개정안 발의

지난 7월 제65차 촛불문화제에서 '10대 연합' 소속 여학생들이 마스크를 한 채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있다.
 지난 7월 제65차 촛불문화제에서 '10대 연합' 소속 여학생들이 마스크를 한 채 무대에 올라 춤을 추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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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의원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은 집시법 개정안들이 한나라당의 법률가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 성윤환·손범규·안상수 의원이 제출한 집시법 개정안들이 그것이다. 특히 성윤환·안상수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이를 두고 "아직도 공안의 논리로서만 사회를 재단하는 성향이 있는 것 아니냐"(참여연대)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성윤환 의원은 지난 8월 복면착용을 금지하고 확성기·북·꽹과리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명 '복면 금지법'으로 불리는 신지호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게다가 성 의원의 개정안에는 집시법 처벌 대상자를 대폭 넓혔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즉 기존에는 집회나 시위 '주최자'로 한정됐던 처벌대상을 '참가자'로 확대했다는 것.

흥미로운 사실은 이후 경찰청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집시시위 선진화 방안'에 이러한 내용들이 적극 반영됐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복면·마스크 착용 금지, 쇠파이프·각목 휴대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세칭 '어경'(어청수 경찰청)과 한나라당의 입법활동이 서로 보조를 맞추고 있는 셈이다.    

안상수 의원은 지난 7월과 9월 두 차례 걸쳐 두 건의 집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에서는 소음규제 기준(주거지역 및 학교)이 현행 80dB(주간)과 60dB(야간)에서 각각 55dB와 50dB로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민변의 입법감시TF는 "버스가 지나갈 때 발생하는 소음이 평균 80dB이라는 점에서 현행 소음기준인 80dB은 집회의 개념적 본질에 부합한 소음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며 "오히려 이런 소음기준을 합리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 안 의원은 집회·시위 참가자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받은 사람에게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집시법 개정안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집회·시위 현장 등에서 흔하게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후원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 제정안'도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법안 발의는 촛불집회가 끝난 이후 일부 광화문 상인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계기가 됐다.  

이 법안에 따르면, 집회·시위 등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특히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은 소송 취하, 상소권 포기 등은 효력을 상실하도록 했다. 법원의 허가 없이는 원천적으로 합의 등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다만 집단소송을 하기 위해선 피해자가 50명 이상이어야 한다.

"헌법조차 이해하지 못한 한나라당"... 참여연대·민변 등 '입법 반대'

촛불집회 때문에 구속됐다 풀려난 안진걸 민생민주국민회의 사무국장은 "한나라당이 민주주의, 인권, 헌법 등을 이해조차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봉쇄하기 위한 준파시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안 사무국장은 "철학이 없는 한나라당은 촛불에 덴 나머지 반대세력을 옥죄기 위해 그런 집시법 개정안 발의를 남발하고 있다"며 "그렇지 않고서야 세계가 비웃을 복면 착용을 금지하거나 하등 관계없는 정부 보조금과 시위를 연결시키는 일을 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사무국장은 "박정희나 전두환 추종세력은 데모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며 "'지도자가 잘 살게 해줄 테니 찍 소리 말고 있으라'는 반헌법적 분위기가 한나라당에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안 사무국장은 "이런 집시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과거 긴급조치 때처럼 집회를 하다 보면 모두 범법자가 될 것"이라며 "세계의 역사는 시민의 권리를 확장해온 역사인데 우리는 그걸 위축시키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 우롱거리"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민변 등은 이러한 법안들이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을 들어 '입법 반대' 판정을 내렸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지난 11월 신 의원의 '비영리민단체 지원법 개정안'과 손 의원의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MB악법 베스트 22선'에 포함시켰다. 또 지난 5일에 펴낸 '이슈리포트'에서 신지호·성윤환·손범규 의원을 '헌법정신을 무시한 한나라당 법률가 의원 26명'에 선정했다.

참여연대는 "(신지호 법안 등은) 정부에 대한 비판과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라며 "국민의 위에 군림하겠다는 권위주의적 사고에 기반해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쓴소리에는 귀를 막고, 시민사회를 상대로 갈등과 대결을 조장하는 법안은 국민들뿐 아니라 동료 의원들에게도 동의를 얻을 수 없다"며 "신지호법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실련도 "이러한 개정 움직임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가로막고 정부에 대한 비판 집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막는 집시법 개악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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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MB악법, #신지호, #성윤환, #손범규, #안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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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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