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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새벽 이명박 대통령께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방문 이후, 농협에 대한 강한 질타가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농민들과 나눈 대화 가운데 기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보도된 언론 내용들을 읽다보면, 대통령께서 농민들을 격려하고 어려운 시기를 힘을 모아 극복하자고 역설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일 농민들이 털어놓은 하소연과 대통령의 답변은 어딘지 모르게, 앞뒤가 맞지 않는 동문서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 대통령께서 농민들과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농촌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 농민이 "현장 배추작업을 하는 망 작업은 70%가 외국인인데 경찰 외사과에서 와서 (잡아들였다), 고냉지 배추 어려운 시기 출하도 못하고"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자 또 다른 농민은 "농한기에 다른 농장에 외국인 근로자 품앗이 해도 법에 걸린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대통령, 농민들 하소연 정확히 이해했나?

농민들의 하소연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농촌에 일손이 달려 외국인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형편인데, 그 와중에 출입국도 아닌 경찰에서 와서 (불법체류자라고) 다 잡아가 버려서 일할 사람이 없다. 일 년 동안 경작해서 이제 수확할 철이 됐는데, 일할 일꾼이 없어 죽을 맛이다. 사람 다 잡아 가 버려서 일 년 농사 거덜 났다. 사람을 잡아가도 형편을 봐 가면서 해야 할 것 아니냐?"하는 하소연이다.

또 다른 하나는 "농촌은 아무리 시설재배를 하더라도 농번기와 농한기가 있는데, 농한기 때 외국인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기본급을 주라고 하니, 소득이 없는 농민에게 될 법이나 한 소리냐. 그렇다고 마냥 놀릴 수도 없어 바쁘다는 이웃에 일손을 빌려주면, 그것도 불법이라고 한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의하면 근무처변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해당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농한기엔 고용주의 동의를 얻어 근무처 변경을 할 수 있도록 근무처 변경 제한 규정을 완화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 현실적으로 일 시키지 않고 기본급을 줘야 하는 고용주나, 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비용을 박탈당하지 않아도 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나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 아니냐?"하는 하소연이었다.

위 두 농민의 하소연과 관련해서 시민단체 역시 줄기차게 고용허가제 개정안을 요구하며, 농어촌 지역에 대한 근무처 변경 제한 규정 완화를 요구해 왔다. 농민들의 하소연은 한마디로 고용허가제 독소조항에 대한 철폐를 완곡히 주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통령께서 "이 일은 농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농촌과 공장에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다 똑같이 적용하면 안 된다"라면서 "(농림부 장관에게) 노동부와 법무부와 협의해서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해라"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대통령의 답변이 동문서답 같다고 한 이유는, 이어진 대통령의 발언인 "농촌에 노동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 이것 인건비 낭비가 많다. 농촌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 바로 농촌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 때문이다.

왜냐하면 농림·축산·수산사업에 종사하는 외국 인력에게는 근로기준법 제63조 제1호 및 제2호에 의거,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인즉 대통령은 실정법상 이미 내외국인 구분 없이 노동법은 제조업체와 농축어업에 동일하게 적용하지 않는데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여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답변을 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고용허가제 농업분야(E-9-4)의 경우 근로시간·휴일·휴게 적용배제 대상이 된다. 이는 각종 근로시간의 제한에 관한 규정과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에 대한 할증수당의 지급규정 등도 적용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농민들이 토로한 어려움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인력을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달라는 것이지, 제조업체보다 싼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닌 것이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고용허가제 농업분야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급여 지급 방법이나 지급액에 대해 고용주와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하고 마찰이 적지 않다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고용주나 이주노동자나 농번기에는 큰 마찰이 없다가도, 농한기 때만 되면 갈등이 표출된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대통령은 농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시늉을 했지만, 어설픈 지적으로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 여지를 만들어 놨다.

이주노동자, 농민 모두 더 피해볼 수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부 관계자들이 현장의 소리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근로기준법 등의 노동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에 몰두할 경우 일어날 일은 너무 뻔하다. 애꿎은 농민들과 이주노동자들만 피눈물 흘리고 죽어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차별적인 임금적용을 받는 농촌 일을 더더욱 기피하여, 체류자격상 불이익을 당할 여지가 높고, 농민들은 더 심한 인력난에 봉착하여 농사를 접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나 노동부 관계자들은 농민들의 하소연이 무엇을 뜻하는지 현장에서 듣고 임의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석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고,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태그:#이명박, #가락동 시장, #농민, #고용허가제,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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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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