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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선에서는 깨끗하게 씻은 후 작은 꼬막, 알이 없는 꼬막, 뻘이 든 꼬막을 골라내고 정해진 양을 자루에 담는 작업을 한다.
 바지선에서는 깨끗하게 씻은 후 작은 꼬막, 알이 없는 꼬막, 뻘이 든 꼬막을 골라내고 정해진 양을 자루에 담는 작업을 한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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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 끝자락에 연기가 피어 올랐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두 단단히 무장을 했다. 아무리 날씨가 포근해도 겨울 갯바람이지 않는가. 불쏘시개를 찾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목덜미로 파고든 갯바람이 옷 속을 뚫고 들어온다. 몸에 작은 돌기가 돋는다.

봉화불이 오르듯 연기는 작은 섬 장도를 뚫고 용암이 용솟음치듯 산 위로 오른다. 오늘처럼 점심까지 넉넉하게 먹고 나와 일을 할 수 있는 물때는 작업하기 좋은 날이다. 새벽밥을 먹고 나와야 하는 물때는 손가락이 얼어 꼼지락하기도 어렵다. 불 위에 다섯손가락을 부채살 펴 듯 올려놓아도 온기는 그 때 뿐이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보성갯벌 장도 꼬막은 '벌교꼬막'을 대표한다. 60여 명의 장도 부수마을 어촌계원들이 물빠진 갯벌에서 꼬막작업을 했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보성갯벌 장도 꼬막은 '벌교꼬막'을 대표한다. 60여 명의 장도 부수마을 어촌계원들이 물빠진 갯벌에서 꼬막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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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기 잦아들 무렵 바다위에 작은 점들이 박히기 시작한다. 점들은 느릿느릿하면서도 신중하다. 작은 점은 얼추 헤아려도 60여 개에 이른다. 점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일 무렵 득량만 바다 한 가운데 금강호 선실 안에는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10여 명이 들어 갈 수 있는 작은 선실 가운데는 부스터위에 꽃게가 들어 있는 큰 솥이 올려져 있다. 그 옆에는 김밥이 한 줄 씩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약방에 감초처럼 어김없이 큰 소주병도 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작은 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왼발은 기다란 널판자 위에 올려 놓고 오른발은 갯벌 속에 집어 넣고 가슴은 판자 위에 물동이를 대고 엎드려 있다. 오른발로 밀어 조금씩 판자를 이동해가며 양손으로 열심히 갯벌을 헤짚는다. 가끔 뭔가 잡아 판자 위 그릇에 담는다. 널판자는 '뻘배'(널배)라 부르는 도구로 갯벌의 교통수단이다. 특히 꼬막을
잡을 때 많이 이용한다.

갯사람들은 널배를 타고 갯고둥처럼 길을 열며 꼬막을 캔다.
 갯사람들은 널배를 타고 갯고둥처럼 길을 열며 꼬막을 캔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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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들이 캔 꼬막을 널배에 실고 바지선으로 옮긴다. 널배는 갯벌의 승용차, 화물차, 작업용기계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한다.
 아낙들이 캔 꼬막을 널배에 실고 바지선으로 옮긴다. 널배는 갯벌의 승용차, 화물차, 작업용기계 등 다양한 형태로 이용한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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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명의 남자들이 결사대처럼 배를 몰고 앞으로 나와 금화호로 돌진한다. 널배 위에는 서너자루 꼬막이 실려 있다. 배 안에 있던 사내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와 작업복을 입고 바지선으로 내려간다.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고 성패선별기, 저울 등을 준비하고 작업준비를 서두른다.

배 위에 있는 주민들은 갯벌에서 캔 꼬막을 깨끗하게 씻고 불량꼬막을 추려 낸 후 망에 담아 배에 싣는 일을 한다. 이들 주민들 부인들도 갯벌에서 꼬막을 잡는다. 어촌계원이라면 작업에 참여해야 공평하게 수확량을 배당받을 수 있다. 다만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참여하지 않아도 약간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60여 명의 여자들은 꼬막섬으로 유명한 장도 부수마을 주민들이다. 장도꼬막은 벌교꼬막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일제시대부터 꼬막채취를 했던 섬이다. 올해는 꼬막농사가 시원찮다. 갯것들도 비가 와야 여문다. 비를 기다리는 것은 농민들만 아니다. 요즘 가장 비를 기다리는 것은 섬사람들과 바다생물들일 것이다.

장도는 꼬막으로 먹고사는 섬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이웃 개섬에 일본인이 정착해 득량만 일대 꼬막밭을 차지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바다를 잃고 일본인 꼬막밭에 고용되어 날일을 해야 했다. 해방이 되자 꼬막밭 관리인을 했던 조선사람이 그 행세를 대신하고 나섰다.

청년회와 마을주민이 나서 꼬막밭을 되찾고 마을어촌계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었다. 지금은 68호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동방천(꼬막 밭을 '방천'이라 함)과 개인이 관리하는 개인방천이 있다.

널배를 탄 아낙의 왼손과 오른 손을 눈여겨 보면 손가락으로 갯벌에 그림을 그리듯 움직여 꼬막을 캔다. 꼬막밭 어민들은 갯벌위에 구멍(눈)을 보고 꼬막이 있는 곳을 가늠한다.
 널배를 탄 아낙의 왼손과 오른 손을 눈여겨 보면 손가락으로 갯벌에 그림을 그리듯 움직여 꼬막을 캔다. 꼬막밭 어민들은 갯벌위에 구멍(눈)을 보고 꼬막이 있는 곳을 가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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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은 기후, 수온, 토질이 결정한다. 작은 종패들이 5년 정도 자라야 상품으로 판매할 수 있다. 꼬막이 많을 때는 갯벌위에 씨들이 멍석 위 참깨를 널어 놓은 것처럼 하얗다. 이렇게 꼬막씨들이 오면 한 5년은 '노가 난다.' 장도가 활기가 넘친다.

더불어 벌교와 보성 멀리 남광주시장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풍성하다. 하지만 금년처럼 갯바닥에 흉년이 들면 벌교에서 소비할 양도 부족하다. 외지에서 먹는 것은 벌교산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갯벌위 꼬막씨는 60대 후반의 장도주민들이 20대에는 매년 봄이면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젊다는 새마을지도자 박보수씨도 지금까지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다. 최근 본 것이 2000년 초반이다. 새꼬막은 1년 만에 상품으로 낼 수 있다. 최근에는 플랑크톤이 부족한지 갯벌환경이 좋지 않는지 2년은 키워야 낼 수 있다. 그래도 참꼬막에 비하면 생산주기가 짧다.

장도 부수마을에도 70여 ha의 새꼬막밭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면허가 취소된 상태다. 참꼬막 밭 운영만으로 충분했던 시절 출향인사에게 어장운영권을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나중에 법적인 문제로 확산되어 면허가 취소되었다.

이제 참꼬막밭도 예전같지 않다. 갯벌만 쳐다보고 사는 부수마을사람들이 새꼬막 종패까지 마련해 두고 죽은 자식 고추 만지듯 잃어버린 새꼬막밭을 쳐다본다. 저거라도 있으면 먹고사는 일은 그런대로 해결할 수 있을 텐데.

꼬막을 캐던 아낙들은 갯벌을 떠나고 바다위 바지선에 불이 켜졌다.
 꼬막을 캐던 아낙들은 갯벌을 떠나고 바다위 바지선에 불이 켜졌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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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꼬막을 캐는 아낙들은 금화호 근처까지 진출해 작업을 하고 있다. 아낙들을 따라 바닷물이 들어온다. 이제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물동이에 담아둔 소주병을 꺼내 마지막 남은 소주를 아낙들이 나누어 마셨다. 벌써 일찍 출발한 사람들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간다. 남은 꼬막을 세척하기 위해 배위에 불이 켜졌다. 꼬막은 장도마을 사람들의 희망이다. 이들은 언젠가 다시 꼬막씨가 갯벌위에 뿌려질 것으로 믿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벌교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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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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