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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나 슬럼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철거하는 것은 그들을 집에서 쫓아낼 뿐 아니라 집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거의 철거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면서 지녀온 모든 삶에 대한 정겨움이 끝나는 것이다."

                                      - 인도의 '올가 텔리스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문 중(1985)

 

'발전'과 '철거'. 이 두 글자는 70, 80년대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정부와 정치인들의 하수인이었던 조직폭력배의 무자비한 폭력이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와 경제개발을 위한 튼튼한 디딤돌이 되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발전은 아직 멈추지 않은 탓에 다양한 형태의 철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뉴타운이나 쇼핑몰, 비즈니스 건물을 위해 오래된 주거지역이 철거되고 있거나 철거될 예정이란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몇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집주인이든 전세거주자이든 뉴타운에서 살지 못하고 새로 들어선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처럼, 발전을 꿈꾸는 아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도심지역을 중심으로 매일 무언가는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들어섭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발전과 더불어 '거주자들이 달리트(불가촉천민)라는' 또 다른 이유로 철거됩니다.

 

달리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사람들로 여겨져 온 발미키들이 21세기에도 길거리나 푸세식 화장실, 그리고 맨홀과 하수구 청소를 맨몸으로 하고 있습니다.

 

40여 년 터전... "물탱크 지어야하니 나가라!"

 

1966년 인도 구자라트주의 작은 도시 캄베이시 시장은 길거리, 하수구, 화장실 청소를 위해 이곳 저곳에서 발미키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이들을 고용하면서 생활터전을 위해 작은 땅뙤기도 주었습니다.

 

당시는 배수, 하수시설이나 화장실 등 시설 면에서나 위생관념 차원에서나 지금보다 훨씬 더 악조건이었습니다. 지금도 맨손과 맨몸으로 청소를 하는 데 당시는 말할 것도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고용된 27가구의 달리트들은 작은 땅에 진흙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산 지 한 8년쯤 되자 집도 고치고 필요한 것들은 수선해야 했습니다. 이제 이곳은 그 동안 살아온 달리트들의 땅이니 알아서 고치고 살아가라고 시정부는 말했습니다.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집을 짓기 위해 모두들 가진 돈을 다 털었습니다. 수도와 전기시설도 새로 개선했습니다. 이제 정말 내 집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구정물과 똥을 치우는 게 일이었지만 내 땅, 내 집에서 가족들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그들 소유로 인정하면 됐지, 땅문서나 서류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땅은 그대로이고 달리트들의 일도 변함이 없었지만, 시정부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일정 시기마다 바뀌었습니다. 사회가 보다 근대화되면서 소유권 구조는 더 명확해지고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변화속도에 비해서 달리트들 삶의 변화 속도는 아주 더뎠습니다. 똥물을 치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똥물을 치워야 했습니다. 교육을 받은 달리트들 중에서도 발미키 출신들은 정부 부서에서도 하수시설 및 위생과 관련된 일을 담당했습니다.

 

2004년, 시정부는 이 달리트 가족들이 살고있는 땅에 도시 거주민들을 위한 물탱크를 설치하겠다며 나가라고 했습니다. 달리트들과 대화 끝에 당시 정부관료와 지역정치인들은 27가족들이 살 공간은 충분히 있으니 대지의 일부를 물탱크 시설에 이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 새로운 지역정부가 들어서고 약속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72시간의 공지만 주고 철거를 위한 불도저를 들이밀었습니다.

 

수도꼭지에선 하루 2시간만 물이 나오고

 

40년의 세월은 토지소유권에 대한 서류 한 장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법원에 제기한 소송도 서류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강력하게 저항한 몇몇 달리트들은 '사회의 불순분자'로 낙인찍힌 채 경찰들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옷가지며 세간살이도 집과 함께 흙더미에 묻혔습니다. 땅거미가 지고 달리트 가족들은 갈 곳 없이 먼지만 이는 땅에서 뒤척이며 몸을 뉘어야 했습니다.

 

며칠 뒤 시정부는 살 곳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몇 그루의 나무만 뜨거운 여름을 지탱하고 있는 공터였습니다. 앞에는 화학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서 있어 희뿌연 먼지가 땅을 뒤덮고 있었고, 뒤에는 캄베이시의 곳곳에서 실어온 쓰레기더미가 언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소유권이 없는 데 집을 지을 수도 없어 모아온 판자와 헌 옷가지들로 집을 만들었습니다.

 

시 전체 주민을 위해서는 물탱크를 만들어주었고, 달리트 가족들에게는 쓰레기더미 속 수도꼭지 한 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가로등에 연결된 전력을 끌어왔습니다. 전기는 저녁 7시부터 아침 6시까지만 들어왔습니다.

 

쓰레기더미 속에 만들어 놓은 수도는 아침에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만 물이 나왔습니다. 공터는 사실 지역의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것으로 물탱크에 쫓겨난 달리트들이 내몰린 곳은 결국 쓰레기더미였던 겁니다.

 

"물탱크를 세우고 나서도 그곳에서 우리들이 살 공간은 충분했어요. 하지만 상층카스트들이 우리가 물탱크 옆에 사는 걸 허락하지 않았던 거죠. 물이 오염될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가 멀리 떨어져 살기를 원했어요."

 

"만일 우리가 발미키들이 아니라 다른 카스트였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쫓아내진 않았을 거예요."

 

시정부는 카스트 질서와 이해관계에 부응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정부관료의 대다수가 상층카스트일 뿐만 아니라, 상층카스트들의 이해와 충돌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0년을 살아왔건 400년을 살아왔건 땅문서가 없는 달리트들이 토지권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잃어버린 땅 소유권 달라"... 감감무소식

 

많게는 12~15명이, 적게는 5~6명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이들은 모두 시정부가 정규직으로 고용한 청소원들이었지만, 이젠 5명만이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어 퇴직을 했으며 빈자리는 다른 마을, 다른 공동체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시정부의 이해와 상충되자 "너희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들은 많다"며 밀어낸 것입니다. 달리트 중 발미키들은 청소와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퇴직한 사람들은 매달 2천 루피의 연금을 받았지만 모든 가족들을 부양하기엔 부족했습니다.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집안 일뿐이었고 젊은 남자들은 일자리가 없어 막노동을 찾아다녔습니다. 판잣집 안팎에 불을 피우면 그곳이 부엌이 되었고, 모든 물건들은 방 한 칸에 다 쌓였습니다. 화장실이 없는 건 물론이고 목욕 공간도 집 옆에 비닐로 둘러쳐서 만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퇴직한 뒤 가계는 기울고 먹을 것이 부족했지만, 정부의 식량보조는 이들까지 미치지 않았습니다. 식량보조 관련 행정공무원은 생계와 가내시설을 확인하는 현지 조사를 이행하지 않았고, 그 결과 5가구만이 빈곤한계선 이하의 가장 빈곤한 이들을 위한 카드가 발급되었습니다.

 

거주지역의 지대가 도로지역보다 낮은 탓에 매년 여름 우기가 오면 물이 차서 거리로 나와 앉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살았지만 토지소유권이 없는 한 제대로 집을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잃어버린 땅에 대해 토지소유권을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시정부는 감감무소식입니다.

 

일관성 없는 인도 대법원의 판례들

 

처음부터 살 집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다가 집을 잃게되는 경우는 법이나 권리 하에 보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집이란 단지 가구를 들여놓고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생활의 총체를 이루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애정과 행복도 숨쉬고 있고 미움과 고통도 깃들어 있습니다.

 

'적절한 주거에 살 권리'는 유엔의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대한 규약 제11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유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유엔위원회의 일반원리(1997)에서는 강제이주 혹은 철거에 대해 거주자들과 상의하고 적절하고 합리적인 공지 및 대안주거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논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인도 헌법 제19조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지난 대법원의 판결에서 주거권을 적절하게 보호하라고 판결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법과 제도는 일관성없이 적용되거나 실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와 80년대 인도에서 강력한 사법개혁 활동이 일어났고, 이 기간을 통해 몇몇 경제, 사회적 권리가 기본권으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수준에서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의무와 법적 제재를 가하는 적극적인 형태를 띠게 된 것입니다.

 

특히 주거권 보호에 관해 이정표가 되는 인도 대법원의 판례는 1985년에 있었던 '올가 텔리스 대 봄베이시정부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인도에서 슬럼지역으로 유명한 도시 중의 하나인 봄베이시의 거리부랑자 1만 여명이 아무런 대안없이 그 동안 살아온 거리를 떠날 수 없다는 공익 소송 형태의 청원서를 고등법원에 제출한 사건입니다.

 

오직 법의 잣대만 들이댄다면 봄베이시 법에 따라 행인들의 통행권을 침해하는 불법거주자들을 무조건 철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통행권이 주어지듯이, 모든 이들에게 주거권을 주어야 한다는 동등한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그 집의 형태는 차치하고 누구든지 어딘가에 정착하면서 생활을 유지할 때 다른 이들에 대한 통행권도 보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시정부에게 길거리에 거주하는 1만 여명의 사람들에게 주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뒤 철거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1990년대 몇몇 판례에서도 사람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상반되는 판결을 내린 사건들도 많이 있습니다.

 

1995년 봄베이 환경단체는 국립공원 설립을 위해 그 지역의 불법거주자들을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대법원은 '깨끗한 환경과 다양한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아무 대책 없이 무조건 '가난한 거리부랑자'들을 철거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2000년 거대한 댐건설은 환경파괴와 수천 명의 지역토착민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없이 이루어졌고, 이는 대법원 판결의 결과였습니다.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국제규범, 오랜 역사를 통해 닦여온 훌륭한 법과 법령, 이런 원칙들이 없거나 달리트들이 무지해서 캄베이시의 달리트들이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몇십 년 동안 생활을 지켜온 달리트들에 비해, 쓰레기더미를 등에 업고서라도 삶의 터전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려는 달리트들에 비해 법의 가운을 입은 이들과 정부관료들이 사회와 공동의 이익에 무책임한 탓입니다.

 

마치 달리트들이나 가난한 자들은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것처럼.

 

 

태그:#달리트, #불가촉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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