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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의하면, 최근 우리나라에도 '1~2년 일하고, 1~2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누리는 프리커'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는 이미 정착된 노동유형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일본 프리커족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 그들의 삶을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퇴사 당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간 미루기만 했던 자기계발에 대한 욕구와 글을 쓰면서 작가로서 살아가고픈 꿈 때문이었습니다."
"꿈은 이루셨습니까?"
"반쯤은요…."
"그럼 나머지 반쪽의 꿈은 어쩌시고 다시 회사에 다니실 생각을 하셨나요?"
"…… 돈이 떨어져서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답변이긴 하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원하는 만큼의 경력, 돈, 실력이 충족되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요즘 직장인들의 모습이라지만 대놓고 돈 때문이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면접관 입장에서 보면 합격시킬 맛이 뚝 떨어질 것 같다.

물론 위 상황은 전적으로 나의 상상일 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2년여 동안 그 죽일 놈의 꿈을 위해 매진해 보니 어느덧 통장 잔고가 달랑거리더군. 그때 해봤던 상상. 이력서 채울 정도의 경력을 만들어뒀으니 어디 작은 회사 경력직으로 들어가 또 한 2년 열심히 일하고 돈 좀 모아서 다시 나올까 하는 생각. 그리고 2년 정도 내 일하다가 다시 추가된 경력으로 입사하고….

꿈같은 이야기라 치부하고 넘겨버렸지만 요사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프리터족이나 프리커족에 대한 기사를 볼 때면 실제로 이런 자유로운 영혼들이 존재한다는 게 '와우~' 놀랍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미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선 전적으로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프리터(Freeter, Free+Arbeit)족이나 1~2년의 직장생활 후 퇴직하여 자기개발과 여가를 누린 후 재입사를 반복하는 프리커(freeker, free+worker)족이 정착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심심찮게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경력과 실력이 보장되는 상위 몇 퍼센트(%)에나 '자의'에 의한 프리커가 가능하다는 것이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프리커족은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의한 비정규직들의 대안 아닌 대안이라는 점이다.

비정규직, 프리터족, 그리고 프리랜서까지

지난 2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일만선언 일만행동 촛불 문화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대학생,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일만선언 일만행동 촛불 문화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대학생,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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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립(而立)의 나이에 어느덧 이마가 정수리에 닿아 액면가 부장님으로 보이는 정두안(가명)씨. 그는 사교성 좋고 전문지식 또한 남다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진지한 청년이다. 두안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 때마다 남들보다 좀 더 훤한 이마 때문인지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고 수십 번의 도전 끝에 IT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게 된다.

"그때는 나이가 어렸으니 뭘 아니.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그저 직장이 생겼다는 것에 날아갈 듯 기쁘기만 했지. 그런데 회사를 다니다 보니 내가 앉은 자리가 참 위태로운 자리더라는 거지. 모두 정규직 한두 자리에 올라가려 뼈를 깎더라고. 그러면 뭐해, 먼저 입사했던 선배들 계약기간 끝나고 잘려나가는 걸 보니 간담이 서늘해졌달까?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일했지. 그런데 재계약기간은 다가오는데 위에서 아무 말이 없는 거야. 아… 끝났구나 싶었지. 결과? 당연히 잘렸지. 우리 기수에는 그나마 정규직 계약도 없었어. 짐 싸서 나오는데 한숨 나더라…."

두안씨는 퇴사 이후 오로지 재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 내기를 반복. 문득 왜 이리 취업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더란다.

"내가 좀 살뜰하잖니. 적은 월급이지만 그간 틈틈이 모은 돈이 생각나더라고. 지금 재취업해봤자 또 같은 일의 반복일 테고 차라리 좀 쉬면서 내 레벨을 높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동시통역사 공부도 하고 헬스도 다니고 가끔 여행도 하고 여러 모임에도 나가면서 인간관계도 만들고 말이야. 한 2년을 정신없이 보냈지…. 비록 다시 비정규직으로 입사하긴 했지만 심경 자체가 달라졌어. 또 이렇게 2년 부담 없이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고 나면 꿀맛 같은 휴식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잖아. 나의 레벨은 더 높아질 거고 그러다 보면 좋은 기회, 좋은 직장도 생기겠지 라는 생각. 뭐 안 돼도 좋아. 프리터족을 넘어서 동시통역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 또한 닦고 있으니까."

두안씨의 경우 처음부터 프리터족이 되리라 마음 먹은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스스로 해법을 찾아냈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선 프리커족에 대한 이해보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한 실정이기에 두안씨와 같은 성공사례는 극히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 회사에 의해 퇴사가 결정되기 때문에 프리커족으로의 선택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정규직의 경우에는 곱지 않은 시선에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정규직의 프리터족 선언은 배신 행위?

대기업 인사 관리팀에서 근무하던 가는귀가 약간 먹은 29살의 두룸희(가명)씨. 그녀의 프리커족으로의 삶은 비교적 순탄 해보였다.

"직장생활 4년 하면서 적금 붓고 알뜰살뜰 돈 모아보니 내가 모은 돈으로 하는 게 없더라고. 가끔 'ㅎ-마켓'에서 옷이나 좀 사고 휴가 때 강원도 팬션이나 찾아가 1박 2일 자다 나오고…. 새벽에 영어 학원 다니면서 영어 배우면 뭐해. 써먹을 데도 없는데. 자기계발, 자기계발 말은 좋은데 쓸데가 있어야 계발도 하는 거지. 매일 야근이라 밤 10시에나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 생각에 편히 쉴 수가 없고…. 어차피 나도 부속품인건 마찬가지였지. 그래서 관뒀어.

2년 동안 국내부터 국외까지 가보고 싶은 곳은 다 돌았어.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넉넉해지고 그런데 돈이 떨어지니 어째? 다시 직장에 들어갔지. 예전엔 회사에 뼈를 묻는다는 심정으로 일했는데 두 번째부턴 열심히 일은 하지만 이곳이 내 인생의 종착역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일의 능률도 더 오르고 사람들 대하는 데도 좀 더 여유로워졌어. 이번엔 2년 만에 퇴사했어. 여행 다니면서 느낀 게 뭐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거든. 이번엔 1년 동안 여행 다니면서 여행칼럼도 썼지. 부수입이 짭짤해서 꽤 유용했어."

꿈만 같은 생활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프리커족의 의미를 찾은 듯한 룸희씨. 경력, 실력, 인지도까지 있는 그녀이기에 가능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다시 입사를 하려니 어느새 난 죄인이 되어 있더라고. 전 직장에서 상사였던 사람이 면접관으로 턱 하니 앉아서 '이번에도 한 2년 일하고 관둘 건가요?'라고 묻는데 말에 가시가 있더라니까. 열심히 일했고 인수인계 깔끔하게 하고 인간관계도 나무랄 데 없이 좋았는데 마치 돌아온 배신자를 맞이하는 조직 부두목의 눈빛이랄까? 내가 신입으로 들어가 일만 배우고 도망친 것도 아니고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회사에 그만큼 보탬이 됐으면 된 거지, 안 그래? 하암~ 어느새 업계에 소문이 퍼져서 취업도 불가능해졌어. 사람들 웃기지? 직장은 직장이야. 내 능력을 팔아서 돈을 버는 곳. 9시에 출근해서 야근 불사하면서 일했으면 됐지, 왜 남의 인생까지 송두리째 묶어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조직에 대한 충성과 희생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몇 년 일하고 떠날 사람은 애당초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일랑 있건 없건 팀장님을 부모님처럼, 사장님을 각하님처럼 받들어 모신다는 '짜세'를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정규직의 퇴사'란 마치 조직에 대한 배신과도 맞먹는 '짓'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꿈을 위해, 삶을 위해 회사를 나간다니 어르신들이 들으면 '아직 배가 덜 고팠군.' 소리를 하실 게 분명하다.
 
프리커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넘어야할 산들

열심히 일한 당신, 이곳으로...
▲ 넬라판타지아의 세계 열심히 일한 당신, 이곳으로...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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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핵가족화로 인한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형태가 많이 단순해지긴 했으나 우리에겐 자식과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 뼛속 깊이 자리하고 있다. 차라리 홀몸(?)이라면 몇 년 하얗게 불사르며 일한 후에 여행도 하고 공부도 좀 하고 즐기기도 하고 한들 뭐가 무서우랴. 그러나 아이가 생길 경우 이건 뭐…, 프리커는커녕 겹벌이 정도는 불사해야 훗날 아이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강박관념이 어깨를 짓누르지 않는가.

"저 이제부터 남은 생을 프리커족으로 살아보렵니다"라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장인, 장모,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 아내, 일가친척에 옆집 아줌마들까지 '저런 책임감 없고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같으니라고!' 소리가 절로 나올걸?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사는 것이니 부부가 알아서 잘 해보아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그야말로 강마에가 지휘하는 넬라판타지아의 세계이니 부러울 밖에….

아직은 낯설지만, 어느덧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은 프리커족. 그 발생 원인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한 자유의 선택이든 물가 불안정과 열악해지는 노동환경 속에(그것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떠오른 하나의 대안이든 간에 이들은 점차 늘어날 것이고 새로운 노동계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지속되어질 현상이라면 이 시각에도 노동환경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 모두가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일하고 또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위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프리커로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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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프리커족, #비정규직, #정규직, #FREE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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