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11월 22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11월 22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 청와대 제공

관련사진보기


개성관광 전면 차단, 남북철도 운행 불허,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지역의 당국· 기업 상주 인원·차량 선별 추방….

남북관계가 더욱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관계 위기가 구조화되는 것 아닌지 우려될 정도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도 "우리가 놀랄 정도였다"고 북측의 강경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내년 1월 퇴임하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강경' 코드에만 맞추어져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은 그런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부시 대통령 "내가 MB를 좋아하는 이유"

10여분간 진행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MB-부시 듀오'의 맞장구가 빛난 자리였다.

첫번째 발언자로 나선 부시 대통령은 "자유국가들끼리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다"며 "내년 이후에도 계속 일관되게 이같은 만남이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가 강한 검증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며 "특히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서 북핵을 검증하는 데에 한·미·일 3국이 힘을 합쳐 나가야 한다"고 강경 기조를 주문했다. 

"북핵 해결과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서 3국 공조를 강화하자"고 제안한 아소 타로 일본 총리에 이어 발언자로 나선 이명박 대통령은 먼저 떠나가는 부시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웠다.

"워싱턴 G20 금융정상회의가 사실은 쉽지 않은 모임이었는데 선진국과 신흥국이 만난 회의에서 성과를 끌어낸 것은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 때문이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초기에 북한과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며 "대북정책은 진정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 직후 부시 대통령은 "그게 바로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맞장구를 쳤고, 회담이 열린 곳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일관성 발언 때문에 부시 대통령에게서 그런 발언이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대화보다는 압박 전술을 구사하는 현재의 대북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소신 발언'이 부시 대통령의 마음에 쏙 들었던 모양이다.

그들만의 맞장구에 한반도는 없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사라질 '부시-MB' 듀오의 맞장구는 더 있었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 이어 열린 한·미 정상회담 자리에서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서울 소망교회에서 했던 주차 봉사활동을 거론한 뒤 "어제도 내가 백악관에서 어린이들을 만났는데 공직자의 자세가 뭐냐고 묻기에 '겸손하고 대의명분을 따라야 한다'며 이 대통령 사례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부시 띄우기'에 이은 부시 대통령의 'MB 띄우기'인 셈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대단한 일도 아닌데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사의를 나타냈다. 회담이 끝난 뒤에도 이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한국에 들러달라"고 요청했고, 부시 대통령은 "좋은 친구를 만나게 돼서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국가수반으로 만난 시간은 약 10개월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5년의 임기 중 1년도 채 못 채운 상태이고, 부시 대통령은 내년 1월 퇴임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한·미동맹'이라는 각별한 관계를 헤아릴 때 양국의 지도자가 애틋한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시의 퇴장 이후 열리는 새로운 세계질서, 한반도질서를 이 대통령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미국 대통령의 대북강경 코드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현실은 없어 보인다. 이것은 남과 북 모두에게 '비극'이다.


태그:#이명박, #부시, #한미 정상회담, #페루 리마, #대북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