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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가는 연탄 광

날로 비어가는 연탄 광과 연탄집게
 날로 비어가는 연탄 광과 연탄집게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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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산골마을에 추위가 닥칠 텐데도 요즘 내 집 연탄 광에는 연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년 같으면 이즈음 연탄을 광에 가득 채우고도 바깥 처마 밑까지 연탄을 잔뜩 쌓아둘 때인데도 올해는 채우지 않고 오히려 연탄이 떨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아침 연탄불을 갈고서 남은 연탄을 세어보니 꼭 예순세 장이 남았다. 앞으로 열흘 지나면 연탄 광은 텅 비게 될 것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아내가 광에 쌓인 연탄만 때고는 그만 기름보일러로 바꾸자고 했다. 나는 이태 전에 새로 들여놓은 연탄보일러가 앞으로 2~3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 쓴 뒤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앞으로 우리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 공기 좋은 산골까지 내려와 굳이 연탄 냄새를 맡으며 사느냐, 좁은 당신 글방 기름보일러를 놓아도 연탄 값보다 그리 많이 들지는 않을 거예요"라는 말에 내 생각을 접었다.

산골 내 집 난방은 본채는 심야보일러고 아래채인 내 글방은 연탄보일러이기에 연탄 가는 일은 주로 내가 맡고 있다. 그런데도 아내가 이즈음 와서 굳이 연탄을 그만 때자고 하는 것은 아마도 머리가 허옇게 센 영감이 아침저녁으로 연탄집게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게 당신 눈에도 몹시 측은하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까 요즘 연탄 때는 집은 생활보호대상자나 매우 가난한 집으로 분류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한 지인이 나에게 "선생님, 아직도 연탄을 때세요?"라고 하면서 매우 측은히 여기는 것 같았다. 

평생 연탄을 때다

사실 우리 집은 그동안 연탄을 지겹게 땠다. 서울 한복판 종로에 살면서도 1990년 후반까지 연탄을 때고 살았으니까 40년은 족히 연탄을 연료로 삼았다. 일찍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로 바꾸지 못한 것은 살림이 넉넉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언젠가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강원도 사북 광부들이 탄을 캐는 복장과 장비 그대로 거리를 기어 다니면서 정부의 연료 전환정책을 반대하는 시위를 본 영향이 컸다. 우리 집이라도 연탄을 때주는 게 그들을 돕는 길이라고, 정말 서울시내 종로구에서 연탄을 땔 수 있을 때까지 연료로 썼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 내외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세상을 역행하면서 살아왔다. 우리 집의 가전제품은 다른 가정보다 늘 10~20년은 뒤지게 살았다. 컬러텔레비전도 딸아이가 대입 수험생이 된 뒤인 1990년대에 하는 수 없이 들여 놓았고, 그나마 있던 텔레비전이 수명을 다한 지 1년이 거의 되지만 아직도 그대로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난이 매우 심각한 모양이다. 여기저기 잔뜩 지어놓은 아파트가 분양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이런저런 일로 시골 중소도시로 가보면 전체 아파트 동(棟) 가운데 불이 꺼진 곳이 반이 넘는 곳도 여럿 보았다. 이는 그동안 내일은 어찌되건 당장 이익만 되면 우선 짓고 보자는, 눈 앞의 경제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짓도 마다하지 않는 천박한 자본주의 탓으로 거품이 잔뜩 쌓여 지금 그 후유증에 단단히 시달리나 보다.

이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는 뒷날 닥쳐올 공황을 미리 대비치 않은 탓이다. 나에게 이익만 되면 그만이라는 기업가나 내 정치자금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정치인들이 합작으로 빚어낸 고약한 심보의 결과물이다. 그들은 경제 이익을 위해서는, 집권을 위해서는 지구 환경 오염이나 자연 파괴, 자원 낭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국리민복은커녕 배를 산으로까지 끌어올리려는 환경 파괴에 안달하는 집단일 뿐이다.

이런 점을 바로 잡고 계도해야 할 '사회의 목탁'인 언론마저도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독자들이 보지도 않는 신문을 마구 찍어내 포장지도 듣지 않고는 폐지수집상으로 보내는 어제와 오늘의 현실이니 누가 이런 점을 말해 주고 깨우쳐주겠는가.

오늘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과소비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별별 부정부패 비리가 판을 치고 있다. 늘어난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소비 세태에 뒤지지 않기 위해 몸뚱이는 물론 영혼도 서슴없이 팔고 있다. 내가 평생을 몸담아온 교육계도 그렇다. 수십 년간 야간자율학습이니, 보충수업이니, 특기적성교육의 병폐를 말하면서도 왜 사라지지 않는가. 정말 이 나라 이세를 위한 교육자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사라지지 않는가?

그것들을 없애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거기에 따르는 잡부금을 걷지 못하게 하면 곧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그 쉬운 방법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적게 갖고 적게 쓰는 게 진보다

이즈음에는 산골마을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승용차요, 트럭이요, 하다못해 경운기라도 몰고 다닌다. 이른 어둑새벽에 선남선녀들이 남새나 곡식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장에 가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다. 이러다보니 산골사람조차도 뉴욕 현물시장의 국제 유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온통 나라 전체가 과소비 풍조로 들떠 있고, 지구 환경이나 국토 보전은 뒷전이다.

그저 부자만 되게 해 준다면 전과자 지도자도 좋고, 사기꾼 지도자도 좋다. 우리 모두 똥물에 휩쓸려 나락에 떨어지는 줄도 모른 채, 현실을 바로 보고 나라를 바로 이끌어가는 이보다 당장 더 잘 살게 해준다는 거짓말쟁이에게, 거품을 일으켜주는 허풍쟁이 야바위꾼에게 어리석은 백성 대다수가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운전면허증이 없고 연탄집게를 들고 지내는 나는 분명 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나는 이런저런 언저리 사람들에게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할 때마다 속도 많이 상했지만 “적게 갖고 적게 쓰는 단순 소박한 삶이 영원한 진보다”라는 어느 스님(도법)의 말씀을 위안으로, 내 삶의 지침으로 삼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가능한 그렇게 살고자 한다.

두어 평 되는 내 황토글방
 두어 평 되는 내 황토글방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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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 들어 아내가 나에게 기어이 연탄을 그만 때자고 하는 것은 혹이나 눈길에 연탄재 버리다가 낙상할지 모른다는 염려, 행여 연탄재에 남은 불로 산불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기우, "그동안 열심히 산 당신, 이제는 좀 편하게 사세요"라는 깊은 배려 등이 담겨있는 듯하다.

남자는 늙을수록 아내 말을 따르는 게 현명한 처사 같아 나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여 수일 내 연탄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꿀 테다. 하지만 올 겨울은 지난 겨울처럼 따뜻하게 지낼지 의문이다. 아무리 추운 날도 내 글방에서는 하루 연탄 8장이면 따뜻하게 지냈는데 말이다.

안녕, 연탄집게여! 너는 나의 오랜 벗이었다.


태그:#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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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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