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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지지세력이 '좌편향' 되었다고 지목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따위를 수정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저자들의 강한 반대로 수정이 여의치 않자 일선 교육청이 발벗고 나섰다.

 

지난 10일 서울시내 고등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을 대상으로 벌인 ‘역사교과서 연수’에서 "한국 근·현대사 6종 교과서 중 일부에서 역사교육 방향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다뤄지고 있다"고 교과서 교체를 요구했던 서울시 교육청은 다음날 '역사교과서 교체계획 보고'지시까지 내려 보냈다. 

 

20일 <한겨레>는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15일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쓰고 있는 49개 고교 교장들을 모아놓고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국가 정체성 논란이 심각하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가장 문제라는 판단을 하고 있으니 교과협의회 등을 거쳐 교과서가 재선정될 수 있도록 하라”고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학운위 결정 상황인 교과서 교체 결정권을 교육청이 결정하겠다는 반강제적인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 교육청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학교장들이 교육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해석 이전에 '사실'을 기반으로 저술되어야 하는데 사실에 기반하여 저술한 역사교과서를 자기들 사상과 이념에 맞지 않다고 국가가 강제하여 수정과 교체를 요구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조선시대는 네 번의 사화(士禍)가 있었다. 권력세력들 간 견제와 투쟁에 의한 원인이었지만 수많은 선비들, 그 중 사림(士林)이 엄청난 피해를 당한 사건들을 말한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있다.

 

그 중에 눈길을 끄는 사화가 있는데 '무오사화'(戊午士禍/戊午史禍)이다. 무오사화는 '사화'(士禍)로만 쓰이지 않고, 김종직이 사초로 쓴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발단이 되어 숙청당한 선비가 사관과 언관이었던 까닭으로 사화(史禍)라고도 한다.

 

사관을 무참히 희생시킨 연산군(1505년 연산군 11년)은 왕의 언행과 시정에 잘못이 있을 때 이를 바로잡는 '간쟁(諫諍)'과 일반정치가 그릇된 정치와 부당·부적합한 인사를 할 때 비판하는 '봉박(封駁)'을 담당했던 사간원과 유학의 진흥 및 인재의 양성을 담당하는 홍문관을 과 사간원을 혁파해 버렀다.

 

역사를 재단하고, 제멋대로 매도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비판하는 언관과 사관을 제거해버렸다. 하지만 비판을 거부했던 연산군은 사간원과 홍문과 폐쇄 이후 다음 해(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폐위된다.

 

500년 전 이 땅에 벌어졌던 비극으로 다 아는 역사이다. 역사는 연산군을 우리 역사 중 어느 왕보다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배워야 하지 않는가? 역사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언관과 사관을 무참히 죽인 결과가 무엇인지 안다면 역사 왜곡과 언론 통제가 얼마나 비극인 알아야 한다.

 

전제왕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역사를 자기들 사상과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좌빨'이라는 누명까지 씌워가면서 권한도 없는 교과부와 교육기관이 나서서 교과서를 수정과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좌빨' '빨갱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정죄하는 비극이 이명박 정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간원과 홍문관을 혁파했듯이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대통령 발언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발언 발설자를 찾기 위해 수첩과 휴대전화 통화내역까지 조사하고 있다. 사상과 이념 통제와 언론 통제가 한 묶음이 되어 진실을 옭죄이고 있다.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 사관을 살육,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기관들을 혁파한 연산군은 폐위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왕 중 가장 완악한 왕으로 단죄되고 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기록된 역사를 남긴 가장 중요 이유 중 하나는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라는 이유이다.


태그:#역사교과서, #언론통제, #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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