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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많아졌지만 써야할 곳도 많아졌다. 전에 하지 않던 성형수술도 해야 하고, 학비도 더 많이 든다. 남들 다 하는 것 안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러다 계속 돈에 끌려 다니는 건 아닌지? 소신껏 사는 삶을 생각해 보자.

지난 초여름, 중학교 1학년인 셋째 보리는 반팔 여름교복을 입어야 하는데도 긴팔 교복을 입겠다고 우겼다. 양 팔꿈치에 점이 있는데, 그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다니더니 이제 신경이 쓰이나 보다. 하도 보채서 엄마가 강화에서 김포 피부과로 데리고 갔다. 두 군데를 들렀는데 두 곳 다 레이저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비용이 만만하지 않다. 한 번에 25만원씩 십여 차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걱정이 많아졌다. 안 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복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보채는 것도 문제지만, 비용도 문제였다. 그날 저녁 재무상담을 하던 중년 주부 고객과 얘기하다가 그 얘기가 나왔는데, 고객은 나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자인 제 입장에서는 하고 싶을 것 같아요."

막내 팔뚝 점 빼러 울산에 다녀오다

그런데 남들과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수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활동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다만 눈에 좀 거슬릴 정도인데 말이다. 피부과 의사가 장삿속으로 수술을 부추긴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다 성형외과 원장인 선배가 생각나 전화를 해보았다.

"나는 팔뚝 점은 어지간하면 수술하지 말라고 하는데…."

전화 너머로 선배는 분명히 말했다. 단지 남의 눈 의식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의학적 논거가 있었다. 얼굴과 달리 팔은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깨끗하게 치료되지 않고 상처가 남는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내게 자신이 생겼다. 곧바로 보리에게 전화해서 울산 성형외과 원장을 만나러 가자고 설득했다. 보리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논거를 대며 설득해 보았다.

"종합병원 과장이었던 아주 유명한 의사야. 그리고 아빠랑 친한 대학 선배야. 그래서 바쁘지만 한 번 네 상태를 봐주겠대."

보리의 반응은 짧고 차가웠다.

"그런데?"
"으응. 아빠랑 기차여행한다고 생각하고 갔다 오자, 보리야. 선생님한테는 아빠가 전화해 놓을 게. 가정학습으로 처리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

겨우 보리로부터 "알았어"란 답을 들었다. 나는 내심 권위있는 원장 말을 보리가 믿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기차표를 끊었다.

원장 선배는 점을 뺄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윤리적 접근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화로 말한 것처럼 얼굴과 팔은 수술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 번 점을 빼기로 마음먹은 보리 생각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자 선배는 차선책으로 그 시기를 설명했다.

"이쪽 밀크커피 반점은 레이저로 해도 네가 앞으로 더 크기 때문에 깨끗하게 안 돼. 하더라도 성장이 멈춘 고등학교 때 하자."

원장 선배는 설득 차원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얘기했다. 수술을 늦게 하면 그 사이에 레이저 기술이 더 좋아질 거란 논거도 댔다. 반대편 팔뚝의 동전만한 검정점은 레이저로 안 되고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상처가 남기 때문에 점을 상처로 바꾼다고 생각하라고 설명했다. 이것 역시 해도 다 커서 하는 게 좋다고 했지만, 보리는 검정점은 수술해 달라고 했다. 마냥 뜻을 꺾을 수는 없어 검정점만 1차 수술을 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보리 뜻대로 점 빼는 수술을 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새마을호로 오가는 10시간 동안, 우리는 식당 칸에서 식사도 하고 보리는 내게 수학 문제도 물어봤다. 나는 책을 보기도 하고 창밖 경치 구경도 하면서 모처럼 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형수술, 남 얘기인 줄만 알았더니 이제 바로 우리 집 얘기가 되었구나.'

어릴 때는 그건 정말 내가 전혀 모르고 돈 많이 버는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 주변에서도 가끔씩 그런 일을 보게 된다. 몇 백만 원 든다는 치아교정도 비슷한 것이다. 예전보다 다들 돈을 더 많이 벌지만, 이런 식으로 쓰는 돈도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진 것인지는 의문이다.

낯선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일수록 비용이 많이 든다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모습.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모습.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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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논어공부 모임에서 '교언영색'이란 말을 가지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을 하는 사람은 진실하지 않다는 얘기인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지 않고 왜 화려하게 꾸미려 하는 걸까? 거기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동이 많고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할 일이 많을수록 꾸미는 게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어떠하냐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극단적으로 말해 혼자만 생활하는 곳에서는 옷차림이나 주변을 깔끔하게 할 필요는 있을지언정, 화려하게 꾸밀 필요는 없다. 가족이나 오랫동안 사귄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로 꾸밀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낯선 사람을 상대로 영업을 할 때는 잘 꾸며야 한다. 진실을 알 수 없기에 겉모습만으로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그러다 보니 진실을 정확히 드러내기 위한 비용도 증가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사기당하지 않거나 외상값을 떼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그러자니 거래 상대방의 신용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도 많은 비용이 든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이렇게 복잡하고 현란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어떤 고객은 아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고도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만들거나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지는 못하겠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시류로부터 덜 영향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인생관의 문제다.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울러 나 같은 재무상담사가 고객들에게 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도 바로 이것이다. 그중 하나를 나는 자연과 사회의 필연법칙이라고 보는데, 그 필연법칙을 아이들이 몸에 익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재무상담 고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설명을 할 때 나는 이 얘기를 한다.

"제가 강화에서 12년째 살고 있는데, 아이들이 친구 집에서 잔다고 했을 때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꼭 챙겨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것이 뭐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면 일기장·잠옷·돈·책 같은 대답이 나온다. 간혹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칫솔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양치질을 잘 하지 않으면 이가 썩고, 그러면 치료하는 데 돈도 들고 건강도 나빠지고 결국 일찍 죽게 됩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자연법칙 정도는 아니지만, 이것 역시 그에 버금가는 필연법칙입니다. 아이들도 지식으로는 이걸 압니다. 그러나 그걸 몸에 배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나아가 나는 원래 주제였던 재무 문제를 끄집어낸다.

"우리가 하는 재무상담이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흐름에 대한 필연법칙을 고객들에게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돈의 필연법칙을 무시하고 맘대로 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상담을 받는 고객들 중 반수 이상은 자신의 소비성 지출이 많다고 자책한다. 상담사인 내게 그 수치를 말하면서, 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께 잘못한 걸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실제 얼마 쓰는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보다 적게 써야 한다는 당위나 의지 계수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윤리교사가 아닙니다. 되도록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십시오. 그러면 저는 그것을 수치로 표현해 볼 것입니다. 그 수치를 놓고 다시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돈의 필연법칙을 다루는 방법이다. 이런 거시적인 흐름을 스스로 판단해 보면서 재무목표를 조절할 수도 있고, 소비성 지출을 줄여 저축액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이렇게 필연법칙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자유다. 필연법칙을 무시하고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나는 돈 얘기를 하고 있지만, 돈 그 자체보다는 그것이 꿈을 이루는 데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중요하다. 다시 말해, 개인의 생각하는 바에 따라 돈의 의미가 달라지고 삶이 바뀌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꿈을 키워가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

미국에서 금융산업의 근간이 흔들리는 이때, 개인이나 가정은 돈 문제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삶보다 돈을 중시한 건 아닌지, 재무목표보다 수익률을 우선시한 건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재무설계 원칙이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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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폭락시대, #돈의 필연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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