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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역사적인 당선을 맨해튼 한가운데서 지켜보게 된  건,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며 야간 대리운전도 마다하지 않고 아내의 유학과 두 자녀의 뉴욕 생활을  멀리서 봉양하고 있는 남편에게 받은 값진 선물이었다. 

 

당선 당일 아침 뉴욕 타임지가 인터넷 경매에서 $200을 호가한다는 사실만 해도 이 일이 전 세계인들에게 얼마나 기대가 큰 사건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오바마를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예의 주시하고 내심 줄곧 지지했던 한 지지자로서 그는 분명 귀족의 자질을 갖추었다.

 

여기서 귀족이란 부를 세습받고 고위층의 교육과 관습을 익혀온 귀족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이상적 가문을 만들어 가는 귀족이다. 물려 받은 귀족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하에서 꿈을 가지고 실천함으로써 스스로를 귀히 여길 줄 아는 귀족'이다.

 

그는 그가 이룬 가정도 명문가로 만들어 갈 것이고 그의 꿈과 그를 향한 도전으로 세상에  많은 마이너리티 어린이, 스스로 소수민으로 여기고 살아온, 들에게 '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영웅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신흥 귀족이라 불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미국이란 나라에 온 지 일년 반 동안 하나 하나 알아가는 미국에 대한 사실들이 흥미로웠던 게 사실이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한다면 인권평등을 그 어느 나라 보다 강조하는 미국이 현재의 부를 거머쥐기 위해 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 인디안들을 어떻게 처우했는지 읽었을 때 느꼈던 분노를 잊을 수 없다. 

 

세계의 인권 감찰사 노릇을 하려하는 그들의 제스처에 역겨움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흑인들에게 정치적 목적의 발로로 노예해방선언을 한 이후에도 인간으로서의 투표권을 온전히 주지 않고 3/5명의 권한을 주었던 우스꽝스럽고 비열한 역사도 이들의 뼈아픈 과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국민들이 만들어내는 풀뿌리 민주주의 형태의 국가와 정치의 모범을 먼저 선보여 거의 전세계의 국가들이 이들의 헌법을 모방하고 응용하고, 이들의 대통령제와 자본주의와의 견제와 균형을 추종하고 있다는 것은 또한 그들의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부심은 때론 지독한 오만과 남용으로 드러났던 것도 사실이다. 자국의 이익에 어긋나는 그 어떤 나라도, 행위도 용서하지 않고 응징하고, 위협하고, 보복하는 제국주의의 발톱을 그 화려함 뒤에 때론 감추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오만과 무자비함에 진력이 난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오늘의 이 시점을 숨죽이며 기다려 왔을 것이다. 

 

미국이 스스로 자신들의 얼룩지고 부끄러운 과거와 차별화 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Turing Point)를 만들 것을 진심으로 이를 악물고 기다려 온 것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말한다. 물론 필자도 진심으로 기도한다. 이 지점이 그런 소설의 절정과 같은 시점이기를.

 

하지만 약육강식의 국제관계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기대한다면, 국제관계가 약육강식의 원칙을 따르고는 있지만 국제 관계이기 이전에 인간공통체로서 어느 정도의 동정심을 발휘해 줄 것을 호소하는, 오바마와 같은 신흥 귀족이, 스스로 일궈낸 귀족이, 여럿이(미국 시민 지지자) 공동으로 창조해 낸 귀족이 그의 권력을 그 귀족과 친척만을 위해서 쓰지 않고 다른 동일한 인권을 가진 모든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누어지게 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한 환상은 초창기 미국 정착민들이 인디안들이 살고 있던 영토를 빼앗으며 비 문명화 된 원주민들에게 “우리는 이 땅을 위해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사상”을 들이밀며 그들의 폭력을 합리화했던 오만한 침략자들의 후손들이 2세기를 훌쩍 넘기며 지금 그 선민사상을 수정하고 회개하며 새로 쓰는 역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서, 노예의 삶을 살았던 종족의 후예로서, 삶의 어느 곳에서 느껴왔던 비공식적인 차별과 멸시를 참아오며,  법앞에 평등하다는 하나의 원칙 하에 꿈을 키워왔던 한 흑인 혼혈아가 오직 두 개의 돌팔매로 골리앗을 상대했던 다윗처럼 미국 사회의 그릇됨과 싸우겠다고 나섰을 때 그의 용맹성과 진실성을 발견한 자들에 의해 그는 처음 강연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고, 2008년 11월 4일 드디어 아메리카의 신흥 귀족이 되어, 행정부의 수장이 되어 백악관의 벽에 걸 사진을 아름다운 검은색으로 수놓을 수 있게 되었다. 


오바마의 승리는 오바마 개인의 성공이 아니다. 오랜시간 미국 국민들의 반성과 자각이 그를 그 자리에 세웠고, 그는  미국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가속도와 관성에 의해서 잘못 들어선 길로 너무 멀리까지 가버린 상황에서 다시 지도를 펼치고 되짚어 옳은 길을 찾아가는 원정대의 선봉장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취약한 아킬래스건인 ‘빈익빈 부익부’라는 피해갈 수 없는 딜레마를 한 올 한 올 다시 풀고 엮어 가야 하는 지난하고 골치 아픈 과제가 승리와 함께  떠넘겨졌다. 미국이 이번 정권에서 양극화를 해결해 나가는 모델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세계 어디에선가 또 다른 마르크스와 레닌의 시도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극단적 대치와 냉전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평화를 위해서 무기를 든다는 ‘어불성설’이 현실이 되고 있는 야생동물적 자본의 질서 속에서 미국이 가장 먼저 시행착오를 겪고 그것을 통해 배우고 고치는 합리적 선택이 진정 우리 인간계에 도움이 되는 결과로 귀결되길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태그:#빈익빈부익부, #인간공동체, #오바마, #미국의 자존심, #미국의 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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