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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쓴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은 감수성 깊은 문학적 수사를 통해 살충제와 농약 등의 피해를 통렬히 경고한 책으로 환경운동의 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책이다 ..  《달렌 스틸/김형근 옮김-시대를 뛰어넘은 여성과학자들》(양문,2008) 53쪽

 

 레이첼 카슨 님은 1960년대에 벌써 “입을 다문 채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봄”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습니다. 이무렵 우리 나라에는 “조용한 봄”이란 없었습니다. 얼어붙던 강물이 와지끈 소리를 내듯 녹고 풀리면서 또렷하게 찾아왔습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또렷하게 우리 몸과 마음으로 느껴졌지,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법이란 없었습니다.

 

 그만큼 1960년대 우리 삶터는 사람이며 자연 목숨붙이며 살 만했습니다. 비록 전쟁 뒤라 뒤숭숭하고 어수선했지만, “고요한 봄”은 아니었습니다. 새소리 없고 벌레소리 없으며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없는 봄이 아니었습니다.

 

 ┌ 조용한 봄

 └ 고요한 봄

 

 오늘날 우리들, 2000년대 우리들은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이고 국민소득이 얼마이고 하는 숫자에 크게 놀아나고 있습니다. 이만큼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물질문명을 누려서 물도 밥도 사다 먹고, 집도 옷도 돈으로 사다 쓰게 되었습니다만, 흐르는 냇물을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두 손으로 농사지어 거둘 논밭이 크게 줄었습니다.

 

 책으로 남기지 못했어도 사람과 사람한테 고이 물려지던 옷짓기 실잣기 장담기 들은 하나둘 잊힙니다. 기계를 만드는 솜씨는 늘어나지만, 두 손으로 할 줄 아는 일은 사라집니다. 어린이집과 보육원과 유치원과 온갖 학원은 늘어나지만, 아이를 돌보던 어버이 마음은 사라집니다. 몸소 돌보고 손수 기르던 아이들이 아니라, 학원과 과외를 돈에 따라 내맡기는 아이들이 되어 갑니다.

 

 더구나 돈이 늘었을 뿐 아니라, 가득가득 쌓이는 데에도 주식값이 떨어지면서 집안살림이 거덜나고, 달러값이 오르면서 나라살림 휘청이는, 웃지 못할 일이 수없이 생겨납니다. 주식이니 달러니 돈이니 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아무 눈길 둘 걱정이 아니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주식이니 달러니 돈이니 매이지 않으면서 일거리를 찾고 놀이감을 즐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요.

 

 ┌ 소리 없는 봄

 ├ 소리 죽은 봄

 └ 소리가 사라진 봄

 

 손이 아닌 돈이 빨래를 합니다. 손이 아닌 돈이 밥을 합니다. 발이 아닌 돈이 우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몸이 아닌 돈이 우리 가방을 나르고 짐을 나릅니다. 이러는 동안 아가씨들 짧아지는 치마 길이와 웃저고리 길이에 따라서 봄을 느끼고 여름을 느낀다고 합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광고에 따라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옴을 느낀다고 합니다. 백화점 ‘깎아팔기(바겐세일)’ 광고쪽지를 보고서 “겨울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새벽나절 이슬이나 서리를 보면서, 아침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별자리 움직임을 가늠하면서 철을 헤아리고 날씨를 느끼던 몸가짐을 우리 스스로 잊습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버렸습니다.

 

 봄소리를 잊고 여름소리를 버리고 가을소리를 멀리하며 겨울소리를 잃습니다. 차소리를 얻고 기계소리를 듣고 전화 소리 가득하며 광고노래 소리 넘실거립니다.

 

 ┌ 죽은 봄

 ├ 싸늘한 봄

 ├ 깨어나지 않는 봄

 ├ 사라진 봄

 ├ 자취를 감춘 봄

 └ …

 

 나라밖에서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라안을 돌아본다면, 1960년대 우리 나라에서는 《침묵의 봄》이 읽히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에 ‘탐구당 손바닥책’으로 한 번 옮겨졌으나 거의 안 읽혔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첫무렵에 다시 한 번 옮겼는데, 이때에도 안 읽혔습니다. 비로소 2000년대로 접어들어서 새로운 옮김판이 나오니 그제서야 조금 읽힙니다만, 깨작깨작입니다.

 

 나라밖에서는 일찌감치 1960년대부터 스스로 환경생태책을 쓰고 읽으면서, 그 뒤로 더 곱새기고 갈고닦은 환경생태책을 쏟아내고 스스로 삶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1960년대에는 어찌할 수 없었다고 해도, 1970년대에도 거의 누구도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로 접어든 오늘날까지도 터럭만큼이나마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쩌면 그렇지요. 《침묵의 봄》이 쓰여진 미국이라는 나라는 꽤 긴 세월 ‘시커먼 연기 쏟아지는 굴뚝 북돋우는 공장산업’을 해 왔기에, 그 뒤탈을 퍽 나중에야 깨닫고 이와 같은 책이 저절로 나오게 되었는지도. 그리고, 서양사람들은 《모래 군의 열두 달》(알도 레오폴드)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헨리 윌리엄슨)이나 《씨앗의 희망》(헨리 데이빗 소로우)이나 《회색곰 왑의 삶》(어니스트 톰슨 시튼)이나 《파브르 식물기》(앙리 파브르) 같은 훌륭한 책을 하나둘 엮어낼 수 있었는지도.

 

 우리들은 아직 깨달으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우리들은 아직 ‘시커먼 공장 굴뚝 연기’뿐 아니라 ‘자동차 배기가스’조차도 못 느끼고 있으니까, 우리들은 아직 ‘갖은 전기제품과 물질문명이 우리 삶을 어떻게 뒤집어 놓는지’ 안 깨닫고 있으니까, 《침묵의 봄》은커녕 “입 닥치고 있는 봄”조차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 입 다문 봄, 아니 입 닥치고 있는 봄입니다. 입이 꿰매어진 봄입니다. 입을 잃은 봄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입을 다문 사람들입니다. 아니, 입 닥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입이 꿰매어진 사람들입니다. 아니, 입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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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2011)


태그:#책이름, #절판, #환경책,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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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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