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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 글 : 국제엠네스티
- 그림 : 존 버닝햄을 비롯해 스물일곱 사람
- 옮긴이 : 김태희
- 펴낸곳 : 사파리 (2008.9.30.)
- 책값 : 12000원

잘된 대목은 북돋워야겠으나, 아쉬운 대목은 비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는 한결 알차게 엮은 책을 출판사에서 내지 않느냐 싶습니다.
▲ 겉그림 잘된 대목은 북돋워야겠으나, 아쉬운 대목은 비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는 한결 알차게 엮은 책을 출판사에서 내지 않느냐 싶습니다.
ⓒ 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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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자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야 합니다. 밥과 옷과 집, 이 세 가지는 누구한테서도 빼앗을 수 없을 뿐더러 빼앗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돈으로 움직이는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며 크고작은 사고로 살림살이가 힘겨운 사람들을 죽음 구덩이로 내몰고 있습니다. 오로지 경쟁, 남보다 앞서야 하는 경쟁, 남을 밟고 올라서도록 하는 경쟁만 나돕니다. 이러다 보니, 어른이 읽는 책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에서도 경쟁을 넘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줄거리를 제대로 못 담아내곤 합니다. 억지스런 가르침이나 우격다짐 같은 충효가 아니라, 살갑게 받아들일 아름다움과 고맙게 받아먹는 깨우침이어야 할 텐데, 자꾸만 ‘골든벨’이나 ‘우리말 달인’과 같은 지식잔치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서른 가지 조항에 따라 그림 하나씩 넣어 엮은 책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는, 선언은 있으나 실천이 뒤따르지 않고, 실천도 뒤따르지 않지만 한국땅에서는 거의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인권 문제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스물여덟에 이르는 그림책 작가들이 보여주는 재미나고 톡톡 튀는 그림결은 우리가 미처 못 보거나 못 느낄 ‘우리 둘레 이웃과 동무가 나와 함께 누릴 권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그려낸 작가들이요, 아이들이 즐겁게 받아쥐는 그림책을 엮어낸 작가들이요,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들도 함께 즐겨보는 그림책을 펴낸 작가들입니다. 다 다른 나라에서 다 다른 삶을 꾸리는 동안 저마다 달리 부대끼거나 부딪힌 삶 한 자락들이, 그림책 한 권에서 골고루 섞이면서 무지개 빛깔로 새삼스레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고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서는, 한숨이 푸우우욱 하고 나옵니다. 서른 가지 세계인권은 우리 삶하고 그다지 이어져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도시로 쏠리며 무너지거나 고달프게 되는 시골 농사꾼 삶,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학력에 따라 대접이 달라지는 사회 얼거리, 돈-힘-이름 세 가지를 움켜쥔 권력자와 기득권이 제 밥그릇을 튼튼히 지키려고 공직과 언론을 쥐고 흔드는 모습, 인권을 짓밟는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살아숨쉬는 정치 흐름, 교육이 아닌 입시밖에 없어서 아이들이 벼랑에 내몰린 교육 터전, 돈 없으면 못난쟁이로 여겨지는 경제판, 아이 밥상뿐 아니라 어른 밥상에 유전자조작을 하고 비료와 항생제로 찌든 먹을거리만 올리게 되는 형편, 남북이 아직까지 끝없이 군대를 크게 키우며 무기산업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보건복지는 뒷전인 나라, 그런데 우리 스스로 이 모든 문제를 바로보거나 고치도록 마음먹지 못하게 되고 만 얼거리, 값비싼 아파트만 새로 짓고 서민 살 골목집은 때려부수는 토건 왕국, 차 없으면 길거리에 나다닐 수 없게끔 짜여진 도시계획…….

2000년대 세계인권선언이라면, 아니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갈 권리’를 말하자면 이렇게 간지러운 곳을 긁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 땅 우리 아이들한테 두루뭉술한 ‘명제’만 읽도록 할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옆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고 그이는 어떤 일로 즐거워하거나 괴로워하는지를 꼼꼼이 짚어내고 밝혀내면서 아이 스스로 세상을 알아보면서 세상을 밝힐 작은 촛불 하나 켤 수 있게끔 이끌어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만, 허울뿐인 외침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인권선언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라도 달랑 하나쯤은 우리 나라 책방과 도서관에 꽂히면서, ‘여보시오, 인권이란 게 있읍디다’ 하고 말건넴이라도 해야 하는 우리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한테 틀림없이 없는 소중한 그림책이지만 알맹이가 빠져 있어 아쉬운데, 그래도 이만한 책이라도 한 권 펴내 주니 고맙습니다.

ㄴ. 곤충의 왕 장수풍뎅이

- 지은이 : 구리바야시 사토시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사파리 (2008.5.21.)
- 책값 : 15000원

이 땅에서 장수풍뎅이를 볼 수 없다고 하니, 일본책을 옮기겠지만, 그래도 퍽 너무했습니다.
▲ 겉그림 이 땅에서 장수풍뎅이를 볼 수 없다고 하니, 일본책을 옮기겠지만, 그래도 퍽 너무했습니다.
ⓒ 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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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땅에서는 ‘장수풍뎅이’를 본다는 일은 아주 드물 뿐 아니라 운이 억세게 좋지 않고서는 꿈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는지 모르며, 사진이 아니면 볼 일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들은 장수풍뎅이며 하늘소가 살아갈 터전을 마구 무너뜨리고 깎아 버리면서 고속도로와 아파트와 공장을 지었습니다.

그리 오래된 옛날이 아니더라도 도시 골목길에 땅강아지가 살고 풀무치가 날았습니다. 조금 걸어나가면 논도 있고 밭도 있고 웅덩이와 갯벌도 있어서 개구리를 잡고 소금쟁이와 놀고 망둥어 낚시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제 어릴 적, 대나무에 실과 바늘 하나 달고 망둥이 낚시를 해 오면, 어른들은 찌개를 끓여 드시거나 말려서 밥반찬이나 안주로 삼으셨습니다. 미꾸라지 또한 어른들한테는 좋은 밥거리가 되었고요.

그렇지만 도시뿐 아니라 웬만한 시골에서도 자연을 가까이하기란 나날이 어려워집니다. 깊이 들어가는 산골이 아니라면 시골도 자동차 판입니다. 시골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길짐승과 날짐승이 무척 많습니다.

이런 판이니, 우리 땅에서 살아가는 장수풍뎅이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엮어내기란 아주 힘든 일이며, 아무래도 우리 스스로 엮어낼 수는 없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장수풍뎅이 이야기뿐이겠습니까. 하다 못해 제비 이야기조차도, 박새나 콩새 이야기도, 뜸뿍새와 메추리 이야기마저도, 우리 스스로 일구어 내지 못합니다. 이웃 일본사람들이 제 나라 일본에서 자라는 장수풍뎅이 이야기를 알뜰히 엮어내면, 이 책 판권을 사서 한국말로 옮겨서 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엮은 <곤충의 왕 장수풍뎅이>를 넘기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린이책을 얼마나 잘 만들며, 부지런히 엮어내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이 담아내고 있는가를 잘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번역글이 그런지 일본사람이 쓴 글이 그런지 몰라도, 사진 아래에 달린 풀이말 가운데에는 장수풍뎅이를 ‘사람과 함께 사는 이웃 목숨’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한낱 연구대상이나 보호대상이나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듯한 풀이말이 자주 보입니다.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살펴보는 데에 <곤충의 왕 장수풍뎅이>는 틀림없이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산 목숨’이 아닌 ‘죽은 목숨’ 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과 풀이말은 달갑지 않습니다. 죽은 목숨을 가까이하는 아이들은 이 책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장수풍뎅이와 얽힌 지식? 그러면 이 지식을 얻은 아이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 어울리며 살아야 할까요? 지식과 정보를 담아서 보여준다고 하는 자연도감 갈래 책이라고 해서 ‘지식과 정보’만 담아낸다면 속 빈 강정이 되고 맙니다.

ㄷ.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

- 지은이 : 리처드 플랫
- 옮긴이 : 김은령
- 그림 : 노희성
- 펴낸곳 : 푸른숲 (2008.8.15.)
- 책값 : 9500원

좋기는 좋은 책인데, 다 읽고 나서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 겉그림 좋기는 좋은 책인데, 다 읽고 나서도 찜찜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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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장을 넘기던 옆지기가, 책을 덮은 뒤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본 아이들은 햄버거를 먹고 싶어할까요?”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참 그렇겠구나 싶습니다.

햄버거라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온갖 공정을 꼼꼼히’ 말해 주지는 않으나,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몸속에 집어넣는 먹을거리로 무엇이 있고, 또 햄버거 같은 화학약품에 찌든 조합물하고 지난날부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몸속에 알뜰히 넣었던 먹을거리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어요. 우리한테 익숙한 먹을거리가 꼭 몸에 좋은 먹을거리인지 아닌지, 우리한테 낯선 먹을거리라면 우리 몸에 나쁜 먹을거리일지 아닐지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딱 잘라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이끕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음식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할 큰 문제를 아주 짤막하고 손쉽게 풀어내면서, 아이 스스로 자기가 날마다 먹는 밥이 어떠한가를 알아보도록 돕습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영국 옥스포드대학 출판부에서는 애써서 책 하나로 묶어내어 아이들한테 선물을 해 주는데, 우리나라 서울대 출판부나 연세대 출판부, 또 고려대 출판부를 비롯해서, 이화여대 출판부, 숙명여대 출판부, 그리고 나라에서 스스로 내로라하는 대학교 출판부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궁금해집니다. 또 대학교수님들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한편,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출판사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책을 선물해 주려고’ 땀을 흘리는지 궁금합니다. “달콤하고 살벌한 우리 음식 발자취”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일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국제앰네스티 지음, 김태희 옮김, 니키 달리 외 그림, 사파리(2008)


태그:#그림책, #어린이책, #장수풍뎅이, #햄버거, #세계인권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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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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