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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조각극|관훈 갤러리|2008.10.22~10.28
 김병철의 조각극|관훈 갤러리|2008.10.22~10.28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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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설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란, 시골 태생인 내게 미술전 관람은 본능적으로 언제나 멀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전시회에 더러 가보지만 되풀이되어도 여전히 서먹서먹하고 낯설 때가 많다. 이런 수준이니 솔직히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오히려 내겐 옛사람들의 흔적인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더욱 친근하다.

그럼에도, 어제(22일)는 <김병철 조각극>(관훈 갤러리·2008.10.22~10.28)에 가게 되었다. 어떤 이의 초대를 거절 못하고 솔직히 인사치레로 간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본 작품을 보고 또 보고,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처음 만난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묻고 그런 후 다시 보고, 함께 간 사람(남편과 일행1)에게 설명을 해줄 만큼 의미 있게 본 조각전이었다.

1900X350X650(h)mm|느티나무.다람쥐.동선.동판
▲ 아빠의 꿈 1900X350X650(h)mm|느티나무.다람쥐.동선.동판
ⓒ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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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장에 들어서서 첫 번째로 만난 작품이다. 두툼한 목을 길게 빼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이 사람의 몸통은 그물. 그 속에서 귀여운 다람쥐 한마리가 해바라기 씨앗을 한 알씩 먹고 있었다. 간혹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전시회장의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제목이 뭘까?', '설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일상인의 비애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들어서면서 받았던 도록은 아예 까마득하게 잊고 작품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할만큼 눈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작품 앞에 한참 서있는 내게 나를 초대한 미술사학자 이돈수씨(<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다가와 설명을 해줬다.

"다람쥐 같은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어주며 죽어가는 가시고기를 모델로 아버지들의 자식에 대한 숙명적이며 끝도 없이 깊은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아빠의 꿈>이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설명을 듣는 순간, 우리 형제들이 어린 시절,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산을 일궈 밭을 만들고 복숭아나무를 심어 과일이라도 풍족하게 먹이려고 노심초사하던 친정아버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내게 아버지는 복숭아나무다. 아마도 내가 아버지를 조각한다면 아버지의 30년 사랑이 담긴 복숭아나무로 하리라. 지금쯤 아버지는 저녁을 잡수시고 졸며 깨며 텔레비전을 보시고 계시겠지...'

작품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선물, 내 방식대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나: "이건 어떤 작품일까요? 작가는 무얼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일행: "요즘에는 여성들이 워낙 강하잖아요. 생선 가시를 물린 것이나 입보다 큰 공으로 입을 틀어 막은 걸 보면, 뭐 할 말 제대로 못하고 입 꾹 다물고 주눅 들어 살아가는 현대 남성들의 비애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혹시 아닐까요?"

나: "듣고보니 그도 그럴법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몸뚱이에 자물쇠를 채웠을까?"
일행: "글쎄요?…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요."

600X250X620(h)mm|참죽나무.느티나무.못
▲ 배부른 놈 배고픈 놈 600X250X620(h)mm|참죽나무.느티나무.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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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X420X1200(h)mm.적송.느티나무
▲ 돈만 먹는다 800X420X1200(h)mm.적송.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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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간 사람과 작품을 돌아보며 주거니 받거니 했다. 작품명이 전혀 없는 전시회, 도록을 참고하면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짐작될 터인데 우리는 입구에서 받은 도록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고 작품을 만나는 그 순간의 첫인상 그 느낌만으로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작품을 향해 막 움직이려는 순간, 조금 전에 잠시 인사 나눈 적 있는 김병철 작가가 다가와 다시 인사를 했다.

"강남 사람, 강북 사람이랍니다. 원래 제목은 '배부른 놈 배고픈 놈'이지만.(웃음) …갈수록 빈부격차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사회, 돈이 인간의 기본 생식 능력까지 좌우하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나름 표현해 봤습니다. … 이 작품은 지칠 줄도 모르고 더 먹으려고 달려드는 아귀와 같은 인간을 표현한 것으로 <배부른 놈, 배고픈 놈>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짧은 설명으로 작가의 작품의도가 짐작되었다. 실속 있는 노른자 덩어리, 제 입보다 훨씬 큼지막한 덩어리를 입이 터져라 물고 있는 '배부른 놈(왼쪽)'은 남성도 보란 듯이 쳐든 반면, 살점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영양 가치라고는 도무지 없는 생선가시를 물고 있는 '배고픈 놈(오른쪽)은 눈도 퀭하고 남성은 힘을 잃은듯 축 처져 있다. 이 작품  한편으로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의 배부름과 서민들의 궁핍을 실감했다.

작품 '돈만 먹는 놈'은 또 어떤가. 머리에 든 것이라고는 요행과 속임수, 때문에 머리는 작고 그에 비해 돈을 먹어대는 주둥이가 얼굴 중에서 가장 크다. 그 큰 입을 '쩌 억~!' 벌리고 날름날름 계속 돈만 먹고 있다. 하지만 먹기만 할 뿐, 자물쇠를 채워두고 내보낼 줄 모르는 퉁퉁 부은 배…. '먹은 것을 소화시켜 거름으로 내보내면 꽃이 피는 데 좀 좋아?'

1270X250X350(h)mm|F.R.P.아크릴판.철
▲ 지루한 하루 1270X250X350(h)mm|F.R.P.아크릴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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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X250X350(h)mm|F.R.P.아크릴판.철
▲ 지루한 하루 1270X250X350(h)mm|F.R.P.아크릴판.철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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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사람들은 표정이 볼수록 재미있죠? 보는 것만으로 풀풀 웃게 만드네! 안그래요?"
일행: "그러게요. 재밌네요. 음~ 이 작품은 말이죠. 아내하고 아이들한테 끊임없이 애교를 부리고 ‘까꿍!’하고 수시로 아양을 떨어야 하는 요즘 아빠들을 표현한 것 아닐까요?"

함께 간 사람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금 뒤 작가에게 물어보니 어떤 남자의 무료한 일상(지루한 하루)이란다. 우리 둘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주고받은 이 어처구니없는 작품 평을 작가가 안다면? 이런 생각을 하자 피식! 슬며시 웃음이 일었다.

작품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선물이랄 수 있다. 그러니 내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내방식대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작가로부터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또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해석을 할수도 있을 터. 여하튼 내가 느끼는 만큼 그만큼 얻을 수 있음이라. 미술전에 대한 막연한 거리는 이렇게 점차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이 전시회를 위해 1년여 동안 준비한 작품은 모두 14편. 작품들은 느티나무, 참죽나무, 대추나무, 적송 등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작품 앞에 오래 있다 보면 그 나무만의 은은한 향이 묻어난다. 또한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는, 각기 다른 나무들의 그 독특한 결(무늬)을 일부러 느껴보는 것도 좋다.

관훈 갤러리|2008.10.22~10.28일까지|조각가 김병철
 관훈 갤러리|2008.10.22~10.28일까지|조각가 김병철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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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조각가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염원이다. 두 번째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나와 나를 둘러싼 가족 이야기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평생의 반려로 역경과 기쁨을 함께 이겨내고 나누는 아내와 아이들(그는 아들만 둘이다)을 향한 아빠의 사랑,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원초적 사랑을 <고백>, <식구>, <내 새끼> <아빠의 꿈>등에 표현해 봤다.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천박한 자본주의와 그것에 편향된 사회적 열망과 한상, 그에 대해 묻고 말하고 싶었다." - 작가 김병철

외에, 우리들이 '맨땅에 헤딩하기'란 이름을 붙인(큰 원반에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비명>, 남자는 절대 울어선 안 된다는 기존의 틀을 깨고 파란 감성의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샘솟는 눈물>등의 작품들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작품 한 점 한 점이 볼수록 재미있고 의미 있어서 전시회장에 처음 들어서며 가졌던 어색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작품들을 만나는 동안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내 아버지와 타성으로 잊고 살던 남편의 무거운 어깨를 떠올리기도 했다.

미술에 무지한 나를 초대해준 덕에 호사를 누렸다. 그동안 미술 전시회에는 어색해 했던 나, 오늘처럼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고 내 가족, 특히 우리 아버지나 남편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있는 전시회라면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라도 찾아가 그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


태그:#김병철의 조각극, #관훈 갤러리, #아버지, #가족, #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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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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