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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미술관 가요~."

 

세 살짜리 손녀가 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대사를 읊습니다. 

두어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해도 할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조르는 아이에게 마지 못해 돌아오는 대답은 한 줄.

 

"뭔 놈의 미술관 타령이냐."

 

갑자기 아버지의 잠자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립니다.

 

"쿵짝 쿵짝 쿵짜작쿵짝 네박자 속에~"

 

송대관의 '네 박자'가 나옵니다. 외갓집에 갈 때마다 전국노래자랑이나 성인가요 채널에서 얼마나 많이 들었던지, 쿠하도 흥얼흥얼 핸드폰 소리에 맞춰 네 박자 쿵짝을 뽑아대곤 합니다.

 

이 때다 싶어 쿠하의 그림책 <쿵짝짝 소리 나는 그림 김환기>를 펼칩니다. 

책을 열면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네모가 보입니다. 앞으로 하게 될 흥겨운 놀이의 재료입니다. 다음 장부터 연습게임 없이 바로 본 게임입니다. 놀이의 시작은 색깔 이름 바꿔 부르기.

 

 

빨간색은 ‘쿵', 파란색은 '짝', 초록색은 '짜'로 바꿔서 부릅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쿵짝짜 쿵짝짜' 리듬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색의 차례를 바꾸고 겹치고 위치를 바꾸는 데에 따라 몸을 움직여가며 쿵짝짜를 충분히 연습해 둡니다. 제법 큰 소리로 쿵짝짜를 따라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김환기의 추상 작품 <봄의 소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무수히 많은 점들은 김환기의 대표적인 스타일입니다. 직접 보면 깨알처럼 작은 점들이 모여 이루는 하모니에 아릿한 슬픔 같은 것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림책으로 만나는 김환기의 점들은 즐겁기만 합니다. 어렵게 느껴지는 추상화를 쿵짝짜로 바꿔 부르는 경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미술관 가는 길을 신나게 도와줍니다.

 

 

이 책을 처음 읽어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신호 대기중인 차 안에서 갑자기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오른쪽에 쿵짝짜 있어~!!!"

 

고개를 돌려보니, 빵집 위층에 당구장 간판이 보입니다. 쿠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볼륨 21로 맞춰둔 윈디 시티의 '엘리뇨 프로디고'보다 더 큰 소리로 엄마가 웃으니 쿠하는 제가 엄마를 웃게 한 것에 신이 났는지, 한동안 차만 타면 간판에서 쿵짝짜를 찾느라 창에 코를 박고 관찰하곤 했습니다.

 

20년 넘게 김환기의 몽환적인 점들을 보아 왔지만, 그림 안에서 김환기와 송대관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보게 된 건 이 책을 만난 뒤부터 입니다. 우아한 미술관 나들이에서 입안 가득 뽕기 다분한 '네박자'를 흥얼거리곤 합니다.

 

스케치북을 '일기장'이라 부르며 날마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낙서화'의 대가 쿠하는 '샤방샤방'이나 '쓰러집니다'를 불러 어른들을 웃게 하지요. 빨강, 파랑, 초록, 노랑(노랑색은 '뿅'이라고 부릅니다)색 크레파스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합니다.

 

 

일요일입니다. 느즈막히 아점을 먹고 '일요일의 남자' 송해 오빠를 만난 뒤, 그림책 들고 미술관 나들이 한 번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이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4세 이상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쿠하같은 어린 아이와 부모님께 선물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쿵짝쿵짝 김환기의 그림들을 보고, 부암동 환기미술관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에 좋기 때문이지요.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아이들은 책을 할머니 할아버지께 읽어달라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글밥을 후다닥 읽어버리면 몸에 쿵짝짜 리듬을 채울 시간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아기들에게 색과 말을 리듬에 실어 알려주면 온 세상이 쿵짝짜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쿵짝짝 소리 나는 그림, 김환기

문승연 지음, 길벗어린이(2007)


태그:#김환기 , #그림 , #어른 , #그림책 , #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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