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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판진 안주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
 걸판진 안주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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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후 막걸리 한 잔이 어떤 맛이냐 물으신다면? 딱 이 한 마디면 된다. '캬~~! 쥐긴다 쥐겨!' 궤양으로 근 한 달 동안 술 한 모금도 못 마신 입인데 산행 후 막걸리 앞에서는 생선을 앞에 둔 고양이가 되어버린다. 그것도 걸판지게 차려진 안주가 산해진미인데 그냥 참기엔 짧은 혀가 그냥 놔두지 않는다.

몇몇 지인들과 일요일 늦은 오후 높지 않은 산을 올랐다. 땀도 흘렸으니 막걸리 한 잔 하자는 말에 안주나 축낼겸 삼천동 막걸리 골목을 찾았다. 이곳은 30여 곳의 막걸리집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함께 온 지인을 뚱뚱한 여주인이 아는 체를 한다. '오빠'라고 한 걸 보고 얼마나 오래됐느냐 물으니 3년 째 아는 사이란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술, 막걸리
 서민들이 즐겨 찾는 술, 막걸리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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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가득 담긴 노란 주전자 상 위에 놀려지고 안주가 펼쳐진다. 막걸리집의 감초인 꼬막과 부추전은 기본이고 뜨끈하게 갓 익혀 온 하얀 속살의 갑오징어에 붉은 문어, 막 겉절이 했다면서 주모의 손맛 가득 담긴 갓김치까지 여주인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거기에 '두 여인'의 주모(주인)의 입담까지 차려지니 안주의 성찬이요 말의 성찬이다.

"설사엔 막걸리가 딱이랑게. 요거 한 사발 쭈욱 들이키면 지대로 멈치버링게 후딱후딱 마셔뿌리쇼잉."
"아즈매, 참말이당가요. 요거 먹으면 진짜 멈춘당가요?"
"고걸 말이라고 한가요. 일단 마셔보랑게요. 안 멈추면 밑으로 털어버리면 되지 멀 걱정하구 그랴요. 젊은 양반이."

 문어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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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의 말에 모두는 털털 웃음을 날리고 설사병에 걸려 1주일 동안 고생한다는 친구는 에라 모르겠다는 하는 표정으로 한 사발 쭈욱 들이킨다. 설사병도 먹는데 궤양은 못 먹느냐는 은근한 타박에 나도 한 잔 들이키니 시큼 달큼한 맛이 목젖을 확 휘젓고 간다.

사실 막걸리는 애정의 술이다. 그리고 추억의 술이다. 나이 사십 이상 먹고 농촌이 고향인 사람들은 막걸리와 얽힌 추억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논에서 돌아오자마자 장딴지의 흙도 채 씻지 않은 채 젊은 아버지는 생채기 난 노란 주전자를 주면서 종종 막걸리를 받아오게 했다. 그러면 동생이나 나는 아장거리며 술을 받아오곤 했다.

그러나 술심부름은 그리 싫은 심부름이 아니었다. 시큼털털한 술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술집에서 집에 오면서 주변 눈치를 살피면서 훔쳐 먹는 막걸리, 그 맛은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다.

나도 빠질소냐. 안주 먹다 술은 못 마시겠네
 나도 빠질소냐. 안주 먹다 술은 못 마시겠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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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노동주(勞動酒)다. 들에 나가 모를 심거나 추수하다가 허리가 뻑적지근하고 배가 출출할 땐 농부들은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웠고, 막걸리로 아픈 허리를 추스렸다. 그래서 술에 대해 엄격히 통제했던 조선시대에도 백성들의 술인 막걸리는 금지시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막걸리가 서민들만 마신 술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도 막걸리를 마셨고, 성종도 종종 신하들에게 막걸리를 하사했다고 하니 임금이나 양반들도 막걸리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리는 서민들의 술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가난한 서민들은 막걸리를 찾는다. 특히 전주의 막걸리는 밥을 먹지 않아도 안주만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해서 막걸리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갑오징어도 술맛, 입맛을 돋운다
 갑오징어도 술맛,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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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영양은? 막걸리가 암을 예방시켜주고 손상된 간을 회복시켜준다고도 한다. 또한 갱년기 장애를 해소시켜주는데도 효과가 있고, 필수 아노미산과 비타민B, 유산균 등도 듬뿍 함유하고 있어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하니 '두 여인'의 여주인 말이 결코 허풍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허나 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화가 있는 법. 이 막걸리도 지나치게 마시면 탈이 나니 과음은 삼가야 한다. 탈뿐이 아니다. 과음하면 성희롱의 세계로 넘어가기도 한다. 하기사 요즘은 성희롱으로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람이 또 다른 이슈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고달픈 세상살이 막걸리 한 잔이라도 해야 시름이 풀리는 세상인 걸.


태그:#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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