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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 책임을 맡고 있는 아내는 뭐가 그리 바쁜지 요즘 노상 퇴근이 늦다. 그런데 웬 일이지? 지난 19일, 부엌에서 수선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반갑다.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서 '풀풀' 풍겨난다. 무시래기를 삶아 된장국을 끓이는 모양이다.

간장게장, 숙성이 잘 되었을까?

일주일 전에 담근 게장을 꺼냈다. 게딱지를 벌리는 순간 입에 침이 고였다.
▲ 간장게장. 일주일 전에 담근 게장을 꺼냈다. 게딱지를 벌리는 순간 입에 침이 고였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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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따다 나물도 무친다. 명란젓갈이 식탁에 놓인다. 말간 열무김치가 시큼하다. 거기다 시래기된장국까지. 죄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식욕을 돋운다.

아내가 밥을 푸다말고, 은근슬쩍 말을 꺼낸다.

"여보, 게장도 꺼내볼까?"
"간장게장? 담근 지 며칠 되었지?"
"한 일주일? 엊그제도 달여 부었는데…."

간은 제대로 배였을까? 비린내는 나지 않을까? 자기가 만든 음식이지만 맛에는 장담을 못하는 법. 아내가 간장게장이 담긴 통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는다. 간장게장을 처음 담아본지라 그 맛이 궁금한 표정이다.

우선 나부터 숟가락으로 간장을 찍어 맛을 보란다. 내 얼굴을 살피며 묻는다.

"어때요? 잘 숙성되었어요? 저녁에 먹어도 될 것 같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도 맛을 본다. 게 맛은 어떨까? 아내가 간장이 적셔진 통에서 통통한 놈으로 낚시를 하듯 건져 올린다. 게딱지를 분리하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여보, 뱃속에 알이 꽉 차있어!"
"그래? 아냐! 그거 수게인데 무슨 알이 차!"
"이거가 수게라고? 그럼 노란 부분은 뭐야? 암게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걸 '노란장'이라고 하는 거야. 겨울을 나기 위한 영양저장고지."
"그래서 가을 게는 살이 꽉 찬다는 말이 있구나!"

속살과 함께 노란장이 꽉 차있다. 맛깔스럽다는 게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봄엔 암게가, 가을엔 수게가...

일주일 전(12일)이다. 아내는 간장게장 담그기에 도전하였다. 꽃게무침은 수차례 담가먹었지만 게장은 처음이었다. 간장게장을 잘한다는 음식점을 함께 찾았는데 맛이 괜찮았다. 우리도 집에서 담가보기로 한 것이다.

가을에 포구에 나가면 속이 꽉찬 꽃게를 구할 수 있다.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 살아 있는 꽃게. 가을에 포구에 나가면 속이 꽉찬 꽃게를 구할 수 있다.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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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선수포구(강화도 후포항)로 꽃게를 사러갔다. 선수포구는 우리 동네에서 아주 가깝다. 싱싱한 생선이 먹고 싶을 때 자주 찾는 곳이다.

포구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비릿한 갯내음이 코를 찔렀다. 가게에는 파닥거리는 생선들이 싱싱했다.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손놀림과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포구에 오면 풋풋한 삶의 현장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물때가 맞았는지 물량도 넘쳐났다. 가게마다 팔딱팔딱 살아있는 꽃게가 눈길을 끌었다.

여러 가게를 한 바퀴를 둘러보고 난 뒤, 아내가 한 생선가게 아줌마와 흥정을 벌었다.

"아줌마, 꽃게 1kg에 얼마예요?"
"근 잘 쳐 줄 테니까 1만5000원만 내세요."
"근을 어떻게 쳐주는데요. 그리고 우리 암게가 좋은데!"
"아줌마 뭘 모르시는구먼! 봄엔 암게 가을엔 수게라는 말도 몰라요. 지금은 도나캐나('무엇이나'란 뜻) 살이 꽉 찼어요."

가슴 쪽의 딱지를 보고 암게와 수게를 구별한다. 가늘고 뾰족한 것이 수게, 넓고 둥근 것이 암게이다. 가을에는 수게도 암게 못지않게 살이 많다고 한다.
▲ 우리가 산 꽃게이다. 가슴 쪽의 딱지를 보고 암게와 수게를 구별한다. 가늘고 뾰족한 것이 수게, 넓고 둥근 것이 암게이다. 가을에는 수게도 암게 못지않게 살이 많다고 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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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는 산란을 앞둔 봄에는 암게가 제 맛이고, 가을에는 살이 통통히 오른 수게도 좋다고 한다. 아내는 아무소리 하지 않고서 아주머니가 골라주는 대로 2kg를 샀다. 덤으로 한 마리를 더 얻었다.

간장게장 담그는 데 비법이 있을까?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음식을 만들 때 좀처럼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지 않던 사람이 게장 담그기는 자신이 없나? 친정어머니 손맛을 지킨다며 자기 나름의 방식을 고집하는 아내가 별일이었다.

"당신, 예전 게장은 담가먹지 않았었나?"
"뻘떡게라는 것을 주로 쪄먹었지, 간장에 담가 먹지는 않았어요."
"어! 당신도 뻘떡게라는 거 알아?"
"왜 몰라요! 내가 클 때 고향에서는 뻘떡게라는 것을 사먹었죠."

뻘떡게!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퍼덕거리는 것이 사나워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해보니 꽃게보다는 좀 작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짙은 밤색이었던 같다. 장날 부모님이 넉넉히 사와 가마솥에 쪄서 식구들과 함께 먹었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살이 없는 부분의 다리는 잘라낸다.
▲ 꽃게 손질.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살이 없는 부분의 다리는 잘라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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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인터넷 검색을 한 아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간장게장에선 어떤 손맛이 날까? 아내가 발휘하는 솜씨를 기대하며 요리과정을 지켜봤다.

우선 꽃게부터 손질한다. 아직도 살아있는 게들이 발버둥을 친다. 흐르는 물에 솔질을 하고, 살이 들어있지 않은 발을 가위로 자른다. 손질한 게를 김치냉장고용 통에 등을 아래로 하여 차곡차곡 쟁여둔다.

통에 깨끗이 손질한 꽃게를 등이 아래로 하여 차곡차곡 쌓는다.
▲ 게장 담그기. 통에 깨끗이 손질한 꽃게를 등이 아래로 하여 차곡차곡 쌓는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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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에 적당히 물을 부은 후, 양파, 풋초추, 홍고추, 다시마를 넣는다. 마늘과 생강은 보자기에 싸서 넣고, 여기에 소주를 부으면 좋다.
▲ 게장 담그기. 간장에 적당히 물을 부은 후, 양파, 풋초추, 홍고추, 다시마를 넣는다. 마늘과 생강은 보자기에 싸서 넣고, 여기에 소주를 부으면 좋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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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양조간장에 적당량의 물을 붓고, 여기에 함께 넣을 재료를 챙긴다. 마늘, 생강은 보자기에 싸서 넣는다. 다시마를 찾는다. 다시마는 감칠맛을 더해줄 거라고 한다. 옆집에서 농사지어 보내준 작은 양파도 몇 개 까서 넣는다. 작은 알갱이가 들어가니 모양이 살아난다.

요모조모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텃밭에서 홍고추와 풋고추를 따오라 한다. 고추가 들어가면 칼칼한 맛이 날 거라고 한다.

다 완성이 되었다 했는데 아내가 또 나를 부른다.

"집에 소주 없을까? 청주를 부으면 좋을 텐데…."
"이 사람, 간장게장을 술맛으로 먹나?"
"두 번이나 달여 부을 건데, 술맛이 왜 나요?"

소주를 간장에 붓는다? 그럴듯했다. 마침 먹다 남은 소주가 냉장고에 있었다. 간장이 짜지 않고, 게장 맛이 깔끔해질 것 같다.

두어 차례 간장을 따라내고 끓인 뒤 식혀 붓는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 간장게장. 두어 차례 간장을 따라내고 끓인 뒤 식혀 붓는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신선하게 먹을 수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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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담근 게장을 하루 동안 김치냉장고에 보관을 한 뒤, 간장만 쪽 따라내어 달이고, 장이 식은 후 다시 게장 통에 부었다. 그리고 사나흘이 지나 또 한 차례 반복했다.

간장게장이 '밥도둑'?

그러고 보니 참 행복한 밥상이다. 아내가 게딱지에서 살을 발라낸다. 게딱지에 뜨거운 밥 두어 숟가락 얹어 비벼 내게 건넨다. 정말 맛이 있다. 깔끔하고 감칠맛이 난다. 간장이 짜지도 않고 적당하다. 간장게장이 '밥도둑'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금세 밥 한 공기가 뚝딱 비어진다.

게딱지에 밥을 넣어 비벼 먹으면 그 맛이 독특하다.
▲ 간장게장. 게딱지에 밥을 넣어 비벼 먹으면 그 맛이 독특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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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부드러운 속살에 간장을 조금 끼얹어 '와자작' 맛나게 먹는다. 입 안이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여보, 게장 맛도 집에서 얼마든지 낼 수 있네요! 날 추워지기 전에 또 담가먹읍시다. 내년 봄에는 알배기 암게로 기막힌 맛을 내봐야지! 게장 담그는 거 별거 아니네!"


태그:#간장게장,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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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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