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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일정이 종반으로 돌입했다. 아직 종합국감 일정이 남아있지만, 현재까지의 중평은 '맥빠진 국감'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국감특종도 예년만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원인 진단은 다양하다. 여야가 바뀌어 '공수 전환'이 이뤄지다 보니 의원들이 적응이 덜됐다고 하기도 하고, 거대여당에 기댄 행정부의 국정감사 자료 제공 부실 등이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18대 국회 첫 국감이다보니 의원 개개인의 실력부족을 꼽기도 한다. 사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엉뚱한 증인을 불러놓는다는 것. 또, 피감기관이 의도적으로 불성실 답변을 하거나 지나친 애드리브로 일관해 국정감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올해 국정감사에도 황당한 질문과 엉뚱한 답변으로 국감현장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① 결국 모든 선거자금은 은행에서 나왔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그동안 자신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되면 '뭐가 문제냐'는 취지로 해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7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장에서는 학원장 등 직무관련자들에게 빌린 돈으로 선거를 치른 것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매서운 질의가 이어졌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 "(선거자금 환급 기준인) 15% 이상 득표할 줄 다 알았을 것이다. 또 제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금융권에 종사하고 은행에서 얼마든지 빌릴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교육감 선거에 나서면서 학원을 경영하는 사람한테 돈을 빌렸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그 분들도 결국 은행에서 빌려서 나에게 준 것이다."

 

개그맨 뺨치는 애드리브 실력을 구사한 공 교육감의 이 발언은 황당 답변으로서 단연 1위로 꼽을 만하다. 공 교육감은 말 한마디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발언이 의원들에게는 국정감사장을 우습게 보는 답변으로 들린 모양이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야3당 의원 7명은 공 교육감의 사퇴와 검찰수사 및 서울시교육청 추가 국정감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② 참고인에게 질문하고선 "말하지 말라" 윽박

 

지난 13일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촛불집회에 참가한 '유모차 부대'에 대한 과잉 수사가 논란이 됐다. 그런데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이 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보다는 참고인으로 나온 유모차부대 카페 운영자 정혜원씨에게 질의를 집중했다.

 

준비한 촛불집회 관련 영상과 사진을 상영한 장 의원은 유모차 부대 카페 회원들이 도로에서 불법집회를 한 것 아니냐고 강하게 추궁했다.

 

정혜원씨 "지금 보여준 장면은 남대문경찰서장이 허락해서 진행했던 단 하루의 모습이다, 그렇게 증거자료가 없어서 저것 하나만으로 우리를 매도하려 하느냐."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 "말하지 말라! 묻는 말에만 답하라."

 

참고인에게 윽박지르고 호통을 친 장 의원에게는 누리꾼들의 '호통'이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동영상 등을 인터넷으로 퍼나르면서 장 의원의 행태를 비판했다. 19일 현재 장 의원 홈페이지는 정상 접속이 되지 않고 '이용자 폭주로 인하여 현재 홈페이지는 접속이 되지 않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만 뜨고 있다.

 

 

③ 증인 불러놓고 보니 업무소관이 아니네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 "부패척결TF는 외압없이 국정원 자체 판단에 따라서 설치한 건가? 네, 아니오로만 답해달라."

김만복 전 국정원장 "내 업무 소관 사항이 아니었다."

유 의원 "업무소관 사항이 너무 없으시다."

김 전 원장 "그렇다."

 

위의 질의응답 내용은 지난 7일 행정안전위원회가 행안부를 대상으로 연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과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질의응답 일부이다. 얼핏 보면 김 전 원장이 매우 불성실한 답변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정을 알고보면 그게 아니다.

 

이날 유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정원에 설치된 '부패척결태스크포스(TF)'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부터 뒷조사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김 전 원장에게 집중질의했다.

 

그러나 지난 2005년부터 활동해 온 국정원 부패척결TF는 국내담당 2차장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당시 해외담당 1차장이었던 김 전 원장은 답변할 의무가 없었던 것. 증인을 잘못 불러다 놓으니 다음과 같은 웃지 못할 질의도 이어졌다.

 

이범래 한나라당 의원 "부패척결TF는 국정원 2차장 책임 하에 만들어졌는데, 증인은 1차장 아니었나."

김 전 원장 "그렇다."

 

④ YTN 사태, 악수 한번으로 해결될까

 

지난 9일 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서는 '낙하산 사장 반대 출근저지 투쟁'과 대량 해고 및 징계로 맞서고 있는 YTN 노조의 노종면 위원장과 구본홍 사장이 출석, 증인석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여야 의원들은 노 위원장와 구 사장에게 번갈아가면서 질의하면서 여당 의원은 여당 의원대로, 야당 의원들은 야당 의원대로 질의를 통해 사측을 비판하거나 노조의 항복을 요구하했다. 밤까지 지속된 감사에 노 위원장과 구 사장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런데 이 지리함 속에서 예기치 못한 장면을 연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 "YTN을 보면서 정치를 많이 배우는 나는 이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자 두 분, 일어나서 악수하라."

(장내 잠시 침묵)

구본홍 YTN 사장 (슬며시 일어난다)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앉은 채로)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부하겠다."

 

이 의원의 질의는 여기서 마무리됐다.

 

 

⑤ 멜라민 137ppm... 이게 그램이야, 밀리그램이야?

 

'미사랑 카스타드'의 멜라민 농도가 137ppm으로 나타난 가운데 지난 6일 보건복지가족부 국정감사에서는 '체중이 60㎏ 성인의 경우 매일 40개를 평생 먹어야 유해하다'는 보건복지가족부의 홍보에 대해 따가운 질타가 이어졌다.

 

ppm은 '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농도 단위로, 1ℓ 혹은 1㎏당 몇 ㎎이 함유돼 있는가를 나타낸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 "FDA 기준하고 다르다. 도대체 ppm 계산을 어떻게 한 것이냐"

보건복지부 실무자  "ppm은 1ℓ당 몇 g이 들어있는지를…"

안홍준 한나라당 의원 "지금 실무자가 g이라고 했는데, 똑바로 대답해야 된다. ppm은 퍼 밀리온(per million) 이다, 백만분의 1㎎이다"

보건복지부 실무자 "맞다. ppm은 ㎎이다. 그렇지만 백 의원님 계산 방법은…."

 

이후 약 20여분간 이 ppm을 두고 의원들과 보건복지부 실무자의 논쟁이 오갔다. 백 의원이 함량과 농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추궁을 이어가니 보건복지부 실무진의 설명이 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상황을 정리한 것은 역시 전문인이었다. 대한약사회장 출신 원희목 의원은 ㎎과 ppm의 뜻을 정확히 설명하고 함량과 농도를 단순 상호 계산하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논란을 정리했다

 

우리 부 소관인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네~

 

국정감사 현장은 아니지만, 일반 상임위 회의에서도 장관을 불러다 질의를 하는 과정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지난 9월 29일에 열린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회의에서도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연 멜라민 파동. 최규성 민주당 의원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대두단백에 대해 농식품부가 멜라민 검사를 했는지에 대해 질의했다.

 

최규성 민주당 의원 "두부 원료로 쓰이는 대두단백. 농식품부 관할이 맞나? 조사해 봤나? 수입량이 있나?"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 "두부가 아닌 대두단백이면 대상이 되는데,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 중에 우려가 있겠다 싶은 것은 다 조사하고 있다."

최 의원 "그동안은 안 해왔죠? 이제 문제가 되니까…."

장 장관 "다행히 그동안은 수입된 실적이 없었다."

최 의원 "전혀 수입된 것이 없었나?"

(장 장관이 이 때 뒤를 돌아보자 농식품부 간부가 와서 귀띔한다.)

장 장관 "제가 잘못 말씀드렸다. 대두 단백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

최 의원 "에?"

 

대두단백은 식품의약품안전청 소관이라는 것이 장 장관의 설명. 그러나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한 장 장관과 대두단백에 대해 질의를 준비한 최 의원을 한 순간에 무안하게 만든 황당 답변이기도 하다.

 

이날 감사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농식품부와 식약청 간 소관 구분이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소관을 일원화해 효율적이고 책임성 있는 식품안전관리 체계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

 


태그:#국정감사, #황당 질문, #애드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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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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