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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 옛 건물 잔해
 포로수용소 옛 건물 잔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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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곳부터 들렀다 갑시다. 형한테는 밭일보다 이런 곳이 더 흥미로울 테니까.”

운전대를 잡은 동생이 형을 배려하여 섬에 들어서 맨 먼저 찾은 곳이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었습니다. 공원은 뒤쪽 산자락을 감아 돌며 지나는 도로 공사장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7일부터 네 살 아래인 바로 아랫동생이 농사짓는 현장을 보고 싶어 4박5일 동안 거제도에 머물다 왔습니다. 동생은 3년 전에 이곳 거제도에서 농사지을 땅을 구입하여 매실나무를 기르며 밭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1만 5천여평의 대지에 당시의 수용소 모습을 일부 축소하여 재현에 놓은 곳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역사교육장이라는 설명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전쟁 중의 포로수용소에는 지금의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거제시 일원 360여만 평의 광활한 지역에 북한군 포로 15만, 중공군 포로 2만, 여자와 의용군 3천여명 등 총 17만 3천여 명이 수용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거제도에는 주민 1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피난민 17만여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고 하니 포로들의 숫자가 거의 주민 숫자에 육박했던 것입니다.

포로들이 개울 작은 웅덩이에서 목욕하는 모습
 포로들이 개울 작은 웅덩이에서 목욕하는 모습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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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라마관 내부 포로수용소 풍경
 디오라마관 내부 포로수용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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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위로 올라가자 특이한 모양의 분수대가 눈길을 끕니다. 하늘을 향한 소총에 대검이 꽂혀 있는 주변에서 뿜어져 올리는 분수는 절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섬뜩한 느낌의 분수대 모습만으로도 이곳이 그 처절했던 포로수용소 자리였다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시장은 ‘탱크전시관’이었습니다. 이름처럼 탱크를 전시한 곳이 아니라 겉모양이 탱크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았습니다. 안에는 중간에 위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양편에는 당시 전쟁을 이끌었던 양쪽 진영의 지도자들의 모형이 세워져 있었지요. 이승만과 김일성, 맥아더와 팽덕회 같은 사람들 말입니다.

특별한 볼거리가 아니었지요. 오히려 다음 전시장이 볼 만 했습니다. 포로수용소 안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으로 이름은 디오라마(Diorama of pow camp)관이었습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자 왼편에 굉장히 넓어 보이는 모형전시관이 나타났습니다.

“저거 봐? 벌거벗고 목욕하는 사람들. 저 사람들이 인민군 포로들이야?“
“응, 그래 맞아. 개울물에 목욕하는 모습인가 봐. 그리고 저쪽 좀 봐. 이발하는 곳도 있고 개밥처럼 밥 퍼주는 곳도 있네, 우헤헤헤”

우리들 앞에서 걸어가며 구경하던 어린이들 서너 명이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아직 나이 어린 어린이들의 눈에는 특이한 풍경이 그저 우습고 신기하기만 한 모양이었습니다.

야외생활관의 똥 누는 포로 모습
 야외생활관의 똥 누는 포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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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속에서 전쟁하는 모습
 동굴속에서 전쟁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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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넓은 골짜기를 가득 메운 포로수용소 내의 생생한 생활상과 작업하는 모습, 그리고 경비하는 미군의 모습과 폭동을 일으킨 포로들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포로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워놓은 망루도 살벌한 모습이었지요.

골짜기에는 포로들이 생활하는 수많은 천막들이 세워져 있고 앞에서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서있는 미군의 모습도 보입니다. 미군은 허리에 찬 물통이며 카빈총을 어깨에 메고 철모를 쓴 모습이 당시의 복장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습니다.

넓은 마당에선 포로들이 의자에 앉아 이발하는 모습도 보이고, 길게 이어진 줄은 음식을 받으려고 늘어선 모습이었습니다. 드럼통에서 음식을 퍼내어 포로들에게 배식하는 모습은 1960년대 군대생활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웃음을 자아낸 개울물에서 벌거벗고 목욕하는 모습도 재현되어 있었지요. 끝 쪽에는 포로들이 폭동을 일으킨 모습이 있었습니다. ‘미 제국주의 침략자를 쳐 죽이자’는 펼침 막 앞에서 칼과 몽둥이를 치켜들고 절규하는 포로들의 모습이 섬뜩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철모 모양의 포로 사상 대립관
 철모 모양의 포로 사상 대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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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안의 포로들
 철조망 안의 포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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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라마관을 벗어나는 지점에선 폭동을 일으킨 포로들의 모습과 함께 때려 부수고 아우성치며 절규하는 소리가 정말 무슨 폭동이라도 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테마별 전시관은 탱크전시관과 디오라마관 외에도 포로생포관, 포로설득관, 6.25 역사관, 포로생활관, 포로폭동체험관, 포로수용소 유적관, 무기전시장 등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포로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폭동까지 일으켰을까?”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었나봐? 수용소장인 미군 장군까지 납치했다는 걸 보면.”

멀리 경기도에서 이곳까지 관광을 왔다는 50~60대 남성들 몇이 주고받는 말이었습니다. 그들도 나이든 중년들이지만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당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막연한 추측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건 미군당국이 제네바협정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폭동이라고 하더구만.”
“아니라? 내가 알기론 빨갱이들이 포로수용소에서도 조직적으로 반공포로들을 죽이고 경비병들까지 죽였다고 하던데, 참, 무서운 놈들이라”

포로생포관
 포로생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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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전시장의 8인치 야포
 무기전시장의 8인치 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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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나서자 다른 일행이 끼어들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입니다. 미군이 제네바 협정을 어기고 포로들을 학대한 것도 사실이고. 이 안에서도 공산당이 아주 조직적으로 수용소 당국과 대결한 것도 사실이고요. 반공포로와 공산포로들 간에 서로 죽고 죽인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고 합니다. 6.25 한국전쟁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요. 참혹하고 안타까운 비극의 현장이었지요.”

그는 60대 후반이나 70세 전후로 보이는 노신사였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6.25를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는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곧 침착하게 웃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십여 년 살았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북진통일을 외치며 휴전회담 반대를 외치던 어른들의 모습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지요. 모두 자유당 정부에서 동원한 관제 데모였지만. 그때는 참 고생스러웠지요. 이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곳은 그 비극적인 전쟁역사의 작은 현장 아니겠습니까?”

그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들 일행은 이날 이곳을 거쳐 외도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바쁜 모습이었지요. 그는 내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다른 일행들과 함께 총총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곳에는 야외생활관과 무기전시장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무기전시장에는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탱크와 장갑차, 헬기와 야포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무기전시장 옆 언덕에는 당시의 건물 잔해들과 집터가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수용소 철조망 앞에서 붉게 익은 작은 열매들
 수용소 철조망 앞에서 붉게 익은 작은 열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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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람들 지금은 아마 거의 모두 죽었겠지? 참 불쌍한 사람들이었어. 일제에 시달리며 배곯고 살아온 사람들이었을 텐데, 전쟁으로 또 참혹하게 살다간 사람들이니 말이야?”

“참, 그놈의 이념이라는 게 뭔지. 하긴 지금도 무슨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이념을 들먹이는 세상이긴 하지만”

나를 안내하며 걷던 동생이 독백처럼 하는 말이었습니다. 6.25 한국 전쟁으로 생긴 또 하나의 비극의 현장. 거제도 포로수용소 마당에도 가을 오후의 햇살은 따사로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포로수용소, #거제도, #이승철, #유작공원, #디오라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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