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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희(27)씨는 디자인일을 포기하고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은 윤희씨에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임윤희(27)씨는 디자인일을 포기하고 아나운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은 윤희씨에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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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밤 11시]

얼마 전까지 임윤희(27)씨는 디자인업체에서 일을 하는 젊은 디자이너였다. 그런데 몇 달전, 임씨는 4년 동안이나 계속해 오던 디자인 일을 그만두었다. 바로 자신의 오랜 꿈인 라디오 아나운서 준비를 위해서다. 2008년 10월, 그녀는 꿈을 향해 착실히 준비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가족들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고 친구들의 응원이 있어 힘을 내고 있다.

"너, 그만두면 어떻하려고?"

어떻게 보면 라디오 아나운서란 꿈, 임씨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단 하나, 임씨가 휠체어 탄 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임씨는 용기를 냈다. 세상의 편견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꿈을 향한 전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 세상의 편견에 맞선다는 것

"한살 때였나, 간단히 치료를 받을 일이 있었어요. 배에 물혹이 있어 제거하는 수술을 하다가 신경을 건드려서 그때 마비가 왔나 봐요. 장애는 그렇게 시작된 거죠."

원하지 않게 찾아온 불행, 장애란 고통은 한 명의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일이다. 장애인이라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 편견을 이기지 못한 채 세상의 그늘로 숨어 버리곤 한다. 하지만 임씨는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왔다. 꿈을 위해서다.

철도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임윤희(27)씨.
 철도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임윤희(27)씨.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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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매주 수·토요일 아침이면 임윤희씨는 휠체어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다.

전동 휠체어도 아닌 일반 휠체어를 타고, 그것도 자기 혼자서 서울의 목적지까지 가는 임씨의 행동. 어떻게 보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임씨는 묵묵히 그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철을 이용하고, 대전역에 도착해서 장애인좌석 표를 예매하는 임씨의  행동들은 하나 같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단 하나, 물끄러미 쳐다보는 주변의 시선만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임씨는 이런 시선들에 대해서 이제는 익숙해 괜찮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런 시선들이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다.

"특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 일반학교로 진학을 했어요. 그때는 어리다 보니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불편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죠. 고등학교 때도 안 받아준다는 학교가 있었지만, 다행히 신경써준 한 고등학교가 있어서 입학을 할 수 있었죠."

그래도 학창 시절의 기억은 임씨에게 즐거운 일로 남아있다. 자신을 한 명의 일원으로 받아준 학교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살 때, 처음 발을 디딘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모든 상황이 항상 임씨를 이해해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가다 보면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아이고 불쌍해서 어떻게 해'라고 말을 하세요. 그러면서 가족관계·나이 등을 물어보시고요(웃음). 처음에는 이런 말들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신경써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법을 임씨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2] 절망의 공간, 지하철 신도림역

그런데 그런 임씨가 지하철 당산역 근방에 위치한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지하철 신도림역이다. 하지만 신도림역은 임씨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두려워 하는 곳이다. 낙후된 장애인 리프트 시설, 직원들의 불친절 때문이다.

복잡하기로 유명한 신도림역은 장애인들도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다른 지하철역에 흔한 엘리베이터가 신도림역에는 없다. 그렇기에 임씨는 장애인 리프트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신도림역의 장애인 리프트는 정작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꺼려하는 기구이다.

"신도림역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많은 장애인들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장애인 리프트를 타지 않아도 될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단지 꿈일 뿐이죠. 신도림역의 리프트가 낙후되서인지 너무 느리게 가고 또 이상한 소리가 나서 신경이 많이 쓰여요."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하철 역 안에서 이상한 멜로디(?)가 나오는 장애인 리프트를 타고 느릿느릿 이동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으로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10분 정도 소요되는 리프트 이동 시간은 임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에게는 1시간보다도 더 길게 느껴지는 '불편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비단 부족한 장애인 시설만이 문제는 아니다. 직원들의 불친절은 임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의 마음을 멍들게 한다. 필자가 불친절이라는 단정적 용어를 쓴 것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만약 그 단어가 방만과 무시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불친절'이란 용어 사용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8일 오후 신도림역에서는 그 불친절의 예를 필자의 눈으로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임씨와 함께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하고자 직원에게 안내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들려온 말은 뜻밖에 퉁명스런 대답이었다.

"왜 벨을 누르셨죠?"
"혼자 갈 수 있지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장애인 혼자 리프트를 사용해 이동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칠 수 있고, 낙후된 리프트가 고장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간간이 보도되는 장애인 리프트 사망, 부상 소식은 바로 그 위험성을 증명한다. 그런데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의 요청에 혼자 갈 수 있겠냐는 직원의 물음.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임씨가 머뭇거리자 결국 몇 분이 지난후에 한 직원이 나왔다. 하지만 이내 다른 공익 요원에게 자리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자리를 지킨 공익 요원조차 임씨에게 어떤 말도 건네지 않은 채 한손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리프트 기계를 조작했다. 또 다른 공익 요원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앞서 걸었다. 임씨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친절한 직원 분들도 많이 계세요. 하지만 어쩌다 불친절한 분들을 만나게 되면 마음의 상처가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3] 장애인 미디어 센터 '바투'

▲ 장애인 미디어 센터 '바투'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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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목적지는 임씨의 마음을 한껏 즐겁게 한다. 라디오 아나운서 꿈을 가진 임씨가 도착한 곳은 장애인 미디어센터 바투(http://www.batu.or.kr/).

바투는 한국 장애인단체총연맹과 복지 TV가 장애인의 미디어 권익 실현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여기서 임씨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임씨는 아나운서 수업을 듣는 것과 함께 인터넷 방송 리포팅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직접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녹화하고 내보내면서 임씨를 비롯한, 방송에 꿈을 가진 장애인들의 자신감은 커지고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정말 일반인들에게도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라디오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을 테니까요."

그 꿈을 위해서 4년 동안 일했던 디자인 일을 그만둔 임씨. 현실 여건상 대학에 못 가고 배웠던 디자인일을 그만 두는 것은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었다. 월급도 못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꿈에 계속 도전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씨는 얼마 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몇백만원이란 큰 상금을 얻었고 다행히 그 꿈의 자금(?)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그렇기에 임씨에게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때보다 기쁜 순간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희망을 갖고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회 환경 속에서 그나마 장애인에 관한 투자가 있다는 사실은, 어렵게나마 꿈을 배우고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임씨에게는 분명 희소식이다. 

[#4] 좀더 장애인에게 편한 사회를 기대한다

바투에서 방송 녹화중인 임윤희(27)
 바투에서 방송 녹화중인 임윤희(27)
ⓒ 곽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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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일주일에 두번씩 이런 어려운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휠체어를 타고 대전-서울까지 왕복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한번의 동행 취재를 통해 그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취재의 끝에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사회는 임씨와 같은 장애인들의 희망을 온전히 받을 여건이 되어 있을까?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동행하면서 본 현장, 지하철 신도림역 역 같이 낙후된 시설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장애인들의 꿈을 막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비단 시설의 낙후문제 뿐만이 아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도 큰 문제였다.

"언젠가 한 번 외국에 간 적이 있는데 장애인들을 편안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놀랐던 적이 있어요. 물론 시설도 좋았구요. 얼른 우리 사회도 그렇게 변화되었으면 좋겠어요."

변화를 바라는 임씨의 간절한 소망.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에 변화의 조짐은 있다. 가령 새롭게 지어진 대전 지하철과 장애인들에 대해 친절서비스를 시행하는 철도는 장애인들이 마음껏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또한 미디어센터 바투와 같은 공간의 창출은 장애인들이 현실에 주눅들지 않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 사회의 변화 덕분에 임씨는 어렵게나마 혼자서 대전-서울의 어려운 여정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바투에서 직접 방송에도 참여하고, 녹화체험도 하면서 장애인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다시 한번 똑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 사회는 임씨와 같은 장애인들의 희망을 온전히 받아줄 여건이 되어 있을까? 문득 희망을 가져본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조금의, 조금씩의 노력이 깃들어 우리 사회가 좀 더 장애인에게 편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임씨의 꿈이 단지 꿈이 아니라 당연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즐거운 사회이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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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임윤희, #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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