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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 났다."

 

8일 오후 3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만난 유종일(50) 교수는 기자를 만나자 이같이 첫 마디를 꺼냈다. 그는 "원·달러 환율이 주가를 넘어섰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혀를 찼다.

 

이날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통제 불능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6.9원 급등한 1395원으로 마감됐다. 1998년 9월 23일(1402원) 이후 10년 만의 최고치다. 오름 폭도 놀랍다. 지난 4거래일 동안 무려 208원이 올랐다.

 

주가는 속절없이 폭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79.41포인트(5.81%) 떨어진 1286.69포인트로 장을 마감했다. 2006년 7월 이후 최저치다. 코스닥 지수는 무려 30.48포인트(7.58%)가 빠진 371.47포인트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가 5일간 13% 폭락했고, 유럽 증시는 20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졌다. 8일 일본 니케이 지수는 역대 세 번째인 9.38% 하락해 지수 1만선이 깨지는 등 아시아 증시가 폭락했다.

 

"IMF 못지않은 고난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유 교수는 "전 세계적 금융시장 공포가 전 세계적인 동반침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선 최악의 신용경색이 벌어지고 있고, 기업들이 연쇄 도산 가능성이 높다, 유럽·일본·중국도 어렵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사태"라고 말했다. 심리적인 패닉 때문에 뱅크런(Bank run·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의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미국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놓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교수는 "한국 역시 심각한 상황"이라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환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며칠 동안 몇 백원 뛰었는데, 이 속도는 11년 전 가을(1997년 외환위기 당시)과 똑같다"고 밝혔다.

 

"강만수 경제팀으로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고 유 교수는 강조했다. "최대한 외환보유고를 지키고, 조용히 유동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했는데, 폼만 잡다가 시장에 밀렸다"며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실물 경제를 진단하며 "IMF 때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계부채가 IMF 때보다 3배 이상 많다, 소득이 줄어들고 이자까지 올라가고 있다"며 "IMF 때 못지않은 고난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유 교수는 마지막으로 "경기 침체로 서민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을 텐데, 정부는 특권층을 위한 감세정책을 펴고 있다"며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국회 역시 국감에서 패거리 싸움만 하는 등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유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사태... 전 세계적 실물경제 침체 불가피"

 

- 글로벌 금융위기의 현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가?

"생각했던 것보다 문제가 커지고 있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전세계 금융기관 손실액이 1조 달러(8일 환율 기준 1395조원)라는 예상이 나오다가 현재 7조달러(9765조원)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위험은 불확실성이다. 금융당국도, 상품을 디자인했던 투자은행도 그 위험의 정도를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 은행이 은행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심리적인 패닉 때문에 뱅크런이 생길 수 있다. 정상적인 은행도 못 버틴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도, 기업에 안 간다. 미국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직접 공급하겠다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놓았다. 아직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하긴 이르지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사태다."

 

- 유럽도 어렵다.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무제한 지급보증을 한다는 황당한 상황까지 나올 정도로 유럽도 어렵다. 유럽의 금융시스템은 미국과 많이 다르고, 부동산 버블도 크지 않았다. 그러한 유럽이 어려운 걸 보니, 금융세계화라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미 세계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 공포→ 투자자산 투매현상→ 신용경색→ 세계 실물경제 타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수출이 안 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동반 침체가 불가피하다.

 

미국에선 상업은행까지 불안하니, 최악의 신용경색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연쇄 도산 가능성이 있다. 가계로서도 고용이 나빠지고, 집값이 떨어지고, 이자 부담이 늘어났다. 물가는 올랐다. 과거 우리나라처럼 신용카드 막 긁고 돌려막는 게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거다."

 

- 이번 금융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나?

"현재 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했지만, 우량 주택담보대출 역시 부실이 늘어나고 있다. 집값이 하락하면 부실이 점점 더 많아질 수 있다. 우선 미국 부동산 거품이 정리돼야 한다.

 

이후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하고 부실을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시장에 맡겨 버리면 대공황에 버금가는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하는 이유가 그러한 것이다."

 

근거 없는 낙관론과 환율 폭등... "1997년 외환위기 재판"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외화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강만수 경제팀은 시장 참가자들이 들었을 때 어이없을 정도의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쳐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린 적이 많다. 최근 외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에 외화자산 팔라는 소리를 했고,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아시아 통화기금(AMF) 800억달러 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급하다는 것 아닌가.

 

'외화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말도 그렇다. 8일 원·달러 환율이 1395원이다. 며칠 동안 몇 백원이 뛰었는데, '외화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환율이 오르는 속도가 11년 전 가을과 똑같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재판이다."

 

-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나?

"9월 위기설 나왔을 때 정신 차렸어야 했다. 조급하게 외환 보유고를 풀지 말고, 최대한 외환 보유고를 지켜야 했다. 또한 외화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 이걸 조용하게 해야 하는데, 떠들어서 우리에게 외화가 없다는 걸 소문낸 셈이 됐다.

 

그때 큰소리 뻥뻥 치면서 외평채 발행한다고 해놓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너무 잘못된 거였다. 그리고 비상계획을 세워라. 폼만 잡으니 시장에 밀리는 거다. 칼을 뽑지 말고, 잔 싸움 말고 큰 싸움 준비해서 투기세력 박살내야 한다. 정말 외화가 충분하다면 지금이 비장한 각오로 나설 때다."

 

- 그러한 정책도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불안감을 부추기지 말라"고 말했고, 여당에선 "달러 모으기 운동"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신뢰 받는 당국의 얘기라면 좋은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수급 문제 없다고 '뻥'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다. 강만수 경제팀을 가지고 이 엄청난 파고를 헤쳐나가기엔 너무 어렵다. 대통령의 발언 역시 부적절한 게 많았다. '펀드 가입한다'고 했는데, 대통령 믿고 했다가 손해 본 사람한테 무슨 책임을 질 건가."

 

"IMF 못지 않은 고난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 현재 우리나라 실물 경제의 위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위기의 초기 단계다. 앞으로 점점 안 좋아질 거다. IMF 때를 생각하면 된다. 금리 자꾸 올라가고, 시장에서 자금이 말라가는 상황이 온다. 내수가 죽을 대로 죽은 상황에서 수출도 안 좋다.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고용이 축소되면, 그 부담이 가계로 다 온다."

 

- 가계 대출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가계 부채가 엄청나게 많다. IMF 때보다 3배 이상이다.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소득이 줄어들고 이자까지 올라가고 있다. IMF 때 못지 않은 고난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부동산 대출은 대출 규제를 도입해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신용대출이 큰 문제다. IMF 때 신용불량자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상황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 고금리로 많은 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 9일 한국은행의 정책금리가 결정되는데, 금리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나? (8일 미국·영국·유럽연합 중앙은행은 일제히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분명 금리를 올리면, 실물경제 악화의 큰 요인이 된다. 외환수급 사정이 괜찮으면 금리를 내려도 된다. 하지만 외환시장에서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데 당장 금리를 내릴 수 있나? 견딜 수 없다면 아프지만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90년대 초 스웨덴에선 극단적이긴 하지만 연 100% 이상으로 올린 적이 있었다."

 

- 서민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정부는 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통은 상당 부분 빚더미 위에서 흥청망청했던 죄다.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황당무계한 건 흥청망청했던 사람들은 크게 피해를 안 보고,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제일 많이 고통 받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잘못 없이 고통 받는 서민을 위해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우선 정부 재정이 튼튼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에 혜택주는 감세정책을 내놓았다. 완전히 거꾸로 가는 가고 있다. 도덕적·정치적 정당성도 없다. 국회 역시 국정감사에서 패거리 싸움만 하니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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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금융위기,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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