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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조무사 28명이 계약만료로 일자리를 잃었다. 직접고용으로의 전환을 하루 앞둔 시기였다.

 

정규직이 되면 뭘 할 건지 부푼 기대를 안고 있던 이들에게 병원은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거리로 내몰았다. 이중에는 강남성모병원에서만 5년 넘게 일해온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다시 파견직으로 위치가 바뀌면서 끝내 이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본래 정규직이었던 간호조무사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건 지난 2002년, 보건의료노조의 파업 이후였다. 이후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직접고용이던 이들이 간접고용 파견직이 된 건 2006년 10월의 일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2년이 지난 지난달,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재계약 거부 통보를 받았다.

 

일방적 통보에 항의하며 병원 로비에 천막을 치고 농성했지만, 병원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최초에 계약했던 대로 기간이 만료되어 재계약하지 않은 것뿐이고, 자신들은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병원 측 설명이었다.

 

정규직 전환 하루 앞두고 해고, 비일비재합니다

 

비단 강남성모병원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KTX승무원 사건, 이랜드 사건, 코스콤 사건, 기륭전자 사건, 그리고 최근 성신여대 사건까지…. 굵직한 노동 문제는 대부분 비정규직 문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지금 비정규직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 중 하나로 대다수 사람들은 비정규직보호법을 들고 있다. 2007년 제정된 비정규직보호법은, 이름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를 시정하는 것과 비정규직 근로자로 2년 이상 일하면 고용주가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취지와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도움은커녕 해만 되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따라 고용주에게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직접고용하여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의무가 생겼다. 그런데 이 법은 계약 기간에까지 강제력이 미치질 않는다.

 

계약 기간은 고용주 임의대로 정할 수 있고, 따라서 고용주에겐 최대 2년의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재계약을 거부하면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의무 따윈 지지 않는다. 2006년 10월 1일부로 파견직으로 전환되거나 입성한 강남성모병원 간호조무사 28명이 2008년 9월 30일부로 병원에서 나가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3개월·6개월 단위의 계약이 판치고 있는 세상이다. 위법도 아니니 고용주의 입장에선 거리낄 게 없다. 최대 2년까지 계약한 후 그 다음엔 재계약하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새로 뽑으면 그 뿐이다. 고용 상태가 불안하니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아도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결국 차별 해소와 고용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비정규직보호법이 오히려 차별의 간극을 벌리고 고용 불안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도 OK" 하는 구직자, 악용하는 기업들 

 

문제는 비정규직보호법에만 있지 않다. 애초에 비정규직보호법이 탄생되도록 그 단초를 제공하고, 그것도 모자라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제 잇속만 챙기는 기업의 잘못도 크다 할 수 있다.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기업은 대대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살아남으려면 몸집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외주화도 활발해졌다.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직접고용보단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 기업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대졸자의 정규직 취업률이 48%라는 통계 수치는 그만큼 정규직의 문이 좁다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많은 취업 준비생들은 '비정규직이라도 OK'라는 심정이며, 교육 수준에 맞지 않는 직장에 취업하는 하향 취업자들도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학력 수준, 업무 능력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뜻하며, 실제로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다수 있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올해 비정규직의 임금 비율은 정규직의 60.5% 수준에 불과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64.1%보다 더 떨어졌다. 기업은 정규직에 비해 제도적 책임이 가볍고, 임금을 적게 주면서도 비슷한 능률을 낼 수 있는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인건비를 낮추는 데 있어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또 있다. 노동자들이 기업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솎아내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재계약 거부가 있다. 설사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다른 구실을 만들면 그 뿐이다. 파견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경우 더 용이하다. 파견업체를 교체해 버리거나 그를 빌미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남성모병원 집단해고반대 농성에 나선 간호조무사 몇 명은 지난 9월 19일자로 돌연 본사(파견업체) 발령을 받았다. 간호보조 업무밖에 할 줄 모르는 이들이 본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런 식으로 기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쥐락펴락한다. 노조 조직 및 가입과 같은 단체 활동도 기업의 입장에선 못마땅하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3%로 정규직의 1/7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도 비정규직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에 불과하다.

 

성신여대와 강남성모병원

 

이런 사회적 현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이 자신에겐 해당사항 없음을 희망하는 사람들, 비정규직 문제를 단순한 노동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등…. 단순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무관심한 태도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면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해진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양극화가 심화되어 범죄, 자살, 교육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얼마 전 들려온 성신여대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의 소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환경을 견디다 못해 노조에 가입한 청소부 아주머니 65명은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자신들의 해고 사실을 알았다. 이 부당한 처사에 청소부 아주머니들은 학교 행정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그런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성신여대 학생들이었다.

 

농성 소식을 들은 성신여대 재학생 9000명 중 무려 6500명이 농성 지지 서명을 했고, 농성을 응원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근 지역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연대까지 이어지자 결국 농성 14일 만에 학교 측은 결국 백기를 들고 이들에게 복직과 고용 승계를 보장했다.

 

만약 성신여대 학생들이 이번 일에 무관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학교 측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까? 제 아무리 인근 지역 대학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있었다고 해도,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결국 소수에 불과한 이들의 목소리는 결코 큰 힘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는 법적 제도도 중요하고, '공생'을 생각하는 기업의 윤리적인 자세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비정규직 문제를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우리의 자세다. 외면해서는 안 된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다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


태그:#비정규직보호법, #강남성모병원, #성신여대,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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