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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건군 6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육군 장병들이 분열하고 있다.
 1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건군 6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육군 장병들이 분열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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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국군의 날. 5년에 한 번, 새 정권이 취임한 첫 해에 진행되는 가두행진. 군이 이 시가행진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일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가두행진의 이슈는 세계최강이라 하는 차세대 전차 '흑표'도 아니었고, 쫄쫄이팬츠의 UDT 부대도 아니었습니다. 알몸으로 탱크 앞에 선 강의석씨였죠. 당연하게도 지금, 강의석씨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강의석씨는 이미 국민영웅 박태환을 소재로 한 글에서 국군의 날에 누드 시위를 하겠다는 공헌을 해온 터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행하기 위해서 12시간이 넘는 동안 테헤란로 중앙분리대의 땅을 파고 그 속에서 기다렸고, 결국 탱크 앞에 알몸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동영상으로 본 강의석씨의 모습은 사실 뛰쳐나오자마자 잡혀가는 것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강의석씨가 이야기한 '비무장이 아름답다'를 느끼기도 힘들었고요.

오히려 언론이 강의석씨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의 멋진 사진이 없었다면 해프닝 정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후 각 언론들은 민망한 뒤태와 탱크가 잡힌 <연합뉴스> 사진과 함께 탱크를 막아선 알몸이라며 헤드라인을 뽑았고, 뉴스메이커 강의석이 한 건을 더해준 것에 감사하듯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강의석씨는 성공한 것일까요? 전 성공한 것은 강의석씨가 아닌 언론이라고 봅니다.

강의석씨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 쟁점은 강의석씨가 '언론노출증'이라는 것입니다. "언론에만 나오려 하지 말고 어디 가서 묵묵하게 활동해라"라는 충고부터 "무슨 자격으로 그런 충고를 하는가"라는 반론. "주장의 내용과는 별개로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진정성 없는 '미디어 스타'일 뿐이다"라는 힐난까지. 이처럼 다양한 논쟁의 핵심에는 언론과 강의석씨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강의석씨가 대학 진학 후 복싱을 하고, 택시운전과 호스트바의 경험들이 모두 언론의 이목을 끌기 위한 별난 선택이었다고 몰아붙이면서, 군대폐지 운동 역시 그런 선택의 하나라고 비판합니다.

전 좀 다르게 판단합니다. 대광고 시절 학내 종교자유 투쟁을 하면서 기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그런 친분으로 이미 유명인이었던 강의석씨의 특이한 선택은 기자들 사이에서 좋은 소재거리였을 것입니다. 사실 별 내용도 없었지만 매번 기사화 되었습니다.

한 대학매체에 실린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칼럼이 그렇게 일파만파 커졌던 것도 언론이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종교자유 1인시위 강의석과 국민영웅 박태환, 여기에 민감한 병역문제.

이번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시간 바로 옆인 잠실 아시아공원에서는 '국군의 날 군사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한 무기에 대한 군사적 열망은 그 사회를 오히려 허약하게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과 평화행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몇 초 동안 거리에 뛰어든 '유명인'의 벌거벗은 몸에만 열광했습니다.

강의석씨,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박태환 선수(좌). 그런 박 선수에게 병역특례 거부와 함께 군대 거부 운동을 제안해 화제가 되고 있는 강의석씨(사진은 2004년 6월 학내종교 자유투쟁 당시의 것).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박태환 선수(좌). 그런 박 선수에게 병역특례 거부와 함께 군대 거부 운동을 제안해 화제가 되고 있는 강의석씨(사진은 2004년 6월 학내종교 자유투쟁 당시의 것).
ⓒ 연합뉴스·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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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렇게 강의석씨가 언론에 소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의석씨가 그런 소비과정을 즐겼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고, 자신의 이름이 티비나 인터넷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의석씨가 만약 진정 군대를 폐지하기 위해서 그런 퍼포먼스를 한 것이었다면, 의석씨는 실패했습니다.

알몸으로 탱크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어쩌면 감동적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의석씨가 그 행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그것은 '비무장은 아름답다'가 아니라 '강의석 또 한 건 했네'가 돼버렸습니다.

강의석씨는 언론을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이용당한 꼴입니다. 군대폐지의 논리와 주장은 없고, 강의석과 알몸만이 남았습니다. 단지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벌거벗고 서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짧게 의석씨의 주장이 인용되었을 뿐입니다.

또한 강의석씨를 둘러싸고 이후 진행되었던 논쟁 그 어디에서도 군대 폐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습니다. 의석씨에 대한 찬성 역시 그런 의석씨의 주장에 무게를 싣기보다는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이런 생각과 표현도 존재할 수는 있다 정도입니다. '강의석, 이제는 언론에서 잊혀져라'를 쓴 유창선씨 표현처럼 사람들은 의석씨가 가리키는 달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의석씨의 손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강의석씨는 "태환아, 너도 군대 가"를 쓴 이유가 박태환을 소재로 글을 쓰면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많이 알릴 수 있다면 박태환에게 군대를 가라고 하던 병역거부를 하라고 하던 별 문제가 없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스스로가 언론에 소비되는 과정에서 의석씨는 무엇이 기사가 되고 안 되는가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알몸 퍼포먼스도 그러한 맥락이었을까요? 적중했습니다. 그러나 강의석씨. 많이 알리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운동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언론노출증이 아닌 사회운동을 하는 의석씨의 태도입니다.

사회운동의 분명한 목표는 많이 알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 명에게 알리는 것보다, 한 명의 지지자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박태환을 소재로 삼은 글을 통해서, 알몸으로 탱크를 막은 행위를 통해서 우리 사회는 얼마큼 전쟁과 군대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을까요? 전 부정적입니다.

군대 폐지 운동을 하겠다면...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글로 화제를 모았던 강의석씨(22.서울법대 휴학)가 1일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이 펼쳐진 강남 대치동 현대백화점앞에서 군대 반대 누드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군대를 폐지하기 위해 기습시위를 벌였다"고 이유를 설명한 강씨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도로에 뛰어들어 20여초동안 쿠키로 만든 총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 강의석씨 '군대반대' 누드시위 '태환아 너도 군대 가'라는 글로 화제를 모았던 강의석씨(22.서울법대 휴학)가 1일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이 펼쳐진 강남 대치동 현대백화점앞에서 군대 반대 누드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군대를 폐지하기 위해 기습시위를 벌였다"고 이유를 설명한 강씨는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도로에 뛰어들어 20여초동안 쿠키로 만든 총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 연합뉴스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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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석씨는 구호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공허한 구호를 말입니다. 얼마 전 국가보안법으로 떠들썩했던, 이름도 무시무시한 '사회주의 노동자 연맹'의 결결한 사회주의자 분들도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착취가 꼭 필요해?"와 같은 수준의 구호는 외치지 않습니다.

몰라서 안 외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안 외치는 것입니다. 그런 구호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말입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의 모순이 집약되는 비정규직 문제나 사회적 공공영역의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합니다.

군대를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군대를 유지하는 돈이면 가난한 국가들의 어린이들의 굶어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회운동으로 하겠다면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구체적인 사회적 논쟁이나 지지자를 만들지 못합니다.

더욱이 한국과 같이 징병제와 군대가 신성시되는 군사주의적 사회에서는,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조건을 가진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성급한 주장은 오히려 반감만을 증대시키는 역효과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의석씨는 12시간 구덩이 속에서 기다리느라고 고생했겠지만, 지금 국정감사를 앞두고 평화활동가들은 눈이 빠져라 새벽까지 무기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5월 군 관계자는 육군이 미국의 중고 아파치 헬기를 구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 예산이 1조에 달합니다. 과연 이 검토가 적절한 것인지를 따지기 위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무기 책을 잡고 새벽까지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출근길에 빨간 칠을 하고 "군대가 필요해?"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보다, 이 중고 아파치 헬기가 불필요한 무기라면 국방예산 1조를 줄여서 국제아동구호기금으로 돌리는 것이 의석씨가 주장하는 것을 실현하는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길이 아닐까요?

평화활동가들조차 의석씨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 매년 700여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고 감옥에 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에게 감옥이 아닌 현역복무와 형평성이 맞는 대체복무의 기회를 주는 것이, 군대에 대해서 작은 비판도 매도당하는 한국사회에서 군대에 대한 작은 변화라도 가져올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의석씨가 맨 몸으로 탱크 앞으로 뛰어나오는 장면은 의석씨가 고용해서 주변에 배치했던 카메라맨들에게 잘 포착되어서 현재 만들고 있는 '군대?'라는 영화에 중요한 장면을 이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가 훌륭한 사회적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의석씨의 행위들은 사회에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의석씨의 생각과 가장 가까이 있는 평화활동가들에게조차 말입니다.

또한 의석씨와 함께 군대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석씨의 튀고 일방적인 행동에 그만 두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가 나온다고 만병통치약처럼 뚝딱 군대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확산될까요?

5년 전인 2003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도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평화활동가들이 '무기장례식'이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무기로는 평화를 살 수 없다는 콘셉트로 진행했던 행사였습니다. 의석씨의 행동만큼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척박한 한국의 군사주의 문화 속에서 잔잔한 울림을 만들었던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올해의 국군의 날에도 이 활동가들은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이어가며 국군의 날 퍼레이드 장소 근처에서 기자회견과 평화행진을 했고, 저녁에는 마포 촛불집회에 함께 했습니다. 전 의석씨가 오히려 이런 흐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 당신의 주장과 운동에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임재성 기자는 현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의석, #국군의날, #병역거부, #군대, #평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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