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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를 치운 자리를 차지한 우리집 책장
▲ 거실 책장 소파를 치운 자리를 차지한 우리집 책장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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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전세를 면치 못한 나는 언젠가 내 집을 마련하면 '거실을 책장으로 도배하리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았다. 우리집 책장은 이방 저방에 들쭉 날쭉 빈터를 잡고 자리하고 있어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이 방 저 방 뒤지고 다녀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내 집을 마련하고 거실에 서가를 마련하리라는 계획을 앞당긴 건 텔레비전과 소파 때문이었다. 이사와서 보니 전에 쓰던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침 십년하고도 삼년을 더 쓴 옛날 텔레비전이 상태가 안 좋아 최신형 '엘시디 텔레비전'으로 바꾼 터라 텔레비전 보는 맛이 색달랐다.

자연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케이블의 채널은 어쩌면 그리도 다양한지 스포츠 채널만도 한두 개가 아니고, 영화와 음악채널, 쇼핑채널까지 참 다양했다. 그 다양한 채널이 방송시간 제한없이 하루종일이니, 자연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이고 효과적으로 시청하기 위해 신문에 텔레비전 방영시간표를 체크해 놓기도 했다. 그건 그닥 효과가 없었다.  방송시간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자주 보는 프로그램 마저 채널변경이 들쭉날쭉이어서 애꿎은 리모컨만 눌러대는 일이 잦아졌다. 눈에 띌 만한 프로가 없을 경우 리모컨의 수난은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다.

어느 늦은 밤이었을 것이다. 새벽이 되도록 소파에 파묻혀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내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었고 채널을 돌리면서 보낸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아들녀석이 신문을 통해서 스포츠를 방영하는 시간과 스포츠 채널을 기가 막히게 외워서 자꾸 리모컨을 돌리는 모습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아 그런데, 왜 지상파에서는 스포츠 중계가 다 없어져 버렸나 궁금하다).

마침 오래된 소파도 여기 저기 흠집투성이었다. 소파를 새로 들여야 하나 아예 치워야 하나 고민도 생겼다. 그런 생각들을 아이 아빠와 얘길 나눴다. '소파를 없애자, 대신 책장을 들여놓자.' 남편의 과감한 결정에 소파와 텔레비전 문제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던 나도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거실엔 소파가 놓여져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집을 마련하고'라는 전제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지금이 가장 적기인 것 같아 남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가까운데 가구 매장이 있어 소박하고 튼튼한 책장을 골랐다. 과감하게 소파까지 치우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소파는 안 그래도 좁은 작은방으로 옮겨 놓았다.

소파가 치워지고 그 자리에 마침내 책장이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게 되었다. 남편의 과감한 결단이 참으로 고맙게 여겨질 정도로 책장이 있는 거실 풍경은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완전 도서실 분위기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다. 소파 없이 텔레비전을 봐야 한다는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아이도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을 한 군데로 모으니 뿌듯합니다.
▲ 책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을 한 군데로 모으니 뿌듯합니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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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들여놓은 책장에서 깨끗이 먼지를 닦아내고 나서 본격적으로 책을 정리하면서 우리 부부는 작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책장의 가운데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어떤 책을 놓으냐 하는 걸로.책을 좋아하는 기준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가운데 명당자리에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볼수 있는 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나의 의견과, 아이들 책은 기존에 있던 책장(새 책장 옆)에 두어도 되고 새책으로 채워야 보기 좋겠다는 남편의 의견이 충돌했다. 실랑이 끝에 결국엔 서로 반반씩 양보를 하기로 했지만 그 작은 신경전은 책장이 우리집에 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남편이 없는 사이 내가 좋아하는 책 몇 권을 살짝 바꿔두면 집에 돌아 온 남편이 다시 자신의 방식대로 책을 옮겨 놓는 것이다. 중학생인 큰애에게도,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아이에게도 내가 읽다가 좋은 구절을 읽어주는 나의 경우, '좋은 책'의 기준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많은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책장 가운데 꽂기 위해 당분한 남편과 실갱이도 벌여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의 이런 사소한 다툼은 아마도 내 집이 마련 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다음에야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

책장을 새로 들여 온 후 한 달에 적어도 세 권 이상의 책을 사자고 계획을 세웠으니 새 책이 들어갈 방향을 놓고 우린 당분간 의견 다툼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리 나쁘지 않은 즐거운 실갱이들 말이다. 아이들 방과 베란다에 흩어져 있던 책들을 한 군데로 모아 놓으니 보기에도 좋고 책 읽기도 편하다.

책장이 들어오고 아이들도 책과 더 가까워 졌습니다
▲ 책과 아이 책장이 들어오고 아이들도 책과 더 가까워 졌습니다
ⓒ 김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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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아이들은 거실에 있는 책을 빼내서 작은방 소파에 파묻혀 책을 읽곤 한다. 책장이 거실 가운데를 차지하고 나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강제하기 보다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보는 시간 대신 손에 책을 든 시간이 많아진 게 보인다. 소파가 없는 거실은 텔레비전 시청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저 혼자 흐르던 케이블 연결선도 끊어졌다. 방송 탄압을 버젓이 자행하는 정권이 제 입맛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도 재미가 없어졌다.

이래저래 책 읽기 좋은 때이다. 마침 천고마비의 계절, 등화가친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아닌가. 이번 달엔 조금 욕심을 부려 다섯 권의 새 책을 주문했더니 하루 만에 도착했다. 국방부에서 금서로 지정했다니 더욱 궁금한 책을 포함해 가을이 깊어가는 이 무렵에 읽으면 좋을 소박한 에세이까지 다 읽으려면 부지런 좀 떨어야 겠다.

광우병 소고기 이후 부쩍 위협받고 있는 식탁의 안전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국민으로 거듭나기(?) 위해 제인 구달 선생님의 <희망의 밥상>도 이번달 목록에 추가다. 소고기 정국이 시작될 즈음에 정기구독을 시작한 <녹색평론> 9월, 10월호는 조금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다.

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 부모를 따라 아이들도 곧잘 책장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빠듯한 하루 일상에서 책 읽는 시간을 내기란 어른들인 우리도,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고 시험을 앞둔 아이들도 그리 쉽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주말의 어느 한가한 시간, 책 읽는 엄마 아빠를 따라 책을 들고 옆에 와서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일은 더 없이 뿌듯한 일이다. 다만 거실의 소파를 치우고 책장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아이들 표현을 빌리자면 '이거, 완전 도서관 분위기'다.


태그:#우리집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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