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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는 난산리
▲ 난산리 가을 여는 난산리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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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외로움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약이 될 때도 있습니다.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로운 것은 절대 아니지요. 길을 걸어보세요. 제주올레를 걷다보니  문득 외로워지더군요. 


서귀포 난산리에 흔적 남긴 올레꾼


제주 중산간에 자리 잡은 시골 마을은 참으로 한적했습니다. 제주시 성산읍 난산리, 해발 50여고지에 천년의 역사와 선량한 심성을 간직하고 있는 난산리 마을은 16번 중산간 도로와 1119 서성로가 지나가는 마을입니다. 하지만 이 마을은 차들만 다닐 뿐이지 사람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올레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주올레 흔적
▲ 제주올레 표시 제주올레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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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아침 10시 50분, 올레꾼들은 500여 명 정도가 사는 난산리 올레의 길을 열었습니다. 한적한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올레를 걷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은 놀랐겠지요.

제주올레가 길트기를 하면서 표시한 흔적이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전봇대에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 먼저 다녀간 흔적의 길, 그 흔적은 난산리 농로와 시멘트 길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올레 길을 가다가 파란화살표를 보시거든 올레꾼들이 다녀간 줄 아세요. 어쩌면 올레화살표는 서로의 약속, 함께 가야 할 길의 목적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난산리 아낙들이 밭이랑을 일고 있다.
▲ 난산리 아낙 난산리 아낙들이 밭이랑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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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는 올레길... '쉬엉갑써게!'

난산리 중산간도로는 보폭이 8m쯤 될까요? 그 길옆에는 가을이 열리더군요. 올레꾼들이 지나갈 때마다 강아지풀이 한들한들거렸습니다.  심심하던 쑥부쟁이도 들국화도 즐거움의 몸짓을 표현하더군요.

난산리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막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씨를 뿌리는 동네 아낙들이 손을 흔들어 댑니다.

“고생 햄 수다!  쉬 엉 갑 써 게!”

밭이랑을 만들고 있는 아낙들은 고된 하루 일과가 힘들 테지만, 도리어 나그네들을 격려합니다. 검은 흙을 파고 있는 아낙들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흙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제주 올레 길은 가장 포근하고 행복한 보금자리였겠지요.

난코스일수록 의미 있는 도보기행

하지만 올레꾼들의 고통은 무엇일까요?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기에 제주올레가 길트기를 할 때마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난코스인 올레 9코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걸 보니 말입니다. 아마 도보기행은 길이 열악할수록 더욱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척박하고 고된 길을 걸어야 함을 알면서도 그 길이 고행의 길이 아니라, 수행이라 생각하니까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며  맛보는 희열감이랄까요. 때문에 난산리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씨뿌리는 농부
▲ 농부 씨뿌리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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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검어 화학비료인 난산리의 터

땅에 씨를 뿌리는 난산리 사람들, 올레 길을 걸으니 그들의 땀방울이 가슴으로 느껴져 오더군요. 농업과 축산업이 주산인 난산리의 보물은 흙이 검다는 것입니다. 이 검은 흙은 화학비료보다 더 영양가가 풍부하다네요.

올레에 말리는 참깨
▲ 참깨 올레에 말리는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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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을 위해 올레에 세워놓은 참깨, 검은 땅에서 머리를 내미는 무와 배추의 싹, 그 가녀린 새싹은 검은 땅 흙속에서 솟아나더이다.

만약 자동차를 타고 난산리를 방문했더라면 번지르르 치장해 놓은 도로 위에서 관공서나 학교 등을 볼 수 있었게겠지요. 그러나 올레 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검은 흙과 돌담, 그리고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삼나무가 전부입니다.

하늘래기
▲ 하늘래기 하늘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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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길을 걷다

동백나무와 삼나무, 대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난산리의 올레는 키 큰 나무들이 올레 꾼을 호위하더군요. 드디어 중산간 도로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늘높이 자라는 삼나무 이파리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하늘래기(하늘수박)가 마치 설익은 과일 같습니다. 동행한 제주토박이 한복희 선생님은 하늘래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샘, 어릴 적 우리 어머님께서는 꼭 집안에 하늘래기를 매달아 놓았죠. 그 이유는 하늘래기를 걸어 두면 부정이 없어진다고 하더군요.”

하늘래기는 거무죽죽한 난산리 돌담위에도 중산간의 가로수에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제주의 중산간의 난산리 마을이 난초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이 있다는 열매
▲ 참외 같은 열매 추억이 있다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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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걷이가 끝난 밭은 텅 빈 상태, 미처 수확하지 못한 여름철 농작물이 여운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울토마토만한 크기의 노릇노릇한 참외 모양 열매가 한선생님의 눈을 유혹했나 봅니다. 한 선생님은 잽싸게 밭으로 달려가더군요.

“이건 말야, 나 어렸을 때, 먹거리였어요. 과일이 풍부하지 않을 당시 과일처럼 쭉- 씨를 빨아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요! 그땐 참 맛있었는데, 한번 먹어볼래요?”

한 선생님이 내미는 쥐방울만한 참외는 과일이 아니라 열매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먹지는 못했지만  가방 속에 담아왔지요. 그렇게 중산간 올레 길은 추억의 길이었습니다.

밭담
▲ 밭담 밭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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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돌담, 인심, 넉넉한 그림이었다

마을길을 지나 중산간도로를 지나, 통오름으로 향할 무렵, 급수봉사를 하는 성산읍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전해주는 생수 1병은 생명수 같았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걸었으니 목이 탈 수 밖에요.

성산읍주민자치위원회가 준비한 무료급수봉사
▲ 마을 인심 생수 성산읍주민자치위원회가 준비한 무료급수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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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성산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격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상쾌하지요. 길을 걷다가 얻어 마시는 물 한모금도 소중하구요. 따라서 올레꾼 손에 쥐어 주는 생수 한 병 가치는 그저 중산간 마을 사람들의 마음같았습니다.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인심을 가진 마을을 찾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만추
▲ 만추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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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요로움은 올레 돌담위에 노랗게 익어가는 호박 한 덩어리에도  걸려 있었습니다. 만추, 그리고 넉넉함의 그림이었지요.

정교롭게 쌓아올린 제주 돌담, 난산리 돌담은 밭담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주 돌담은 경계선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바람을 막는 역할을 하고, 마소의 침입을 막기도 하지요. 그러나 올레꾼들에게 밭담은 제주만의 정취와 제주사람들의 인내, 그리고 제주인의 삶 그 자체입니다.

난산리 올레길
▲ 난산리 올레길 난산리 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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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길 걸으니 에너지 솟고, 흙길 걸으니 포근해져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전설에 의하면 난산리는 중국 호종단이 수맥을 끊어 버렸기 때문에 건천(乾川)이 됐다고 전해지는 제주의 중산간 마을입니다. 하지만 올레길 걷으며 만난 난산리는 정말이지 기름진 터를 이룬 청초한 마을이더군요. 그리고 그 마을을 걷는 올레꾼들은 그곳에서 외로움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추억 속에 빠질 수도 있었지요.

어차피 도보기행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신이 납니다. 자갈길을 걸으니 다시 에너지가 솟아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흙길을 걸으니 마음이 포근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올레 길에서 말입니다.


태그:#난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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